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치앞 안보여 헬기 못떠 뒤쫓던 미군차 놓치기도
미국.멕시코 국경에는 죽음의 사막이 있다. 길을 잃으면 말라 죽는다. 이곳 중동의 사막에도 죽음의 공포가 있다. 가공할 모래폭풍 때문이다. 사풍(沙風)이 때론 사풍(死風)이 된다.
기자가 배속된 캠프 버지니아가 있는 이라크 국경 사막지대에는 지난 주말 이래 계속 모래폭풍이 불어닥쳤다. 모래먼지 탓에 디지털 카메라가 고장났다.
지난 12일 기자는 카메라를 고치러 부대를 벗어나 쿠웨이트시를 찾았다. 오후 8시쯤 부대로 돌아가려고 고속도로에 접어들자 길에 모래가 쌓이기 시작했다. 눈 앞에는 먼지 안개가 깔렸다. 쿠웨이트인 운전사는 속도를 뚝 떨어뜨렸다.
큰 길에서 벗어나자 차 안은 이미 먼지로 가득찼다. "두두두둑" 바람에 실려온 모래가 자동차를 때렸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미군 차량의 후미등만을 따라갔다. 사막에 난 길이 잘 안보였다. 아차 싶더니 그만 미군차량을 놓쳤다. 거북이처럼 차를 몰다 도로시설물을 확인하러 차에서 내렸다.
순간 뭔가 온몸을 때렸다. 모래폭풍이었다. 모래와 먼지가 바닥에서 솟구쳐서는 폭풍자락에 휘말려 세차게 회오리를 친다. 앞이 안보였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둔 자동차의 불빛마저 뽀얀 먼지 속에 가물거렸다.
옆을 돌아보자 칠흑색의 모래안개가 기자를 포위했다. '여기에 갇혀 있다가는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를 돌려 도망치듯 사막을 빠져나왔다.
모래폭풍은 미군을 고달프게 만든다. 12일 폭풍은 시속 60㎞를 기록했다. 부대는 거의 모든 작전을 중지해야 했다. 특히 헬리콥터들은 하나도 못뜬다.
항공 보급을 담당하는 장교는 "폭풍 때문에 작전이 취소됐다. 먼지 등으로 가시거리가 짧아지면 헬기를 띄울 수 없다"고 말했다. 쿠웨이트 내 지상군 가운데 가장 앞에 배치돼 있는 캠프 우다리의 101 아파치헬기 공격부대.
헬기들은 이라크의 지상군 부대들을 맹폭해야 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헬기 조종사나 지휘관들은 사막폭풍에 걱정이 많다. 그레고리 개스 대령은 "사막의 폭풍은 헬기를 무력하게 만든다. 우리는 많은 훈련을 취소해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공격 명령만을 기다려 왔는데 폭풍이 계속되면 헬기 공격은 힘들 것"이라고 걱정했다.
모래바람이 강하게 불면 안테나가 흔들려 각종 음성통신이 장애를 받는다. 컴퓨터 같은 민감한 전자장비도 고장이 잘 난다. 그러나 사막의 폭풍이 미군의 진격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탱크는 사막전을 자주 치르므로 모래바람을 견디게 설계됐다. 미군의 최신 에이브럼스 탱크는 투시장비를 갖춰 모래폭풍 속에서도 앞을 보며 전진할 수 있다.
이라크전 초기 융단폭격을 담당하게 될 전폭기도 모래폭풍에 별로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폭풍권 위로 날기 때문이다. 16전투지원단의 브라운 티모시 소령은 "일부 작전이 폭풍의 영향을 받는 것은 사실이나 공격 개시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고 자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