저번에 다가끼 마사오 를 아십니까 라는 글을 올린 놈 입니다.
제가 언급한바와는 다르게 박정희는 마루타 징집 장교가 아니었습니다.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지 못해 여러분에게 심려를 끼쳐 드린 점 진심으로 사과 드립니다.
이에, 보다 명확하게 사실을 알리고, 너무나 뻔뻔하고 당당하게 박정희를 옹호하는 자에게 일침을 가하기 위해 다가끼 마사오 의 친일 행적을 올립니다.
부디 무지한자가 저지른 실수, 이 글로 용서한다 생각하시고 봐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원출처 : 다음넷 역사카페 [바로잡아야 할 역사]
출처 : 박정희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모임 (//cafe.daum.net/qkrwjdgmltlfj)
[ 내용 ]
① 일제에 대한 충성심이 태동 - 혈서(최우수 제국군인)
문경보통학교 교사로 있던 다카기 마사오(박정희)는 자진해서 만주군관학교 생도생으로 스스로 들어갔다. 만주군관학교 2기생으로 자원입학(1940년 4월 4일).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나이 23세. 입교 동기생으로 240중 조선인 12명. 15등으로 입학하였다. 하지만 2기 졸업식에서는 240명중 당당히 1등으로 졸업하였다.
영광의 얼굴로 [만주일보]에 실린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졸업식 날 다음과 같은 '선서'를 힘차게 낭독했다.
"대동아 공영권을 이룩하기 위한 성전(聖戰)에서 나는 목숨을 바쳐 사쿠라와 같이 휼륭하게 죽겠습니다."
다카키 마사오(박정희)가 만주군관학교에 자원해서 들어가는 상황을 좀더 살펴보자.
다카키 마사오(박정희)가 만주군관학교나 일본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기에는 나이가 많았다. 즉, 나이 때문에 자격 미달이었는데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호적을 고쳐서 나이를 낮췄다고 한다.
또한 나이를 낮췄다고 멀쩡한 조선인이 군관학교/사관학교에 입학하기는 쉽지 않았는데 신원검증과 사상검증을 통과가 그것이다. 당시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어떻게 하면 만주군관학교 사람들이 환영할 행동을 취할 것인가? 를 고민하였다.
동료교사 유증선이 아이디어를 내주었는데 "박선생 손가락을 잘라 혈서를 쓰면 어떨까?"라고 하며 제안했다고 한다. 이에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그 자리에서 찬동했고 나이도, 신원검증도, 사상검증도 필요 없는 '충성혈서'로 만주군관학교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것으로 모자라 [만주일보]에 대서 특필되었다.
다카키 마사오(박정희)가 쓴 충성혈서는 "盡忠報國 滅私奉公(진충보국 멸사봉공)"이다.
즉 '충성을 다하여 나라에(일본) 보답하고, 나를(私) 죽여서 국가를(公) 받들겠습니다."라는 가미가제식 자폭성 혈서를 쓴 것이다. 이 충성혈서는 한가지 기록을 갖게 된다. 일제강점기 36년 동안 혈서로 일본천황에 충성을 맹세한 조선사람은 단 한명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뿐이었다.
교사의 신분으로 있던 다카키 마사오(박정희)가 만주군관학교에 자원 입대하는 것은 천하제일의 기회주의자로 출발하는 신호탄이었다.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온갖 방법을 다 써가며 자기를 지우려했던 어머니와의 출생전쟁에서 승리하여 '죽음의 집' 같았던 어머니의 자궁으로부터 탈출하였고
다시 가난한 집과 고향으로부터 탈출하여 황국신민교육의 첨병 대구사범학교로 탈출하고
다시 사무라이정신으로 무장한 일본군장교 양성기관 만주군관학교와 일본육군사관학교로 탈출하여 '신민지 조선'을 탈출하게 된다.
그리고 천황주의자의 신봉자가 되어 '조센징 토벌'에 몸과 마음을 바쳐 젊음을 불태우게 된다.
② 몸과 마음을 철저하게 개조 - JS표 일본인 준비
만주군관학교를 투철한 친일정신과 열성적 훈련으로 수석 졸업의 영광을 차지한다. 수석졸업의 영광으로 금시계를 선물로 받고 졸업생 대표로 천황찬양으로 가득한 답사를 읽었다.
당시 친일신문〈만주일보 1942. 3. 24〉기사 일부를 인용하면...
[… 빛나는 우등생 오카이(日系), 고야마(日系), 다카키(鮮系-박정희) 등 5명에게 각각 은사상증의 전달이 잇고 폐식 하였다....]
만주군관학교 출신의 조선인은 대략 제1기∼제7기까지 50여명 정도인데 만군 출신들은 훗날 대통령, 국회의장, 국무총리, 국방장관, 군참모 총장, 해병대사령관, 군사령관, 군단장, 연대장, 고급 참모등 정부와 군의 요직에서 나라를 이끌어 가는 중요 인물이 된다.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를 지도했던 한 일본인 장교의 말을 들어보면 다카키 마사오(박정희)가 어느 정도 몸과 마음을 철투철미 하게 일본 제국주의에 충성하고자 하였나를 알 수 있다.
[ 매년 가을이 되면 군관학교에는 생도 전원이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행군연습을 실시했다. 박정희는 그때 내가 맡은 소대의 제1분대장이었는데, 다른 분대장과는 달리 기합이 들어 있었고, 의욕도 대단했다. 진지공격 연습 같은 때 대단히 어려운 임무가 부여되더라도 박정희는 그 임무를 달성하려는 의욕으로 꽉 차있었다. 박정희는 말수가 적고 속에 투지를 감춘 사나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 라고 진술하고 있다.
③ 완전한 일본인 - JS표 일본인
군관학교를 졸업하고 관례대로 우등생에게 주어지는 일본육사 특전의 혜택을 누리게 된다.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일본 육사를 입학하려고 군관학교 시절 남들보다 철저한 황군정신으로 몸과 마음을 닦고 열심히 공부한 것이다. 일본 육사에서도 진지한 학습태도로 모범생이란 평을 받고 3등이란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한다.
조선인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일본 육군 대신상을 수상하기도 한다. 이로써 박정희는 완전한 일본인(다카키 마사오)이 되었다. 아니 대일본제국의 군인이 되었다.
당시 일본육군사관학교 교장 '나구모 쥬이치(南雲忠一)의 다카키 마사오(박정희)에 대한 평가를 들어보자.
『....다카키 생도는 태생은 조선일지 몰라도 천황페하에 바치는 충성심이라는 점에서 그는 보통의 일본인보다 훨씬 일본인다운 데가 있다...』라고 평가하였다.
한마디로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JS(Japanese Standard)표 [일제인]이라는 말인 것이다.
또한 다카키 마사오(박정희)가 10.26으로 김재규 총에 맞아 죽었을 때 주한 일본대사관에서 한 일본 외교관은 이러한 말을 했다.
"대일본제국 최후의 군인이 죽었다." 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