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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시리즈] 호남문제 바로보기 (1)

 
저는 두가지를 말하기 위해서 이 글을 퍼왔습니다.
첫째, 호남에게 과연 민주화의 정통성이 있는가?
둘째, 호남에게 과연 95% 지지의 명분이 있는가?
만약 그러한 호남의 지역감정이
정통성이 없고 명분도 없는 것이었다면
저는 더이상 망설이지 않고
그들은 대한민국을 망친 죄인들이라고 말하겠습니다.

구름님이 쓰신 글입니다.

선거만 했다 하면 90% 이상의 몰표가 쏟아지는 한국의 특수한 정치상황은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될 심각한 문제이다. 호남인들은 이런 호남 몰표 현상에 대해 여러 가지 궁색한 변명과 합리화를 하면서 한편으로 책임의 전가에 급급한데 호남의 이런 주장들이 과연 합당한지에 대해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나는 본다.

이 문제에 대한 호남의 주장을 대별하여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선거시 나타나는 지역별 몰표 현상은 호남에서 먼저 시작된 것이 아니라 영남정권이 장기집권을 위해 선거전략으로 채택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 전략의 요체는 선거를 지역대결로 몰고 가서 호남표를 포기하는 대신에 영남의 몰표로써 이긴다는 것이고, 이 계산에는 영남의 인구가 호남보다 많기 때문에 영남의 70%로써 호남의 90%를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런 지역감정에 기반한 선거전략의 실행으로 영남정권은 계속 승리했고 그 과정에서 호남에 대한 차별과 고립이 더욱 심화되었기 때문에 호남은 생존적 차원에서 정당방위적인 몰표를 줄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이다.

즉 호남의 몰표는 영남의 몰표에 대한 반사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맹목적이고 무조건적인 자기 지역 출신 정치인에 대한 지지는 영남 정권의 계산된 전략에 의해 영남에서 먼저 나타난 것이고 호남의 경우는 이에 대응하기 위한 약자의 저항권의 발로였다는 것이다. 이것이 영남의 패권적 지역주의에 대한 호남의 저항적 지역주의론이다. 역시 일관된 영남책임론이고 호남무죄론이다. 과연 그런지 살펴보자.

우리나라 선거에서 지역적 표의 집중 현상이 처음으로 나타난 선거는 언제부터일까? 김대중씨가 박정희와 경쟁했던 71년의 대통령 선거에서는 지역별 지지도 집중현상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그 때는 광주가 광역시가 되기 전이니까 호남은 단순히 전북과 전남이었다. 전남에서 박정희 47만 9천표, 김대중 87만 4천표, 전북에서 박정희 30만 8천표, 김대중 53만 5천표였다.

반면 영남은 대구가 광역시가 되기 전이어서 대구/경북, 경남, 그리고 부산의 세 곳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득표율은 대구/경북에서 박정희 133만표, 김대중 41만표였고 부산에서 박정희가 38만표, 김대중이 30만표를 얻었다. 경남은 박정희 89만표, 김대중 31만표였다.

전체적으로 영남에서 박정희는 72%, 호남에서 김대중은 64%의 득표를 했다. 상대적으로 자기 지역 출신에 대한 지지도는 이때도 영남이 더 높았다. 그러나 실제적인 성격에 있어서 이때까지만 해도 노골적인 전라도 몰표, 경상도 몰표라는 선거 정서는 보이지 않았고 대통령 선거가 지역간 대결 양상으로 치닫지도 않았다. 영남이 박정희의 고향, 호남이 김대중 후보의 고향임을 감안하면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 자기 고향 출신 후보에 대한 호감의 표현 정도를 넘지 않았던 것이다. 극히 상식적인 홈그라운드의 이점에 불과했다.

그 전인 63년도 혁명위원회 의장 박정희와 윤보선 전대통령과의 대결은 역사상 가장 미세한 표차를 보인 선거였는데 두 후보의 표차이는 겨우 15만표에 지나지 않았다. 이때 박정희가 이긴 선거구는 오직 호남과 영남뿐이었고, 서울, 경기, 충청, 강원, 제주에서는 윤보선 전대통령에게 전패했다. 박정희는 겨우 15만표 차이로 이겼는데 이때 호남에서만 박정희는 35만표를 이겼다. 호남은 박정희 승리의 주역이었고 가장 중요한 정치적 텃밭으로 떠올랐다.

지금 호남 사람들은 영남정권, 특히 박정희가 72년 선거에서 김대중한테 신승하고 난 후에 김대중을 두려워한 나머지 그의 출신지역이고 정치적 기반인 호남을 차별하고 고립시키기 시작했다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전혀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호남은 오히려 박정희의 정치적 기반이 되어준 지역이었고 김대중과의 대결에서도 박정희한테 그런 대로 만족할만한 지지를 보여준 지역이었다. 그리고 미세한 차이로 이긴 것으로는 윤보선과의 대결이 더욱 아슬아슬했다. 때문에 선거 이후에 김대중을 두려워해서 호남을 전략적, 의도적으로 박정희가 고립시켜 나갔고 호남의 지지를 아예 포기하고 영남에만 의존하게 되었다는 호남인들의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박정희의 입장에서도 호남을 포기하고 영남의 지지만을 자신의 정치적 토대로 삼아야 할 어떤 이유도 명분도 필요성도 발견할 수 없다. 그리고 두 번에 걸친 대통령 선거의 득표 결과는 농업지역인 호남에서 박정희의 지지가 상당히 높았다는 사실이다. 윤보선과의 대결에서는 호남은 압도적으로 박정희를 지지했고, 김대중과의 대결에서도 충분한 지지도를 보여준 것이다.

영남과 비교해 봤을 때 호남에서 박정희가 얻은 득표는 결코 적은 것이 아니었다. 이것은 박정희의 중농 정책이 호남인의 지지를 얻고 있었다는 증거이다. 박정희의 경제개발 과정이 오늘날 호남인들이 한 목소리로 비난하는 것처럼 영남우대/호남차별, 공업우선/농업홀대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박정희의 농업중시는 당시의 농촌사람들한테 진심으로서 전달이 되고 있었다.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 측면에서의 호남차별은 전혀 사실이 아니며 심정적으로도 그렇게 다가가기 않았던 일이다. 그것은 농업인구가 대부분인 호남사람의 박정희에 대한 호감이 잘 보여주고 있다.

계속...

밀려오네
2003-02-21 12:16:42
677 번 읽음
  총 9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1. 칼로스 '03.2.21 8:19 PM 신고
    :-D*아직도 지역이기주의 부추기는 사람들이 많으니 알다가도 모를일이죠 자기는 어디 출신이가니 그렇게 떳떳하게 나온다고 하나요 ↓댓글에댓글
  2. 2. 김상훈 '03.2.21 11:48 PM 신고
    :-D*이 글 어디서 퍼온신 건가요?? ↓댓글에댓글
  3. 3. 밀려오네 '03.2.22 8:00 AM 신고
    :-D*다음카페에 제가 활동하고 있는곳에서 가져 왔습니다.. ↓댓글에댓글
  4. 4. 김상훈 '03.2.22 4:52 PM 신고
    :-D*아 그러세요. 제가 이 글을 몸담고 있는 학회 까페에 올릴려고 하는데 가능한가요?? ↓댓글에댓글
  5. 5. 김상훈 '03.2.22 4:53 PM 신고
    :-D*허락해 주시면 정확한 출저를 좀 가르쳐주세요 m(__)m ↓댓글에댓글
  6. 6. 밀려오네 '03.2.22 9:21 PM 신고
    :-D*정확한 출처를 알아내서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제가 쓴글은 아니지만 관심을 가져주니 고맙습니다.. ↓댓글에댓글
  7. 7. 박수영 '03.3.3 9:04 PM 신고
    :-D*음...그당시 부정개표로 박정희대통령이 당선되었던건 다아는 사실인데... ↓댓글에댓글
  8. 8. 박수영 '03.3.3 9:05 PM 신고
    :-D*근거 자체가 부정으로 얼룩져있어서 주장에 설득력이 없어보이네요. ↓댓글에댓글
  9. 9. 박수영 '03.3.3 9:06 PM 신고
    :-D*개인적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은 100년에 한번 나올만한 위대한 지도자였다고 생각합니다. ↓댓글에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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