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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키 마사오(박정희)의 친일 행각 7~10

 




원출처 : 다음넷 역사카페 [바로사]


출처 : 박정희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모임 (//cafe.daum.net/qkrwjdgmltlfj)



⑦ 박정희의 창씨개명 - 조선인 흔적 지우기

일제강점기 시대에 조선인들은 강제로 창씨개명 되었다. 박정희도 예외가 아니어서 창씨개명을 하였는데 그 이름은 모두가 알다시피 『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 』이다.

하지만 창씨 개명한 조선인들의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창씨개명에는 조선인의 뿌리가 남아있다. 박정희의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란 이름은 마찬가지이다.

다카키 마사오란 이름은 박정희란 조선이름을 응용한 것이다. 다카키(高木)란 성은 고령 박씨에서 따온 것이다. 또한 마사오(正雄)란 이름은 정희(正熙)를 변용 한 것이다. 그래서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란 호칭에는 약간이나마 조선민족의 뿌리가 남아 있다고 하겠다.

하지만 박정희의 창씨 개명은 여기에서 끝나는게 아니다.

박정희는 일본정신으로 머리 채우고 일본군복을 입고 일본사람보다 일본어를 더 잘해도 핏줄 만은 바꿀 수 없었다. 그러나 박정희는 조선민족이라는 핏줄 끊기를 강행한다.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란 이름에서는 조선인의 냄새가 난다고 생각하여 다시 작명을 한다. 일본군에 자원입대 했던 것처럼 스스로 작명 실력을 발휘하여 새로운 이름을 만들어 사용한다.

그 이름은 "오카모토 미노루(岡本實)"이다.

참으로 경악할 박정희의 행동이다. 자작 이름 "오카모토 미노루(岡本實)"는 철저한 조선인의 흔적을 지우는 행동이었던 것이다. 조선민족의 흔적을 말끔히... 깨끗히 지우고 완전한 일본인으로 태어난 것이다.

"오카모토 미노루(岡本實)"는 진짜 일본이름이다. 이 이름 어디에서도 조선사람의 뿌리를 찾을 수 없다.




⑧ 일본군인 생활에 대한 다카키 마사오(박정희)의 향수

만주군관학교⇒일본육사⇒관동군으로 이어진 다카키 마사오(박정희)의 복무기간은 5년 정도이다. 다카키 마사오(박정희)의 나이 23세에서 28세까지의 기간이다.

하지만 이 기간동안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몸과 마음을 환골 탈퇴하여 일본인 일본군인이 되어 정서체계와 사고방식 등 모두 일본놈 그 자체였다. 그 증거는 대통령이 되어서도 나타난다.

5.16 쿠데타로 집권한 뒤에도 틈만 나면 주일 대사관을 통하여 입수한 일본 사무라이 영화를 관람하고 일본 검도를 즐기는 것이 다카키 마사오(박정희)의 취미 생활이었다.

또한 당시 [조선일보] 주필 선우휘씨 등과 청와대에서 술을 마시며 일본천황의 교육칙어를 번갈아 외우는 내기나 시합을 하곤 했다. 다카키 마사오(박정희)의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지독한 향수를 엿 볼 수 있다. 그래도 이런 것은 얌전한 행위에 속했다.

다음 글을 읽어보자 압권이다.

[중앙일보. 1991. 12. 14]
[ ..... 계엄선포 한 달 전쯤인가(1971. 10. 17 계엄이 선포되었다) 박대통령이 나를 불러요.(여기서 '나'는 강창성 전보안사령관) 집무실에 들어갔더니 박대통령은 일본군 장교 복장을 하고 있더라고요. 가죽장화에 점퍼차림인데 말채찍을 들고 있었어요. 박대통령은 가끔 이런 복장을 즐기곤 했지요. 만주군 장교시절이 생각났던 모양입니다. 다카키 마사오 중위로 정일권 대위 등과 함께 일본군으로서 말달리던 시절로 돌아가는 거죠. 박대통령이 이런 모습을 할 때면 그분은 항상 기분이 좋은 것 같았어요....]

이런 미친 인간이 18년간 우리의 대통령이었다. 그는 통치 기간 만주군관학교 출신들을 인재로 등용하여 나라를 좀먹고 민족정기를 회복할 수 없도록 망쳐 놓았다.



⑨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대통령으로써의 친일

-. 5.16후 우방 각국에 친선사절을 보냈는데 제일 먼저 보낸 곳은?
답 : 일본

-.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대통령이 가장 먼저 방문한 나라는?
답 : 일본

-. 최초로 대외정책을 밝힌 기자회견의 주제는?
답 : 한·일 교섭의 재개.

-.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대통령의 망언
일본 방문중 동경의 한 요정에서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하여 동석했던 일본인들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 나는 정치도, 경제도, 모르는 군인이지만 명치유신 당시 일본의 근대화에 앞장섰던 지사들의, 나라를 위한 정열만큼은 잘 알고 있다. 그들 지사와 같은 기분으로 해볼 생각이다.....] 라고 말하였다. 그것도 유창한 일본어로 말이다.

1963년 12월 17일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일본의 자민당 부총재 오노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은 걸작의 말을 한다.
[....박정희 대통령과는 부자 사이 같은 관계로서 아들의 경축일을 보러 가는 것은 무엇보다도 즐겁다..」라고 하였다.

사실 자민당의 보수 세력은 박정희와 군대생활을 같이 했던 일본제국의 동료 및 상관들이었다.



⑩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대통령으로써의 친일 2

일본군국주의 세력의 정신적 유대는 대일 굴욕회담을 (한일협정) 성사시킨다. 여기서 식민지 지배 피해에 대한 거의 모든 권리와 주장을 포기한다. 또한 1973년 서울 지하철 차량부정도입 사건을 저지른다.

일본에서 지하철차량 186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하였는데 일본에서 3,204만엔하는 가격을 6,350만엔이란 두 배 정도나 비싼 가격으로 계약하였다. 이것은 만주군 출신 선배들의 로비와 정치자금의 리베이트가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written by (dewk)
2003-02-04 20:00:34
669 번 읽음
  총 36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1. 박승만 '03.2.4 8:04 PM 신고
    증거를 대고 비판하는 것에대해서 뭐라고 하는것은 아닙니다만 아랫글 중 정확치 않은 정보에 대해선 실수로 하기엔 잘못이 너무 큽니다. 따라서 게시물을 삭제하던지 수정하던지 하시길 바랍니다. ↓댓글에댓글
  2. 2. 박승만 '03.2.4 8:06 PM 신고
    그리고 모두 읽어보니 정확한 증거치곤 부실하고 근거만 대는것들도 상당수 있더군요.
    수정하시던지 삭제바랍니다. ↓댓글에댓글
  3. 3. 강경석 '03.2.4 9:04 PM 신고
    뭐가 어떻게 정확하지 않은지 올리면 삭제하던지 수정하던지 하죠. 아니땐 굴뚝에 연기 나겠습니까? 우습군요. ↓댓글에댓글
  4. 4. 김성희 '03.2.4 10:04 PM 신고
    그런데 박정희가 일본군 장교라는걸 몰랐던 사람도 있나 그리고 어차피 대통령됀것도 지금 살아 있는 자민련 김종필이 때문인데 어차피 시대가 사람을 그렇게 만든다고 하잖아요 어찌어찌 살건 그게 중요한건.. ↓댓글에댓글
  5. 5. 김성희 '03.2.4 10:06 PM 신고
    아닌듯 하네요 역사가 말해주겠죠 독립운동가가 친일로 몰려 죽은경우도 많고 이완용이가 좋은 사람이었다는 증거까지 나오는 세상인데 그정도 가지고 그냥 읽어보고 지나갈 말은 아닌듯 하네요 ↓댓글에댓글
  6. 6. 김상훈 '03.2.5 1:58 AM 신고
    사실 과거의 증거는 조작돼기 마련입니다. 자신이 보고 듣고 격지 않았다면 정확한 진실을 알 수 없죠. 누가 누가 그렇게 말했더라 이거는 좀 아니죠. 역사는 왜곡돼고 고쳐지게 마련입니다. 2가지 예를 들어 볼까요.. ↓댓글에댓글
  7. 7. 김상훈 '03.2.5 2:00 AM 신고
    우리가 널리 알고 있는 조선시대 최고의 명재상 청백리의 표본 황희 그렇게 알려진 정승이 사실은 뇌물 수수등으로 수시로 탄핵 돼었다는 기록이 조선 실록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역사학자가 아닌 이상은 없.. ↓댓글에댓글
  8. 8. 김상훈 '03.2.5 2:03 AM 신고
    나머지 한가지 님 집에도 족보가 있죠. 족보없는 집은 없을테니깐요. 그중에서도 경주김씨와 거기서 갈려나온 김씨들 보면 다 신라 왕족의 후손이죠. 다른 성씨들을 봐도 자신들의 시조는 고구려 시대 누구이 후손이.. ↓댓글에댓글
  9. 9. 김상훈 '03.2.5 2:06 AM 신고
    뭐 이런식으로 아주 대단하게 표현하죠. 족보의 태생은 정확히는 기억이 않나지만 조선중기였다고 수업시간(한국사의 논쟁이라는 수업이었죠^^;;)에 필기했었죠. 족보의 역사가 어림잡아도 500밖에 안돼는데 ↓댓글에댓글
  10. 10. 김상훈 '03.2.5 2:11 AM 신고
    그리고 그 전에 가계에 대한 기록도 존재하지 않았는데..기원전 혹은 1세기경의 인물들이 우리의 핏줄이다. 이런 걸 볼때 참 한심하죠.지금 막 생각이 나서 말인데 몇 가지 예를 더 적어 볼까요. 생육신 아시죠. ↓댓글에댓글
  11. 11. 김상훈 '03.2.5 2:15 AM 신고
    생육신이란 이 명예로운 호칭이 언제 부터 생겼을까요. 제가 알기론 영조나 정조때 생긴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것도 돈많은 자손들 잘 둔덕에 몇몇 사람들을 엮어서 생육신이 생겼죠. 진짜 세조에 반기를 들어 ↓댓글에댓글
  12. 12. 김상훈 '03.2.5 2:18 AM 신고
    벼슬을 그만 뒀는지는 몰라도. 역사란 이렇게 꾸며지는 것입니다. 특히 승자가 역사를 이끌죠. 제가 전에 궁예에 관한 고찰이라는 레포트를 쓴 적이 있었는데 궁예에 대한 이런 저런 데이터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참.. ↓댓글에댓글
  13. 13. 김상훈 '03.2.5 2:21 AM 신고
    참 궁예에 관한 자료가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역사서에 실린 궁예란 삼국사기 궁예열전이 그나마 글자 수가 많더군요. 표면적으로 드러난 궁예는 폭군이란 결과와함께 왜그럴까요. 아시겠지만 ↓댓글에댓글
  14. 14. 김상훈 '03.2.5 2:24 AM 신고
    궁예는 자신의 부하에게 패한 그저 역사속으로 사라져 묻혀버린 패장이요 제왕이기에. 승자가 내려준 -자신들의 역성 혁명을 정당화시키는 내용을 안은체-몇 줄 안돼는 글에 평가 받는 거죠. 만약 ↓댓글에댓글
  15. 15. 김상훈 '03.2.5 2:27 AM 신고
    댓글이 넘 기네요..;; 차라리 새 글을 다시 쓰죠 ↓댓글에댓글
  16. 16. 강경석 '03.2.5 3:30 AM 신고
    박정희 가 역사에선 승자였죠. ↓댓글에댓글
  17. 17. 강경석 '03.2.5 3:34 AM 신고
    역사를 전공하지 않아서 확실히는 모르지만, 제가 알기론 족보는 2000년 이상 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우리나라 족보만큼 유명한 것도 없다고 하네요. '족보' 라는 형태로 자리잡은게 조선이겠.. ↓댓글에댓글
  18. 18. 강경석 '03.2.5 3:34 AM 신고
    죠. 뭔가 잘 못 알고 계신 듯 합니다. ↓댓글에댓글
  19. 19. 강경석 '03.2.5 3:36 AM 신고
    지금 검색해보니 우리나라 족보는 계보학의 종주국으로 꼽힐 정도로 유명하다는 군요. 조선 중기때 형태를 갖춘건 맞군요. ↓댓글에댓글
  20. 20. 강경석 '03.2.5 3:39 AM 신고
    진실을 알 수 없다고 하셨는데... 진실은 이겁니다. 이승만 정권이 친일파를 살려줬고. 김구선생을 암살해서 민족적 뿌리를 가진 정치세력을 없앴고... 그 덕에 일본군 장교가 나라를 뒤엎어 정권을 탈취 했으며, 그.. ↓댓글에댓글
  21. 21. 강경석 '03.2.5 3:42 AM 신고
    뒤로 전두환 노태우 로 이어지는 군사정권의 시조가 되었고, 그 군사정권은 사상초유의 국가적 비리를 낳았다. 그 이후로 이제 조금 살만해 지고 있어, 친일파와 박정희 에 대한 얘기가 서서히 고개를 다시 들고 있.. ↓댓글에댓글
  22. 22. 강경석 '03.2.5 3:43 AM 신고
    다. 너무 늦었지만, 이제야 역사를 바로 잡기 위해 서서히 정의 가 고개를 들고 있다. 그 선봉장엔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있죠. 얼마나 잘 할지, 다른 대통령들과 같을지는 전 알 수 없지만, 지금 친일에 대한 심.. ↓댓글에댓글
  23. 23. 강경석 '03.2.5 3:43 AM 신고
    판의 칼날이 다시 갈리고 있는 건 사실 입니다. ↓댓글에댓글
  24. 24. 강경석 '03.2.5 3:44 AM 신고
    승자만의 역사는 필요가 없죠. 님 자신의 '내' 가 알고 있는 사실은, 이미 다른 '나' 라는 사람이 알고 있는 겁니다. 혼자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길... ↓댓글에댓글
  25. 25. 강경석 '03.2.5 3:46 AM 신고
    그리고 황희 정승 얘기는 모함 이라는 게 전반적인 의견 입니다. 이회창 씨가 선거철에 노무현씨 지난일 가지고 꼬투리 잡았듯이 말입니다. 뭘 꼬투리 잡았었는지는 기억이... 듣지도 않았거든요. 노무현 씨가 화내.. ↓댓글에댓글
  26. 26. 강경석 '03.2.5 3:46 AM 신고
    는 장면만 봤었죠. ↓댓글에댓글
  27. 27. 강경석 '03.2.5 3:48 AM 신고
    한마디 더 한다면, 우리나라의 역사 유물이 많이 남아 있지 않은건, 일본일들 때문입니다. 문화 정치를 하면서 민족적 정신을 일본식으로 개조 시키기 위해 엄청난 수의 역사를 왜곡, 혹은 소멸 시켰죠. ↓댓글에댓글
  28. 28. 박승만 '03.2.5 9:40 AM 신고
    솔직히 말씀드려서 이런거 올리실거면 우리나라 팔아먹었거나 친일파로서 활동했다던지 했었던 모든 사람들의 정보를 배포하시는게 좋을듯^^ 괜한사람 하나가지고 따지기만 할거면 관두시지요. 친일파가 한두명? ↓댓글에댓글
  29. 29. 이희성 '03.2.5 11:03 AM 신고
    왜 이미 고인이 된분을 그렇게 욕하시져? 이미 지나간 세월인데 어쩔수없는거자나요 이렇게 떠든다고 박정희가 대통령안되고 다른사람이 되는것도 아니고 ↓댓글에댓글
  30. 30. 김도성 '03.2.5 12:56 PM 신고
    지나간세월이라 어쩔수없다니요.? 진짜확실하다면 재평가 받아야지요. ↓댓글에댓글
  31. 31. 강경석 '03.2.5 1:59 PM 신고
    박정희 가 대두 되는건, 그가 쿠데타 까지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박정희 가 대통령이 되지 않았다면, 친일파에 대한 좀 더 명확한 판단과 처벌이 있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박정희 가 그걸 다 막아 버렸죠... ↓댓글에댓글
  32. 32. 강경석 '03.2.5 2:02 PM 신고
    친일한 사람들은 수 없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악명 높은 사람이 박정희 죠. 박정희 가 요즘 세간의 주목을 끄는건, 기념관 건립에 따른 그 추종자들의 망언에 따른 겁니다. ↓댓글에댓글
  33. 33. 강경석 '03.2.5 2:04 PM 신고
    지을려면 더러운 지들 돈 들여서 지을 것이지, 왜 국민의 혈세가 거기로 들어가야 한다는 겁니까! 거기서 시작된 거죠! 다 부덕한 소인배 측근들 때문이죠. 그자들만 아니었어도 이렇게 까지 박정희가 표적이 되진.. ↓댓글에댓글
  34. 34. 강경석 '03.2.5 2:04 PM 신고
    않았을 겁니다. ↓댓글에댓글
  35. 35. 전창식 '03.2.6 1:50 PM 신고
    잘못된 역사는 반드시 재평가 되고 올바른 역사관을 심어줘야 됩니다.
    자기가 알고 있는 역사가 왜곡된거란 사실을 알았을때 받았던 그 충격이란.... ↓댓글에댓글
  36. 36. 이승진 '03.2.6 1:59 PM 신고
    박정희는 그냥 기회주의자일뿐이다라고 들었는데..일본에 붙었다 임시정부에 붙었다 그렇게..그리고 족보이야기 하시는데 경주 이씨 에 조상은 잘 모르고 파에서 고려사람으로 나오는데 그말씀이신지.. ↓댓글에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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