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운동과 명상공동체 활동으로 유명한 베트남 출신의 '세계적 영적 지도자' 틱낫한(77) 스님이 18일 오전 9시 20분경 프레스센터 20층에서 공식 기자회견을 가졌다. 지난 16일 두번째로 방한한 틱낫한 스님은 4월 3일까지 국내에서의 공식일정이 잡혀 있는데 명진출판과 환경재단 공동주최로 방한했다.
이날 오전 약 1시간 40분 가까이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틱낫한 스님은 불교수행의 중요성과 함께 최근 이라크전 및 북핵위기와 관련, 마음의 평화를 강조했다.
틱낫한 스님은 또 이 자리에서 베트남전의 예를 들면서 "이라크전을 시작하면 그 고통과 두려움은 머지않아 다른 형태의 전쟁이 되어 미국으로 돌아갈 것"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틱낫한 스님은 또 "조지 부시나 토니 블레어같은 지도자들은 정치인으로서는 단련되어 있을지 몰라도 평화에 대해서는 수행하지 못했다. 내면에 '화'와 '두려움'이 가득한 사람들이 어떻게 한 나라를 지혜롭게 이끌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한 뒤, "지도자들에게 전쟁을 일으켜 그 땅의 고통을 불러일으키지 말고 미국으로 돌아가라고 간곡히 말하고 싶다"고 호소했다.
또한 틱낫한 스님은 "좋은 친구라면 미국이 어려움에 처할 상황을 막고 그 길을 가지 말라고 충고해야 한다"며 이라크전 반대에 동참할 것을 호소했다
남북관계와 관련, 틱낫한 스님은 "남한과 북한은 한 가족과 같은 형제 사이"라며 "남한은 북한에 대해 자비로운 언어로 분명하게 '먼저 전쟁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며 동족인 북한을 다른 나라가 공격한다면 우리가 북한을 보호하겠다'고 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틱낫한 스님이 실천해온 '마음을 챙기는 수행'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이 수행은 스님이 프랑스 보르도의 수행공동체 플럼빌리지에서 실천하고 있는 방식으로 먹기, 걷기 등 일상생활을 유지하면서 정신을 집중해 그 순간을 관찰하는 것을 의미한다.
스님은 "불교는 살아 있는 현실에 부응해 변화해야 하며 누구나 수행이 가능하도록 쉽게 다가설 수 있어야 한다"며 "어떤 상황에서도 수행을 할 수 있으며 온전히 깨어 있음으로써 일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기자들의 질문을 모아 한꺼번에 답변한 뒤 보충질의를 가지는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무릎을 꿇고 단상에 앉은 틱낫한 스님은 기자들의 질문을 꼼꼼히 종이에 적은 뒤 차분하게 답변을 이어갔다.
스님은 회견 도중에도 차를 마시거나 종을 치며 명상에 잠겼고 기자들에게도 "숨을 들이쉬면서 마음의 고요를 가다듬고, 내쉬면서 서로 공경하는 마음을 생각하라"며 명상에의 동참을 당부했다. 특히 기자회견의 시작과 끝에서는 다른 스님들과 함께 '관세음보살' '너는 지금 깨어있는가' 등의 독송을 하기도 했다.
틱낫한 스님은 이날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4월 3일까지 '반전, 반핵을 위한 평화의 소리 한마당', '새만금 갯벌 생명살리기를 위한 한 걸음' 등의 행사 참가와 지방 강연, 사찰 방문, 3일 수행 등으로 빡빡한 일정을 진행한다.
다음은 틱낫한 스님과 기자들간의 질의응답.
"이라크전 고통, 미국으로 돌아갈 것
남한, 형제 북한 대해 불가침 선언해야"
- 이라크 전쟁에 대한 세계 반전평화 여론이 높다. 한반도와 우리 정부, 국민들이 어떻게 평화로운 마음을 가질 수 있겠는가. 이라크 파병을 어떻게 보는지.
"나는 정치인이 아니고 수행자지만 '전쟁과 평화'는 나의 수행 주제이기도 하다. 우리 안의 평화의 기운이 있으면 이를 바탕으로 외부의 평화도 일굴 수 있다.
조지 부시나 토니 블레어는 정치면에서는 단련되었지만 평화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수행하지 못했다. 내면에 화와 두려움이 가득한 사람들이 어떻게 한 나라를 지혜롭게 이끌 수 있겠는가? 정치인들에게 '평화로운 마음으로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지도자들에게 전쟁을 일으켜 그 땅의 고통을 불러일으키지 말고 미국으로 돌아가라고 간곡히 말하고 싶다.
한편이 고통스러우면 다른 편도 고통을 겪는다.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개시한다면 머지않아 다른 형태의 전쟁으로 미국에게 고통이 돌아온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 베트남 전쟁 당시 베트남 민중들이 고통을 겪었지만 파견나온 미군도 고통을 받은 희생자였다. 프랑스나 독일이 미국을 반대하는 것은 미국이 싫어서가 아니라 미국이 전쟁으로 인해 겪을 고통을 알기 때문이다. 좋은 친구라면 친구가 어려움을 처할 상황을 막고 가지 말라고 충고해야 한다."
- 북핵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북한과 남한, 미국을 위해 어떤 메시지를 줄 수 있는가.
"분단된 두 한국에게 하고픈 말은 기본적으로 두 나라가 같은 어머니를 가진 한 형제자매와 같다는 점이다. 남한은 서로가 형제라는 것을 분명하게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 상황에서 남한은 북한에 대해 분명하고 명쾌하게 자비로운 언어로 2가지 선언을 해야 한다. 하나는 북한은 우리의 적이 아니기 때문에 먼저 전쟁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동포인 북한이 공격당한다면 남한이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선언은 정치적 선언에 머무르지 않고 인간애와 동포애에 기초한 언어로 전달되어야 한다. 남북에 모두 두려움이 있기 때문에 진정한 소통이 가능하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한다면 그것 역시 두려움 때문이다. 선언을 한다면 북한의 두려움이 줄어들 것이다. 남북의 모든 사람 안에는 형제라는 씨앗이 들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를 확신하고 물을 잘 줄수 있다면 좋은 꽃을 피어갈 것이다."
"불교, 살아 있는 현실 맞춰 달라져야
마음 챙기는 수행으로 삶의 질 변화가능"
- 틱낫한 스님의 수행은 한국에서 하는 수행에 비해 평이하고 일상적으로 할 수 있는 형식이다.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
"불교는 살아 있는 현실에 부응하기 위해 변화해야 한다. 나는 지난 25년 동안 서구에서 불교를 가르쳤다. (이 가르침은) 서구 상황에 맞는 불교로 거듭나 생활에 뿌리내리는 과정이다. 불자가 아닌데도 가르침을 통해 이익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 '선 불교'조차도 누구에게나 쉽게 다가서 모두에게 그 수행이 가능해야 한다. 이번에 많은 승려들을 많나 이 시대가 요구하는 불교가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기자들의 경우 화와 두려움을 갖고 있다면 사회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 기사에 두려움과 화가 가득하다면 독자들에게 그 에너지가 전해져 위험하다. 마음을 챙긴 호흡과 걷기를 통해 평온하게 마음을 가라앉힌다면 상황을 잘 이해하고 제대로 깊이 성찰할 수 있을 것이다.
- 의식적 호흡, 의식적 걷기 등을 강조하는데 바쁜 일상 속에서 이러한 명상을 하며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가?
"여러 번 받은 질문이다. 나는 기업인을 위한 강연도 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챙기는 수행을 한 뒤 일상이 많이 변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너무 바빠서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차를 마실 때나 저녁을 먹을 때도 마음을 챙겨 관찰하며 먹으면 음식은 더 맛있고 즐겁다. 길을 걸을 때도 한걸음 한걸음 깨어 응시하면 망상에 빠지지 않고 곁에 있는 사람이 그 자체로 소중하다. 수행을 하면 행복한 일을 온전히 느낄 수 있고 삶의 질을 정말로 높일 수 있다."
- 현재 순간순간 마음을 놓치지 말라고 하는데 불교에서는 과거에 대한 참회도 중요하지 않나?
"온전히 깨어 있으면 과거나 미래와 맞닿을 수 있다. 현재는 과거와 미래를 모두 포함한다. 과거에 했던 행동으로 화나 두려움, 질투를 느끼면 그 고통은 지금 이 순간에 깃들어 있다. 좋은 업과 나쁜 업이 있을텐데 우리 마음을 변화시키면 업보도 달라진다. 과거로 돌아가거나 미래로 먼저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 온 마음을 모으고 챙겨야 변화가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