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이오 동란의 피난생활이라는 대규모 인구 혼합의 체험을 통하여 호남을 제외한 전국이 현지인과 외지인이 어느 정도 뒤섞인 채 안정을 이룬 상태가 되었다. 즉 순수한 증류수가 아니라 여러 가지 불순물이 뒤섞인 상태의 안정이었다. 유독 호남만이 클린한 상태의 순수한 호남을 유지하고 있었다.
육이오 이후 한국은 어느 지방 사람이 어느 지방을 가더라도 외지 또는 타향이라는 이질감을 크게 느끼지 않게 되었다. 왜냐 하면 이미 한번 크게 섞인 다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호남은 타지인이 들어가면 당장 표가 났다. 호남은 혼혈되지 않은 호남인의 순수한 호남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같은 이유에서 제주도도 그렇다. 제주도는 내지인이 발붙이기가 무척 힘든 곳이다. 타지인의 착근을 용납하지 않으려 한다. 대단히 배타적이고 텃세가 강하다. 그 다음 텃세가 강한 곳이 호남이다. 당연히 이 두 지방은 외지인들과 대량으로 뒤섞여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타지인이 호남에 들어왔을 때 그런 것처럼 호남인이 타지에 가도 금새 표가 났다. 뭔가 이질적인 요소로 겉돌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서로 부대껴본 적이 없는 낯선 속성이기 때문이다. 면역체계에 입력되지 아니한 새로운 병원체인 것이다.
여기에 시너지효과를 가져온 것이 내가 다른 글에서 설명한 적이 있는 군대에서의 '전라도 고참'이다. 호남 사람들은 부정하고 싶겠지만 군에서의 '전라도 고참'의 악랄함은 그 시대에 군대를 갔다 온 대한민국 모든 남자들의 공통된 체험이고 기억이다.
이것이 가져온 효과와 영향력은 실로 엄청나다. 호남 배척의 가장 큰 이유로 나는 이것을 꼽는다. 물론 군에서 '전라도 고참'이 하나의 고유명사가 되고 군대 문화의 한가지 특성으로 자리잡은 데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그것은 내가 별도로 설명한 바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이농에 따른 도시로의 인구 유입에 호남인들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것, 그리고 호남인들은 전쟁 중에 타지역 사람들이 겪은 혼합의 체험이 없었다는 것, 그리고 타지로의 유입이 개별적이고 소규모적이고 분산된 것으로 진행되어 하나의 집단으로서 힘을 갖지 못했다는 점, 그리고 이 시기의 군에서 형성된 '전라도 고참 공포증'이 전국적으로 호남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고착시켰다는 점등이 '전라도 기피 현상'의 주원인이다.
그리고 라도 기질에 대한 공감과 확산은 그야말로 국민대중 사이에서 자생적으로 자연발생적으로 퍼져 나갔고, 여기에는 어떤 인위적이고 정치적인 그리고 행정적인 배경이나 주체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영남인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어떤 증거나 정황도 발견할 수가 없다.
전라도 기피현상과 라도 기질에 대한 배타는 영남에서 먼저 일어난 것도 아니고, 영남에서만 있었던 현상도 아니다. 그것이 가장 먼저 발생한 것은 증거를 댈 수는 없는 일이지만 시기적 순서로 제일 빠르기는 서울이고, 강도로써 제일 강하기는 충청도였다고 대부분 기억하고 있다.
실제로 영남은 전라도 기피 현상이 그리 심하지 않은 지역이다. 그리고 호남사람들한테 이야기를 들어봐도 타지 생활에서 전라도 사람이기 때문에 겪은 차별이나 설움이 영남이 제일 심했다고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내가 영남인이고 40년 이상을 영남에서 살아왔지만 전라도 차별 의식을 별로 대면하는 경우가 없다. 물론 완전히 없다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그렇게 우려할 정도로 노골적이고 표면적인 전라도 혐오는 없다는 것이다. 영남 사람 마음 속에 그런 정서는 별로 강하게 자리잡고 있지 않다고 구름은 생각한다.
내가 이 글의 제목을 '지역 감정 바로 보기'나 '영호남 갈등 문제' 또는 '동서 화합 문제'라고 붙이지 않고 '호남 문제'라고 결정한 것은 결코 영남과 호남 사이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고, 영남인이 주도적인 역할을 해 온 일도 아니기 때문이고, 이건 호남과 호남을 제외한 전 대한민국의 문제이기 때문에 '호남 문제'라는 것이 가장 본질에가깝다고 생각한 때문이다.
전라도 차별이나 호남 기피는 영남이 주도한 것이 아니며, 영남에서 제일 먼저 시작된 것도 아니고, 영남에서 제일 극심했던 것도 아니고, 영남 정권이나 영남출신 대통령과도 전혀 상관이 없는 문제라는 것. 이것을 우선 밝혀 놓고 다음 이야기를 하기로 한다.
계속...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