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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투성 세상 ‘복수는 나의 것’

 
한국 최초의 하드보일드 영화 ‘복수는 나의 것’은 착한 사람들이 서로를 죽일 수밖에 없는 모순된 상황을 사실적으로 잡아낸다.
여성관객의 절반 이상이 눈뜨고는 못 봤다는, 끈적끈적한 피로 가득 한 이 영화는 이상하게도 오랜 잔상으로 남아있었다.

'걸작을 찾아서’라는 지면을 맡으면서 남몰래 고민을 좀 했다. 가장 큰 걱정거리는 ‘과연 어떤 영화가 걸작인가’에 관한 것이었다. 관 객 300만 명을 넘은 흥행영화여야 하는가? 혹은 칸이나 베를린 같은 국제영화제에서 상을 탄 영화여야 하는가? 물론 두 조건에 부합하는 영화는 아무래도 걸작일 가능성이 높지만 문제는 꼭 그런 것만도 아 니라는 데 있다.

세계영화사에서 최고의 작품을 고르라면 항상 첫 손가락에 꼽히는 오 손 웰즈의 ‘시민 케인’은 당시 오스카상을 수상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흥행성적도 놀라운 것이 아니었다. 결국 걸작이란 상당히 주 관적인 것이라는 원론만 확인했을 뿐이다.

그런 면에서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을 걸작으로 선정한 데는 상당히 주관적인 감정이 개입되었음을 미리 고백한다.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의 미래와 전경이 말했을 법한, 한국 최초 하드보 일드 무비를 표방한 이 영화의 관객 수는 개봉 3주 동안 34만여 명에 불과했다. 상복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비판과 지지가 엇갈린 문제작 임은 분명하지만 걸작이라고 꼽기에는 증거가 불충분한 것이다. 그럼 에도 이 영화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이상하게도 영화를 볼 당시 가 아닌 극장 바깥으로 나오면서부터.

▶복수라는 ‘극단적 상황’에 몰린 착한 사람들◀

피가 흥건한 하드고어 영화를 꽤 잘 보는 축에 속하는 나도 ‘복수는 나의 것’을 보면서 두어 번 울컥했었다. 함께 갔던 여기자는 절반 정도만 눈을 뜨고 봤노라고 후일 고해성사를 했었다. 기실 벙어리인 신하균이 자신을 속인 장기 밀매업자들을 찾아가 흉기와 둔기로 죽어 라 내리치는 장면이며, 딸아이를 납치한 신하균과 배두나를 끔찍하게 살해하는 송강호의 눈빛은 소름끼치는 것이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진짜 거북했던 건 화면 전체에 질퍽거리는 피가 아니라 복수를 하는 사람이나 당하는 사람이나 모두 나쁜 사람 이 아니라는 데 있었다. 신하균은 누나의 수술비를 마련할 돈이 필요 했던 것이고, 송강호는 무사히 딸을 돌려 받고만 싶었던 것이다. 둘 은 서로 미워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아이가 잠깐 한눈 파는 사이 강 물에 빠져 죽으면서 ‘착한 주인공’들은 복수라는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린다.

지난해 12월 6일 여중생 사망사건과 관련해 류승완, 김지운 감독과 함께 삭발식으로 항의하고, 흥행감독으로서 대통령 선거당시 민주노 동당 지지선언을 했던 박찬욱 감독은 소신이 분명한 사람 중 하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앞으로 두 편만 더 실패하면 영화감독으로서의 생명은 끝이라는 두려움도 동시에 갖고 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누 구나 좋아할 만한 흥행영화를 만들거나 독립영화에 뛰어들어야 하는 데 아마도 전자를 선택할 수밖에 없을 거라는 것이다.

‘복수는 나의 것’을 만들면서 무정부주의자, 유물론자, 테러리스트 가 신의 대리인 역할을 자임하는 설정을 통해 모순의 결합으로만 이 루어진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밝힌 것처럼 그 자신 또한 내부에 모 순을 갖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건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의 약점이 아닐까? ‘복수는 나의 것’ 이 보여준 세상은 심한 왜곡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비뚤어진 진짜 세 상인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보면 볼수록 진한 맛이 난다. 이것이 박찬욱 감독이 이 영화를 흥행작 ‘공동경비구역 JSA’보다 아끼는 이유다.

【감독:박찬욱 / 출연:송강호, 신하균, 배두나 / 등급:18세 이상 / 출시사:CJ(비디오·DVD)】


블루베리
2003-03-28 14:48:01
461 번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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