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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물] 비디오에서 인터넷으로

 
“요즘 누가 비디오 가게에서 성인 비디오를 빌리나요.
보고 싶으면 인터넷에서 다 구할 수 있는데….” 서울 강남의 Y고 1학년 장모(16) 군은 요즘 학교에서는 친구들끼리 메신저를 통해 성인물 동영상을 주고 받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비디오 대여점을 20여 년 꾸려왔다는 근처 D 비디오 대여점 주인 박모(53)씨는 “몇 년 전만 해도 나이를 속이고 성인물을 빌리거나 몰래 구해 달라는 학생들이 있었지만 요즘은 없다”며 “한창 때보다 비디오 대여가 절반 가까이 줄어 들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성인물 비디오를 제작하는 속칭 ‘에로 비디오’ 업계에도 불황의 그늘이 짙다.

업계에 따르면 1990년대 초반만 해도 1만 장 이상 팔린 대박이있었지만 최근에는 잘 해야 3,000 장 정도이고 보통은 500여 장 수준이다.

1996년 5,000여만 원을 들여 1만5,000여 장을 판 ‘젖소부인 바람났네’나 1999년 ‘미소녀 자유학원’ 시리즈 등의 성공담은 전설이 된 지 오래다.

매월 신작을 발매하는 프로덕션은 시네프로, 클릭 정도에 불과하다.

그래도 연간 제작되는 섹스 비디오는 지금도 전성기의 80%인 200 편을넘는다.

보급 수단이 테이프에서 인터넷으로 바뀌었을 뿐 최종적 소비는여전하다는 얘기다.

인터넷의 다음 까페에서 ‘에로’라는 검색어는 금지돼 있지만 검색 빈도는 아직 매우 높다는 게 관계자의 귀띔이다.

인터넷을 통한 섹스 비디오 확산은 OㆍP양 비디오 소동으로 입증됐다.

99년의 ‘O양 비디오’는 퍼지는 데 한 달 이상 걸렸고 CD로도 많이 돌아다녔지만 이듬해의 ‘P양 비디오’는 며칠 만에 급속도로 퍼졌다.

성인 남성의 절반이 보았다는 이 비디오는 초고속 인터넷망 보급에 크게공헌했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비슷한 때인 1999년 6월에는 첫 인터넷 성인방송이 등장했다.

1998년에 외국 포르노의 독무대가 될 것이라며 성인물 전용극장 설립에 반대했던 업계는 이제 훨씬 더 노골적이고 강력한 인터넷 섹스물의 치명적 도전을 받고있다.

1990년대 초반까지 에로 시장의 지존이던 유호프로덕션은 사업 다각화를꾀해야 할 처지가 됐다.

작년 자회사인 핑크에서 ‘페티쉬’라는 이름의비디오를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섹스 묘사의 강도보다는 페티시즘, 사이버 섹스, 셀프 카메라, 특수의상등 시대의 요구에 맞는 다양한 소재 개발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때문이다.

이는 섹스에 코미디를 가미한 ‘누들누드’나 영화 ‘터미네이터’를 패러디해 선풍적 인기를 누린 ‘터보레이터’ 시리즈의 성공에서 증명됐다.

5,000원에 에로물 3편을 보여주는 청량리 역 근처의 한 낡은 성인극장의영사기사 한모(45)씨는 “여긴 곧 문을 닫겠지만 어딘가에서 누군가 에로물로 돈을 벌 것”이라고 말했다.

시대에 따라 매체가 변할 뿐 섹스 컨텐츠 자체는 언제든 새로운 생명력으로 되살아 나고 있다.


홍석우기자




2003-03-12 22:10:26
1125 번 읽음
  총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1. Kim MkII '03.3.13 11:24 PM 신고
    :-D*뭐... 시대가 바뀌고 있으니... 인터넷이 더 조아요~~ ㅋㅋ ↓댓글에댓글
  2. 2. 돈키호테 '03.3.14 6:09 AM 신고
    :-D*정말 인터넷 음란물은 문제입니다. ↓댓글에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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