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사람들이 자신들에 대한 타지역 사람들의 배타와 냉대를 체감하기 시작한 것은 71년의 대선이 시작되기 전부터였다. '하와이, 깽깽이'라는 속어가 전라도 사람을 비하하여 지칭하는 것으로 유포되고 '라도 기질'이 사람들 사이에 언급되기 시작한 것은 60년대 후반부터라는 것이 그 무렵에 청년기를 보냈던 이 나라 노장층의 공통되는 기억이다.
그렇다면 박정희가 516혁명으로 집권하고 불과 몇 년이 지나지 않은 무렵에, 그리고 1차 5개년 계획이 겨우 완료된 시점에서 경제개발의 실제적인 성과가 가시화 되지도 않았던 무렵에 이미 전라도 사람에 대한 기피현상이 하나의 사회현상으로서 나타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64년 선거에서 호남의 압도적인 지지에 힘입어 당선된 박정희 대통령이 호남을 일부러 차별하고 소외시키는 경제정책을 일부러 시행했을 리는 없고 당시의 경제 관료들의 증언이나 회고를 통해서 보더라도 권력층 내부에 그런 정서는 전혀 나타난 적이 없었다.
71년 김대중과 붙었던 대선에서도 확인된 호남에서의 만만치 않은 박정희 인기는 박정희 정권이 고의적이고 의도적인 호남차별 정책을 시행한 바가 없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척도이기도 하다. 설사 공업의 발전에 따른 도농간의 소득격차가 뚜렷해지기 시작했고 도시의 공장에 취업하기 위한 이농현상이 대규모로 발생하고는 있었다 해도 대표적인 농업지역인 호남에서 그것이 정권차원의 고의적인 차별정책의 산물이라고 느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이야기다.
우리가 한가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국민 대중 사이에 급속하게 퍼져 간 전라도 기피 현상은 집권 세력의 출신지를 가지고 성격을 규정하는 훗날의 지역정권론이 태동한 것보다 더 이른 시기에 나타났다는 것이다. 70년대 초,중반 까지만 해도 당시의 박정희 정권을 '영남정권'이라고 칭한 사람은 없었고, 특정 지역인들에 의한 패권정치로 규정하지도 않았다. 정권이나 정치인에 대해서 '영남' 혹은 '호남'이라는 출신지역의 레테르를 붙이는 관행은 80년 이후에 나타난 현상들이다.
그렇다면 전라도 기피현상, 라도 기질에 대한 혐오는 누구에 의해서, 무엇을 위해서, 어떻게 유포되기 시작했을까?
지금 호남인들은 라도 기질이라는 것이 영남정권에서 호남을 고립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들어 내고 유포시킨 악랄한 정치공작 내지는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교묘한 세뇌공작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즉 호남인들은 전혀 라도 기질이라는 것과 상관이 없고, 또 라도 기질로 해서 타지역 사람들한테 척이 진 일도 없는데 소수의 특정인들이 이것을 꾸며내고 만들어서 조직적으로 체계적으로 퍼뜨려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주범은 영남정권과 영남인들이며, 그 발원지 역시 영남지방이라는 것이다.
자, 과연 이런 주장이 사실일 수 있는지 살펴보자. 60년대 중반이면 우리가 월남에 파병할 무렵이다. 겨우 경공업이 가동되기 시작해서 생필품의 국산화가 이루어 진 시기이다. 농촌의 난방이나 취사용 연료는 대부분 산에서 채취한 나무나 솔잎이었고, 도시는 연탄의 보급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졌고, 전기 사정은 열악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예고 없는 정전이 되던 시절이었다.
흑백 티비의 국산화가 꿈이던 시절이었고 수입 브라운관을 사용한 티비의 조립이 시작되고 있었다. 주식의 자급은 요원했고 농촌의 소출량은 국제 수준을 훨씬 밑돌았으며 봄의 춘궁기에는 악명높은 보리고개가 상존하고 있었다. 매년 여름마다 코레라, 이질, 뇌염 등의 전염병이 농촌 지역을 휩쓸었고 사람들이 떼죽음을 당하기도 했다.
이런 비참한 농촌생활을 피해서 이농현상이 일어난 것은 60년대 초반부터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자기 고향을 크게 벗어날 일이 없는 농경사회의 생활패턴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유사 이래 처음으로 여러 고장 사람들이 뒤섞이면서 서로 부대끼는 경험을 하게된 것이 육이오 동란이었다.
이때 타지로 흘러 들어온 것은 대개 이북 사람들이었고, 이남 사람들 중에 피난을 내려 온 사람들은 유엔군의 영토 수복에 맞추어서 거의 고향으로 되돌아갔다. 이런 다수 지역 사람들의 단기간 혼입은 여러 가지 갈등과 마찰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거기서 반드시 드러나는 것이 '텃세'이다.
즉 원래부터 그 곳에서 살던 토박이들의 위세와 유입자들의 위축이다. 그리고 생활 터전이 이미 있는 토박이들과 생존책을 새로이 강구해야 하는 유입자들의 입지의 차이에서 드러나는 지역 기질의 왜곡이 나타나게 된다. 즉 토박이들과 유입자들은 각자의 기질 중에서 특수상황에 필요한 부분만이 나온다는 것이다.
이북 사람들인 경우에 이 기질이 거칠고 사납고 전투적인 면에서 두드러졌다. 평안도 기질, 함경도 기질이 남한의 터줏대감들과 심각한 충돌을 야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육이오가 가져온 지역혼합은 전쟁이라는 절박하고 불가항력적인 천재지변에 따른 타의적인 강제 이주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외지인이면서도 토박이들한테 사양이나 양보 없는 도전이 용인될 수가 있는 분위기였다.
다시 말하면 소수의 외지인 신세라 해도 죽기살기식의 생존투쟁이 한편으로 인정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토박이들을 치받아도 '그럴 수도 있는 일' 또는 '오죽했으면'하는 동정적 용인이 있었다는 것이다. 전쟁이라는 특수상황은 이런 혼합을 쉽게 융화되게 만들었고, 이북사람들은 재빨리 타지에서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반면에 호남은 육이오때 인구의 이동이 거의 없었다. 인민군의 남침시 호남을 경유한 것은 6사단 뿐이었다. 오직 1개 사단의 인민군만이 무인지대를 소풍가듯이 호남을 통과해서 진주, 마산 방면으로 진격했다. 호남에 잔류해서 호남을 행정적으로 통치한 병력이나 후방 행정요원도 극소수에 불과했다.
육이오때 호남은 인민군의 지배를 받았다기보다 인민군이 한번 스쳐 지나간 것에 불과했다. 그리고 속성상 농촌 사람들은 피난에 소극적이다. 후방으로(가봐야 부산뿐이지만) 피난을 간다해서 뾰족한 수가 없고, 최소한 농촌에서는 굶지는 않는다는 보장이 있기 때문에 호남인들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니까 육이오 전쟁 동안 대구, 부산을 낀 좁은 낙동강 지역에 전국 사람들이 몰려들어 뒤섞인 가운데 서로 치열하게 부대끼던 그 시기를 호남은 홀로 조용하게 넘긴 셈이었고, 이때 타지방 사람과의 혼합 체험을 가질 수가 없었다.
반면에 이북사람들을 포함해서 서울, 경기, 충청, 강원도 사람들은 피난생활을 통해 서로를 접촉하고 부대낀 소중한 체험을 이미 해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서로 간에 성질과 속성을 어느 정도 파악하게 되었다. 부산넘 뱃놈성질은 어떻고, 평안도 아바이는 어떻고, 강원도 감자바우는 어떠하다가 대충 드러났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하와이 깽깽이의 정체는 이때까지는 베일에 쌓여 있었다. 호남만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산업화의 초창기에 이번에는 모든 지방이 다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데 유독 호남만 대규모로 보따리를 싸게 되었다. 산업화에 따른 이농의 주무대가 호남이 된 것이다. 육이오때는 영남만 빼고 전국민이 움직여 다녔지만 60년대에는 전국이 제자리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있는데 호남만 집에 불난 사람들처럼 쫓아다니게 된 것이다.
이건 필연적으로 소수의 외지인으로서 가는 곳마다 토박이들의 텃세를 각오해야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육이오때 처럼 전국이 한꺼번에 움직인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남으로 피난내려 온 이북사람들이 타지에서 누릴 수 있었던 땡깡과 곤조, 개기기, 앵겨들기가 받아들여질 수가 없었다. 그들은 소수자, 무산자, 하층계급으로서 하나 둘씩 밤열차의 삼등칸에서 낯설은 타향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타지에 온 유입자로서는 처음으로 어떤 특권도 갖지 못한, 소수 약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라도 기질이 과거의 이북넘들 기질보다 심각하고 끈질긴 만성질환으로 착근하게 된 것은 이런 사정의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에 유대인들이 타국에 떠돌면서 받았던 질시와 냉대의 원인이 된 유대인기질이나 유럽 각국에서 천대받았던 집시들의 집시근성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전라도 기질의 본질이 무엇이던지 간에 그것은 타지에 흘러 들어온 외지인이 현지인들로부터 배척받게 마련인 소수 근성인 것이다. 다수의 성질과는 이질적인 소수 그룹의 속성은 주류인 다수로부터 배척받게 마련이고 그것에는 '비정상, 불량, 열등'이라는 낙인이 찍히게 된다. 전라도 기질의 실체는 이런 사회적 환경 속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을 특정 지역 사람, 특정 정치 세력의 계획적이고 의도적인 조작의 산물이라고 왜곡하여 주장한다는 것이고, 그것이 이 땅에 새로운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계속...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