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연예공화국에서는 큰 사건 하나가 조용히 마무리되었다.
법원이 김희선의 누드집과 관련,불구속 기소된 출판사 김영사 대표에 대해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이로써 2000년 7월31일,김희선이 누드집 출판,배포 금지 신청을 냄으로써 시작된 법정 공방은 2년7개월만에 대단원의 막을 내린 셈이다.
그 당시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던 이 사건의 진실은 무엇일가?
아쉽게도 법원은 그 진실을 가리지 못했다.
형사재판에서는 김희선 무혐의,사진작가 무혐의,출판사 대표 무죄였다.
민사인 손해배상 소송에서는 법원 조정에 의해 계약금을 돌려주고 누드집을 안 내기로 합의,일단락됐다.
쉽게 말해 승자도 패자도 없는 무승부로 싱겁게 끝난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진실에 목말라하는 독자들을 위해 오늘 그 진실을 최초로 밝히고자 한다.
필자는 사건이 터지자 김영사 대표와 김희선 어머니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그 당시 4대 스포츠 신문 연예부장과 기자들을 만날 자리를 각각 마련할 테니 하고 싶은 말을 하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필자는 네 번은 김희선 어머니와,또 네 번은 김영사 대표와 함께 팔자에도 없는 총 8번의 자리를 같이 했다.
그 자리에서 들은 얘기를 종합하면 진실은 이렇다.
아프리카로 떠나기 전,대학교 교수이자 스타 사진작가인 조세현씨는 김희선에게 외국 누드화보를 보여주었다.
김희선이 놀라며 “이렇게까지 찍느냐?”고 물었고 “그렇게까지는 찍지 않지”라고 말했다.
‘그렇게까지’라는 말이 모든 오해의 발단이었다.
김희선은 가릴 곳을 가리고 찍는 ‘세미누드 정도’로 생각했고,조세현씨는 ‘다 벗고 찍되 노출 정도와 작품성에 있어서 그 정도는 아니다’라는 의미였다.
막상 가서 옷을 벗으라고 했을 때 김희선은 ‘아차’했으나 때는 이미 늦었던 것이다.
만약 김희선의 누드집이 나왔다면 그 결과는 어떠했을까? 정답은 ‘성현아 수준의 대담한 노출을 기대한 독자들에게 엄청나게 실망을 안겨 줬을 것’이다.
필자가 본 김희선의 누드집은 자연을 다룬 화보집 수준이었다.
스케치북 사이즈에 김희선의 전체 누드는 엄지 손가락 크기였다.
좀더 과장하게 말하자면,자세히 보기위해 돋보기가 필요할 정도였다.
김희선은 사진의 중심이 아니라 자연의 한 부분이었다.
(판·검사들도 대부분 실망했다는 소문이다.
)
일본에서는 톱스타들이 다 누드집을 찍는다.
미국에서는 스타 누드집을 ‘팬이 보고 싶은 것을 스타는 보여 준다’는 최고의 팬 서비스로 여기고 있고 ‘데미 무어’는 임신 중에도 누드집을 찍었다.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김희선이 의식과 명예를 가진 작가이자 교수인 조세현씨를 조금만 더 믿어주었더라면 누드집은 출간되었을 것이고 그 뒤를 준비 중이던 고소영 등 국내 최고의 남녀 톱스타들의 누드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 아쉽다.
/작가,매주 금·토 연재
■백현락 프로필
1986년 미 뉴저지주 라이더대 회계학과 졸
1988년 동 대학교 경영대학원 졸
1988∼1993년 미 뉴저지주 공인회계사
1994∼1998년 방송 작가
1999∼2003년 조선일보 칼럼니스트
2001년 ㈜ 허쉬엔터테인먼트 상무
2002년-현재 어퓨굿 픽쳐스㈜ 대표이사
방송작품 : 코미디 전망대,그것이 알고 싶다,LA 아리랑 외 다수.
저서 : 미국분 미국인 미국놈,한국 분 한국인 한국놈,목사님 목사님 우리 목사님,비의 나라에서 세세세,쓰레기통에서 건진 내 영어,백현락의 연예가 X파일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