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회담이 세상을 바꿨다
대북 송금 문제에 대한 수구 세력들의 접근법을 보면서 참으로 개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국가 이익과 민족 이익에 대한 최소한의 고려도 하지 않은 채 정적을 죽이기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좋고, 그것이 공동체의 이익을 파괴해도 좋고, 사대 매국적이어도 좋다는 식의 태도를 보면서 끊어 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19세기말과 20세기 그리고 21세기에 이르기까지, 장장 3세기에 걸치도록 그 본질이 바뀌지 않는 이 땅의 수구 세력들은 너무도 간악한 존재들이다.
만일 2002년 대선에서 수구 세력들이 승리하였다면 지금 부시 때문에 미국이 이성을 상실하고 있는 것처럼 한국에서도 미국과 비슷한 일이 발생했을 것이다. 우선 끓어오르는 분노를 차분히 가라앉히면서 남북 정상회담의 의미를 격하시키려는 수구 세력들의 행위에 대한 논리적인 비판을 해보도록 하겠다.
수구 세력들은 대체로 특정한 사회 현상을 부정적인 방향으로 해석하려고 든다. 나는 이번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수구 세력들의 태도를 보면서 처음에는 이들이 정략적인 차원에서 접근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부정적인 이미지화를 시도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가면 갈수록 의도적인 것을 넘어서서 수구 세력들의 의식 구조 자체가 심각한 결함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수구 세력들은 자신들이 하지 않은 모든 일들은 전부 문제 투성이고 순수한 것이 없다는 듯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 뿐만 아니라 수구 세력들은 역사를 인식하는 방법이 매우 천박하다. 이들은 특정한 역사적 사건을 설명하고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구조적인 시각이라는 것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있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객관적인 해석을 도출해내는 것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영양가 없는 음모론만 유포시키는 것이다.
위와 같은 두 가지 시각을 가지고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수구 세력들의 접근법이 가지는 문제점을 비판하려고 한다.
수구 세력들은 현대의 대북 송금이 남북 정상회담 성사를 위한 대북 뒷거래라고 규정하고 있다. 전에도 말한 바 있지만 ‘뒷거래’라고 규정해버리면 이미 정상회담의 의미가 퇴색되어 버린다. ‘뒷거래’라는 용어는 정상적이지 못하고 음험한 그 무언가가 있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에 정상회담의 당사자인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은 뭔가 떳떳치 못한 행동을 한 것처럼 비춰지게 된다.
사실 이와 같은 부정적인 용어 사용은 수구 세력들이 민주화 운동 세력에게 가하는 고전적인 공격 방식이다. 특히 김대중에 대한 의도적인 왜곡과 부정적인 인신 공격은 너무나도 잔인했었다. 강준만 교수의 명저 ‘김대중 죽이기’에도 잘 나와 있지만 김대중의 모든 것은 수구 언론에 의해서 삐딱하게 비추어졌다. 한 예를 들자면 꽃을 좋아하는 김대중이 꽃을 다듬는 모습조차 교묘하게 뒤틀리게 보도하여서 마치 김대중이 과격한 인물인 것처럼 이미지화했었다. 이런 것을 생각해보면 수구 세력들이 ‘뒷거래’ 라고 규정하면서 부정적인 선입관을 가지도록 유도하는 행위는 그다지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부정적인 선입관이 형성되게 되면 세상이 진짜로 그렇게 보인다. 나를 제외한 것은 모든 것이 더럽고 불결하기 때문에 남을 믿어서도 안되고 오직 내가 가진 의지만을 믿고 확신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게 되어서 극단의 부정과 불신이 사회에 만연하게 된다. 군사독재 정권이 국가적 차원에서 국민들 사이의 불신과 증오심을 조장하였는데 나는 위와 같은 점을 군사독재 정권이 이 사회에 끼친 해악 가운데 으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점을 고려해 본다면 남북 정상회담을 ‘뒷거래’라는 용어를 통해서 접근하는 것은 그 자체가 이미 심각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화보다 더 큰 문제는 남북 정상회담의 성사라는 역사적 사건을 설명하는 데에 있어서 구조적인 조건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수구 세력들은 역사를 해석하는 데에 있어서 구조적인 시각을 의도적으로 배제한 채 특수한 국면에서의 특정 행위자의 의도에만 초점을 맞춘다. 이것은 이번 경우에만 해당되지 않으며 수구 세력들이 역사 왜곡을 할 때 즐겨 사용하는 방식이다.
전후 사정과 역사적인 맥락을 무시한 채 특정 국면에서의 행위자의 의도성만을 강조하게 된다면 정확한 역사 해석을 하기 어렵다. 그래서 구조적인 시각을 배제하게 된다면 남는 것은 인간의 의지와 욕심과 같은 비정형화된 요소만이 남게 된다. 그럴 경우 그 당시에 권력을 가지고 있는 자들은 특정 결과를 낳게 하는 데에 결정변수가 되어 버린다. 당시 상황에서 권력을 가진 자들은 특정한 행위를 낳게 하는 데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존재이다. 그리고 이들이 특정한 행위를 하는 이유는 그들이 권력에 대한 욕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해버린다.
모든 것을 행위자의 의도성과 욕심으로 설명해버리고 나면 남는 것이 없으며 현실을 분석하고 미래를 위한 대안을 설계하는 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성인 군자의 선행을 설명하면서 성인이 위와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이 다 자신의 명예를 높이기 위해서라고 설명해버리면 정말 할 말 없어진다. 그리고 부모가 자식을 아끼는 것을 두고 다 후에 자신의 노후를 보장받기 위한 행동이라고 설명해도 할 말이 없다. 그리고 남녀간의 사랑을 서로를 성적 도구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해버려도 할 말이 없어진다.
의도성과 욕심이라는 요인을 넘어선 선의라는 것이 분명 존재한다. 이러한 선의가 있기 때문에 인간 사회가 따뜻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수구 세력들은 선의를 배제한 채 오직 인간의 본능적인 욕심과 의도성만을 강조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래서 수구 세력들은 이와 같은 해석을 고집하면서 사회 현상과 역사적 현실을 권력자의 권력에의 의지의 결정체로 몰아가 버린다. 그러한 해석에는 공동체적 이익을 위한 고결한 의식이나 따뜻한 인간애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다. 정치 혐오론은 결국 구조적인 변수와 함수 관계를 배제한 채 오직 정치를 권력 행위자들 사이의 권력 게임으로 바라보게 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그래서 남북 정상회담은 권력욕과 명예욕에 사로잡힌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이의 뒷거래이고 여기에다 김대중의 경우는 노벨상 수상 욕심까지 더해진 것과 관련이 있다는 해석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위와 같은 수구 세력들의 왜곡된 역사인식을 극복하고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을 이해하는 가장 바람직한 인식의 틀은 무엇일까? 이것은 2000년 정상회담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있게 된 배경과 맥락을 역사적이고 구조적으로 인식하고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서 얻어진 그리고 앞으로 얻게 될 효과를 민족적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에서 형성될 수 있다.
우선 남북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었던 구조적 요인에 대해서 다시금 새롭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우선 김대중 대통령의 오랜 기간의 노력을 들 수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야당 시절부터 30여년 동안 한국의 민주화와 한반도의 평화 통일을 위해 노력해온 이론가이자 실천가였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대한 그의 집념은 수 차례에 걸친 독재 정권의 살해 위협과 암살 기도에도 불구하고 지속되었으며 이것은 한반도를 넘어서 국제적으로 김대중의 정치력을 확보하게 되는 힘이 되었다. 이러한 원칙 있고 철학 있는 대북 포용 정책의 일관된 추진으로 말미암아 정주영 회장의 소 떼 방북과 금강산 관광 그리고 2000년 초 베를린 선언으로 이어졌다. 이와 같은 김대중의 접근은 즉흥적인 인기 영합주의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수 십 년 동안의 피나는 노력에 기초한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헌신해온 민중운동 진영의 노력 역시 큰 역할을 하였다. 통일 논의의 물꼬를 트게 한 임수경양 방북 사건과 문익환 목사의 방북 등 수 많은 통일 애국 열사들의 적극적인 노력 역시 남한 내의 냉전 수구 세력의 지배 헤게모니를 약화시키는 데에 기여하였다. 이와 같은 선진적인 민족민중운동 진영의 노력과 새롭게 의식적으로 각성한 양심적 시민 사회 세력들의 노력으로 인하여 평화와 통일을 갈망하는 사람들의 영향력이 확대될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97년 대선과 2002년 대선에서의 승리 역시 이런 흐름에 큰 영향을 받았었다.
또한 변화된 대외적 변수 역시 남북 정상회담의 성사에 기여하였다.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에 대한 단기적 봉쇄·압살 정책에서 개방 유도 정책으로 전환하였다. 당시 미국 정책의 변화를 나타내는 페리 보고서는 3단계 접근 방식(적대 해소-관계 개선-냉전체제 해체 및 평화체제 수립)을 내세우고 있었다. 이것은 미국의 대북한 봉쇄·고립 정책에 약화를 가져온 측면이 있었고 이러한 이완된 국제 환경이 남북한의 자율성을 높여 준 측면이 있었다.
그 뿐 아니라 그 당시 북한 역시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요원한 상황에서 고립 상태를 탈출하기 위한 전략적인 차원에서 남한과의 관계 개선을 적극적으로 시도하였다. 북한은 남한과의 관계 개선을 한 후 미국과 일본과 연쇄적인 관계 복원을 시도하여 국제적인 고립에서 탈출하여 체제 안정과 경제 발전을 도모하려고 했었다. 이것은 위기에 처한 북한 정권이 취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카드였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은 이와 같은 대내외적인 요인들이 극적으로 결합하면서 열릴 수 있었던 것이다. 여러 가지 구조적 요인들이 2000이라는 시점에 복합적으로 상호 작용을 하면서 불가능하게만 보였던 남북 사이의 관계개선이 이뤄질 수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민족사적 과업에 대한 거시적 차원의 인식을 하지 않고 부정적 행위론만을 강조하여 오도된 역사관을 주입시키는 수구 세력들은 너무도 천박한 세력들이다.
이와 같은 단절적인 현실 인식은 정상회담의 결과를 인식하는 것으로까지 이어진다. 수구 세력들은 정상회담을 김대중의 노벨상 수상을 위한 이벤트라고 규정하면서 정상회담과 노벨상의 의미훼손을 감행하고 있다. 이 행동에는 해외에 있는 대북 강경파들까지 동조하고 있다.
미국 제일주의에 사로 잡혀서 부시 행정부의 반이성적 패권주의를 옹호하는 미국의 일부 언론들은 한반도 내의 사대 매국적 세력들이 퍼트리고 있는 정상회담 뒷거래설을 인용하면서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상 수상 의미를 폄하하고 있다. 이것은 민족의 자존심을 유린하는 참으로 비통한 일임에도 한국의 수구 세력들은 위와 같은 보도를 인용하면서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상 수상의미를 훼손하는 데에 앞장서고 있다. 참으로 부끄럽고 통탄할만한 사대 매국적 국제 공모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해서 김대중 대통령의 국제 정치적 영향력이 상실되는 것에는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북핵 위기가 고조될 수록 북한과 국제 사회에 동시에 신망을 받는 김대중 대통령의 정치력은 민족의 고귀한 자산이 된다. 지금 미국내 강경파들이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에 대한 폄하 작업에 나서는 것은 부시 행정부의 강경 정책 추진에 걸림돌이 되는 김대중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기 위해서다. 최악의 경우 남한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북한에 대한 단독 공격도 불사하겠다는 부시 행정부의 입장에서 볼 때 동북아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신망을 받는 김대중의 존재는 매우 껄끄러운 것이다. 사정이 이와 같음에도 최소한의 국익과 민족 이익에 대한 고려도 없이, 미국내 강경파와 보조를 맞추면서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상 수상에 흡집내기를 가하는 수구 세력들은 매국노라고 할 수 있다.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상 수상은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서 헌신한 수많은 민주인사들에 대한 국제 사회의 인정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러한 노벨상 수상에 대한 흡집내기는 김대중뿐만 아니라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해 온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에 대한 정면 공격인 것이다. 이것은 아직도 이 땅의 수구 세력들이 과거 군사 독재시절에 가졌던 인식을 그대로 가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서 얻은 효과가 민족의 보편적 이익에 절대적으로 부합하는 것을 볼 때 정상회담의 결과를 김대중 대통령의 사익 추구욕으로 연결하는 것은 참으로 잘못된 행동이다.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서 나타난 긍정적 효과는 그야말로 엄청나다. 남한은 그 동안 섬 아닌 섬으로 살아왔던 분단 반세기의 암흑의 역사를 청산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경의선과 동해선이 연결되고 있고 얼마 전에는 금강산 육로 관광이 실현되는 등 끊어진 한반도의 대동맥이 연결되고 있다. 남북 긴장 완화를 통해서 경제적 안정을 이룰 수 있는 것뿐만 아니라 분단의식을 극복할 수 있게 된 것은 극적인 변화이다.
분단의식은 만악의 근원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며 한민족의 참된 이성을 가로막는 절대적인 요인이다. 이와 같은 분단의식이 극복될 수 있는 구체적인 변화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역사적인 일인 것이다.
북핵 위기가 고조되는 시점에서도 남한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차분하다. 프랑스의 르몽드지는 이와 같은 한국의 상황이 믿기지 않다고 할 정도로 지금 한국 내에서의 상황은 상당히 안정적이다. 94년의 상황만 비교해보면 불과 9년만에 똑같은 위기 상황이 재현되고 있지만(어쩌면 현재의 부시를 생각해 볼 때 지금의 상황이 당시보다 더 위급한 것일 수도 있다) 지금은 놀라운 정도로 차분하다.
그리고 북한은 남한과의 경제협력 사업과 민간교류 사업을 지속하고 있으며 이 연장선상에서 금강산 육로 관광이 실시되었다.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도 민족 내부의 화해와 협력이 지속될 수 있다는 사실은 너무도 극적인 변화이다. 이는 모두 남한과 북한 사이의 신뢰 관계가 외세에 의한 파국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임과 동시에 분단 반세기만에 진정한 의미의 민족 공조가 시작되고 있음을 알리는 대사건이다.
이 모두 남북 정상회담이 한민족에게 가져다 준 긍정적인 효과이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남북 정상회담의 의미를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개인적인 권력욕과 명예욕의 산물로 접근하는 수구 세력들은 참으로 간악하다. 그리고 수구 세력들의 역사인식은 참으로 천박하다. 정말이지 기가 막힌 것은 사리 사욕을 위해서 국가와 민족의 이익을 침해해온 더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는 수구 세력들이 보편적 이익을 위해서 노력한 사람들을 두고 ‘사리 사욕’이라는 용어를 사용해가면서 공세를 펼치는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김대중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지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김대중이 추진한 대북 정책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그리고 번영을 위해서 정확한 진단이자 해법이었다. 김대중이 현대의 대북 송금을 용인한 것은 민족적 관점에서 볼 때 바른 행동이었다. 대북 송금 문제를 민족적 관점에서 이해해야 올바른 해석을 할 수 있으며 이것을 김대중 개인의 문제로 몰고 가는 것은 좌편향이든 우편향이든 참으로 잘못된 일이다. 대북 송금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김대중의 행동에 대한 원칙적인 합의와 승인이 선결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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