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철수 혹은 조정론이 왈가왈부 논쟁의 대상으로 떠올라서 여러 가지 의견들이 난무하고 있다. 주로 민족주의적 입장(심한 경우에는 국수주의적 인상까지 받았지만)이지만 주한미군을 바라보는 시각, 그리고 미국의 주한미군 주둔에 대한 본질적 의도와 목표 등을 정확히 짚은 글들을 읽을 수 있었다. 주한미군 주둔의 유래, 배경 그리고 그 본질적 의도의 변질과정도 많이 배울 수 있었다. 주한미군이 동북아 군사적 지형에서 지니고 있는 세력균형추의 역할, 주한미군이 철수할 경우의 한반도 군사적 위험성에 대한 분석 등을 읽노라면, 인터넷 3년이면 천재가 될 것이다라고 넋두리했던 내 잡문이 진실인 것처럼 느껴지곤 한다.
주한미군이라는 단어가 함축하고 있는 여러 정치/군사적 의미에 대해서 논리적 접근이나 분석을 하기에는 너무 얕은 식견이지만 나름대로 주한미군에 대하여 지니고 있는 생각을 끄적거려 본다.
주한미군 주둔성격의 변천사를 크게 나누면 아마 다음 세 단계가 될 것 같다.
첫째는 말 그대로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억제하고 정전협정을 준수·감시하는 일종의 평화유지군 단계이다. 한국전쟁 종전 이후 대략 70년대 초반까지에 해당될 듯 싶다. 북한에 비해서 너무 열세인 남한의 군사력을 재래식 무기를 중심으로 보완하는 역할이다. 북한의 재침공을 무력으로 억제하여 한반도에서 비록 제한적이지만 일종의 군사적 균형을 이루는 역할이었다.
두 번째 단계는 위의 역할에 미국의 제3의 이익을 추구하는 임무가 추가된 형태이다. 즉 한반도에서의 전쟁억지라는 기본 임무 외에 동북아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군사력을 물리적으로 견제하는 역할이다. 이 역할의 가장 핵심은 주한미군이 보유한 제한적 핵전술무기와 중장거리 미사일이다. 미국의 카터 대통령 재임시절 주한미군이 보유하고 있는 대량의 핵무기를 철수하는 문제를 놓고 박정희와 카터 사이에 오갔던 신경전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그 핵무기와 미사일시스템은 북한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바로 중국과 소련을 겨냥한 것이다. 그 핵무기의 관리 및 운용을 주한미군이 담당했던 것이다. 물론 그러한 대량공격용 무기 때문에 한반도에서의 전쟁억지력은 더욱 배가된 것은 사실이겠지만 한반도를 미-소 냉전대결구조의 치열한 군사적 각축장으로 이해했던 냉전시대의 산물이기도 하다.
세 번째는 아마 90년대 이후에 해당될 것 같은데, 주한미군의 역할에 대한 적극적 논란이 제기된 시점과 비슷하다. 미-소 냉전체제가 해체되어 다자간 무한경쟁시대로 돌입한 시대에 군사력만을 내세운 주한미군의 존재 의미에 대한 적극적 재검토단계이다. 이미 주한미군이 핵무기로 위협할 상대는 사라졌다. 중국도, 러시아도 미국이 먼저 핵무기로 위협할만한 대상은 이제 아닌 것이다. 그저 오직 혹시 만에 하나라도 있을지도 모르는 중국이나 러시아의 선제공격을 미리 예방하는 차원의 군사적 시위로 그 의미가 축소된 것이다. 이때 등장한 개념이 바로 중-러-일-한반도간의 세력균형추 역할론이다. 중-러-일 3대강국이 군사적으로 충돌할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는 한반도 지역에서 혹시 일어날지 모르는 불의의 국지전을 미연에 방지하고 또한 일본의 재무장(핵무장)을 방지하며, 중국과 러시아간의 군사적 긴장을 조금이나마 완화시키는 완충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이 그 핵심이다. 북한의 전쟁 재발 억지는 이미 경제적으로 엄청나게 성장한 남한만으로 충분히 가능하므로 주한미군은 그러한 본래 목적에서 더 나아가서 한반도 지역을 둘러싼 강대국의 군사적 긴장을 완화시키는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 미국의 주장이다.
위의 단계를 나름대로 압축하면 제1단계는 미국측도 나름대로의 목적이 있었겠지만 그보다도 생사가 달려있어서 주한미군의 주둔을 무조건 요청할 수밖에 없는 남한을 미국이 일방적으로 도와주는, 일종의 시혜적인 단계이며, 2단계는 한국과 미국의 상호이익이 어느 정도 합치된 경우, 3단계는 한국의 이익보다 미국의 이익이 더 크게 걸려있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주한미군 철수론을 둘러싸고 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왈가왈부는 위의 세 단계 중 어느 입장에 서서 주한미군을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말싸움이라고도 할 수 있다. 주한미군 철수가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굳게 믿고 있는 수구냉전세력 진영은 위의 세 단계 중 아직도 첫 번째 혹은 두 번째 단계의 시각에서 주한미군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곧바로 전쟁이 일어나며 그 전쟁은 군사적으로 우월한 북한의 승리로 끝날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철수는 불가능하다."라는 주장은 아직도 그 집단의 사고방식이 위의 첫 단계에서 머물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주한미군이 철수하게 되면 한반도 주변의 중국-러시아-일본의 군사적 긴장이 증대되고 이러한 긴장은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악영향을 미치게 되므로 이러한 것을 미리 예방하는 차원에서라도 주한미군 주둔은 필요하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위의 단계 중 두 번째 단계에 있거나 아니면 세 번째 단계 중 미국측의 주장 즉 동북아세력 균형추 역할론에 동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주한미군 주둔의 제일 당사자인 우리나라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이해하고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 이제 필요 없으니 무조건 나가라고 등을 떼미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제발 더 있어달라고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애원해야 좋을까?
가장 현명하고 지혜로운 방법은 바로 주한미군을 우리 이익에 맞게 이용하는 것이다. 어차피 미국도 자기들 이익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오늘이라도 당장 주한미군을 철수하게 되어있다.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서 왔노라고 거창하게 떠벌리는 것은 자기들 공치사에 불과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주한미군이 우리에게 하등의 도움도 되지 않는다면 오늘이라도 당장 물러가라고 우리도 미국측에 요구해야만 한다. "70년대까지는 일단 고마왔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자세가 우선 필요한 것이다. "우리의 생명을 지켜주셨으므로 우리는 평생 그 은혜를 잊지 않고 배은망덕하지 않고..."라는 식의 자세는 그저 사람과 사람 사이에만 있을 수 있는 "아름다운 관계"인 것이다. 국가 대 국가 차원에서는 완전 멍청이 소리 듣기 딱 알맞은 바보 같은 자세라는 얘기다.
그러므로 핵심은 상호이익을 철저하게 따져보고 검증하는 냉정함과 지혜가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주한미군이 전쟁억지력의 차원에서 우리에게 필요한가 아닌가를 따지는 것 이상으로, 우리가 주한미군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이익과 또 그로 인해서 감내해야만 하는 비용은 각각 무엇인가를 냉철하게 되짚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통일된 대한민국 시대에도 과연 주한미군은 필요하게 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심각하게 짚어야만 될 것이다. 통일 이후에도 필요하다고 하면 지금 주한미군철수를 주장하는 것은 너무 섣부른 것이라는 판단이며, 반대로 주한미군 철수 반대의 이유가 판에 박힌 듯한 "전쟁운운"하는 수준이라면 이것도 매우 한심한 꼴인 것이다.
통일대한민국 시대에도 주한미군이 필요한가에 대한 검토시 기준이 되는 잣대는 바로 "주한미군 철수로 인한 동북아지역 세력불균형을 메우기 위해서 통일대한민국이 감수해야만 하는 "가 될 것이다. 이 눈에 확연하게 보이는 국방비 외에도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지불해야만 하는 일종의 기회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민족의 자존심과 이 추가비용을 서로 비교하는 것이 맨 처음 출발이 될 것이다. 지금 단계에서 섣불리 예단하기는 조금 힘들다. 다만 몇 년 전에 김대중대통령도 "통일이후에도 주한미군 주둔은 필요하다"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는 점을 기억해 볼 필요는 있을 것이다.
그 전에라도 먼저 바라고 싶은 것은, 주한미군 주둔의 성격이 이제 남한의 이익보다 미국의 이익이 더 크게 부각되는 환경이 되었으므로, 이에 걸맞게 주한미군 주둔에 따른 여러 조건(SOFA나 주한미군관련 비용 분담문제 등)도 적절하게 타협해 나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촛불시위의 목적이고 본질인 것이라는 것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미국만 모르고, 국내 수구냉전세력들만 짐짓 모른 체 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주한미군 철수 운운하면서 협박만 하면 부르르 떨었던 옛날 같은 줄 알고 아주 안하무인격의 헛기침만 하고 있는 미국의 또라이들도 한심하지만, 뻔히 알면서도 실제로 부르르 떨고 있는 수구냉전세력들이 더 한심하다. "머나먼 이국 타향만리에 가족을 떠나서 북한 공산괴뢰집단으로부터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하여 어쩌구 저쩌구..." 읊조렸던 수구냉전 세력들의 합창과, 그러한 합창소리에 한껏 기분이 좋아져서 세월이 흘러 이제 완전히 바뀐 세상인 것을 모르고 있는 미국 패거리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주한미군은 우리가 필요로 하면 있는 것이고, 우리가 필요하지 않다고 하면 떠나야만 하는 것이다!"라고...이제 그러한 세상이 되었노라 하고 선포하는 목소리가 지금 우리나라를 덮고 있노라고...
또 한 가지 우리가 고려해야만 하는 문제는 바로 주한미군 주력부대의 성격이다. 주한미군의 주력은 공군과 정보부대이다. 80년대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공군 전투기의 행동반경이 그리 넓지 않고 감청을 비롯한 정보부대의 기술이 그리 발전하지 않았으므로 남한 내부에 미국 공군기지와 정보부대가 주둔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와 다르고 또 앞으로 갈수록 달라질 것이다.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굳이 공군기지와 정보부대가 남한 내에 상주할 필요성이 갈수록 적어지고 있다는 점도 중요한 요소이다. 국내의 공군기지에서 수행할 작전을 괌이나 오키나와에서도 그리 큰 불편 없이 수행할 수 있다면, 국내의 미군기지에서 수집·분석하는 정보를 태평양에 떠있는 항공모함에서 훨씬 더 잘 처리할 수 있다면, 미군이 한국에 주둔할 절박성과 절대성이 점차 옅어지게 되는 것이다. 주한미군이 지니고 있는 군사적 가치만 놓고 보면 그렇다는 얘기다. 군사적 역할만 강조하면 굳이 한국에 공군기지나 정보부대가 상존할 필요는 이제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주한미군을 군사적 측면에서만 바라보고 평가할 것인가? 그래서 철수하라 혹은 철수하지 말라고 논박하는 것이 타당한 것인가? 주한미군은 이미 군사적 문제를 넘어서 정치적 의미까지 지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큰 문제이며, 그래서 더 신중하게 검토해야만 하는 단계라고 생각한다.
향후 주한미군이 순전히 군사적인 측면에서만 이해되지 않고 동북아 세력 균형이라는 일종의 정치적 의미까지 지니고 있는 것으로 모두가 이해하게 되면 그때는 주한미군 주둔비용의 일부를 우리만 부담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 러시아, 일본도 같이 부담해야만 한다고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는 그러한 당당한 자세의 언론을 우리는 보고 싶다.
- 출처 -
이름: 박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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