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2월 18일 화요일
“숨을 못쉬겠어… 엄마 사랑해” “아빠 살려줘요”
“지금 어떻게 된 건가요 제 옆사람 지금 숨넘어 갔어요.
빨리 좀….(‘콜록콜록’) 빨리!”(사고 당시 119 구조전화) 대구지하철 방화 참사 당시 전동차 안에 있던 승객들이 119 구조를 요청하거나,가족과 마지막으로 통화했던 내용이 19일 알려지면서 시민들의 가슴을 더욱 저미게했다.
구조를 요청한 승객들은 대부분 연기 때문에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한 채통화가 끊겼고, 주변 승객들의 처절한 비명소리 등이 들려 참혹했던 순간을짐작하게 했다.
“(40대 남성 비교적 차분한 목소리로) 지하철역, 중앙로역, 지금 불났습니다.
빨리 출동해 주십시오.
출동 부탁합니다.”(18일 오전 9시54분40초·최초신고전화) “(30대 여성 다급한 목소리로) 불났습니다.
(‘웩웩’하는 구토소리) 앞이 안보입니다.
(‘콜록콜록’, ‘꺄악’하는 주변 승객들의 기침,비명소리)”(58분56초) “(20대 여성 한동안 말 못 하다가) 악! 흑흑흑 …”(59분43초·마지막 신고전화) 119소방본부는 이 전화를 끝으로 더는 전동차 안 승객이 구조요청을 해오지 않아이후 대부분의 승객이 질식해 정신을 잃거나 숨졌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와 함께 2001년 미국 9·11 참사 당시를 연상시키듯 희생자들이 전동차 안에갇힌 채 가족과 한 마지막 휴대전화 통화 내용도 알려졌다.
“(울먹이는 목소리로) 아빠, 구해주세요.
문이 안 열려요.”(고등학생 딸이아버지에게) “부디 불효자식을 용서해 주세요.”(막내아들이 부모에게) “오빠, 영원히 사랑해 ….”(갓 결혼한 20대 여성이 남편에게) 전화를 받은 가족들은 넋이 빠진 채 사고현장으로 달려왔지만, 시커먼 연기만올라오는 지하철 입구에서 ‘마지막 목소리’만을 되뇌며 발만 동동굴렀다.
지하철에 갖힌 자식들이 부모들과 통화한 내용들이 속속 전해지자, 사이버 공간은 온통 눈물바다로 변했다. 네티즌들은 잠시 ‘대북송금’이나 ‘이라크전’에 대한 공방을 중단하고 모두 대구지하철 참사 사상자들의 명복을 빌고 사건 속보에 귀를 기울였다.
지난 95년 대구 가스폭파사건 때 사촌과 학교 은사를 잃었다는 '하늘보기'는 "왜 자꾸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건지 가슴이 답답하고 눈물이 흐른다"고 썼다. 대구에 사는 한 네티즌은 “8년동안 대구 지하철에서만 벌써 400명의 사상자가 발생됐다”며 “현재 대구 시민들은 패닉 상태에 빠져 있다”고 전했다.
사고차량 유족공개 현장 감식작업을 위해 사고 열차 두 대가 견인돼 온 대구시 달서구 유천동월배차량기지에는 19일 이른 아침부터 경찰 100여명이 출입문을 철저히 통제한가운데 실종자 가족들의 통곡과 오열이 이어졌다.
아침 9시15분께 관광버스 2대와 승합차 2대에 나눠 탄 실종자 가족 200여명이사고대책본부와 희생자 분향소가 마련된 대구시민회관에서 출발해 차량기지 정문에도착했다.
윤석기(38·처형 실종)씨 등 실종자 가족대표 9명은 경찰과지하철공사쪽에 사고 차량내부를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1시간여 동안 실랑이를 벌인 끝에 결국 20~30명씩 조를 짜서 5분여 동안 불이옮겨 붙은 차량의 겉모습만 보기로 했다.
오전 10시20분께부터 차례로 사고열차가있는 주공장으로 들어서던 유족들은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지하철 차량 수리장소인 주공장 안에 들어서자 1.5m 높이의 선로 위에 올려져있는 차체에서 매케한 냄새가 뿜어져 나왔다.
주검이 집중적으로 발견된 차량뒷부분은 감식작업이 진행중이라는 이유로 가족들에게는 앞쪽 3량의 차체만공개됐다.
열차 뒷부분에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개인신원확인팀 소속 감식전문가 12명과대구시경찰청 감식반원, 경북대법의학팀 등 30여명이 육안으로 주검의 상태를확인하는 작업이 진행중이었다.
겨우 형체만 알아 볼 수 있을 만큼 심하게 타버린 차체를 보자 당시 처참했던상황이 떠오르는듯 가슴을 치며 통곡하다 실신하는 가족도 있었다.
혹시 실종된딸의 핸드폰이 울리지 않을까 차체를 올려다 보며 떨리는 손으로 딸의 번호를누르다 오열하는 어머니의 모습에 지켜보던 경찰들 마저 눈시울을 적셨다.
뒤늦게 온 가족들을 합해 400여명의 가족들이 마지막 희망마저 저버린 듯 열차를올려다 보며 통곡했다.
이어 국과수 개인신원확인팀 정낙은 박사가 차량기지 식당에서 유족들에게20여분에 걸쳐 주검에 대한 감식절차를 설명했다.
감식작업은 우선 개인신원확인과화재 감식으로 나눠진다.
개인식별확인에서는 △주검수습 및 복원 △지문감식 등 신원확인 △가족들로부터실종자에 대한 정보 수집 절차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가족들이 제공한실종자에 대한 상세한 정보가 심하게 훼손된 주검의 신원을 파악하는 데 결정적인단서가 될 것이라며 가족들의 협조를 당부했다.
이를 위해 정보수집팀이 꾸려져 가족들을 일일이 만나 실종자들에 대한 정보를모으고, 신원확인 절차에 대한 개인 상담도 벌일 예정이다.
지문감식과 실종자의치과진료기록을 통한 치아대조, 유전자 감식, 주검의 안면복원술 등 신원을확인하는 데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사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과수쪽의 설명이 끝나자 감식일정과 신원확인 가능 확률 등을 묻는 유족들의질문이 이어졌다.
국과수쪽은 현재 심하게 훼손된 주검을 육안으로만 확인한상황에서 주검이 몇구인지와 감식기간 등을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대답했다.
지난해중국민항기 추락사고 때 실종신고된 123명 가운데 대부분이 신원확인을 했다는예를 들자 그마나 위로를 받은 듯 가족의 손을 움켜쥐는 모습이었다.
이어 국과수 감식팀이 마주오던 열차의 내부모습을 찍은 비디오 화면을 공개했다.
잿더미로 변한 열차 안이 구석구석 비춰지자 식당 안을 가득 메운 가족들은 서로를부둥켜 안고 오열했다.
감식절차에 대한 설명이 진행되고 있던 12시30분께 사고 현장에서 감식작업을벌이던 국과수박남규 화재연구실장과 김윤회 물리분석과장 등 화재감식팀 6명이목격자와 함께 차량기지에 도착해 사고 열차에 대한 감식작업에 들어갔다.
감식팀은 19일 하루 동안 1차 감정을 마친 뒤 20일부터 구체적인 일정에 따라주검수습과 복원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대구/박주희 기자 & Daum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