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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뷰] 영화 '8명의 여인들' (8 Femmes)

 














영화 '8명의 여인들' (8 Femmes)

감독 : 프랑스와 오종 (FRANCOIS OZON)

주연 : 다니엘 다리유 (Danielle Darrieux)
까트린 드네브 (Catherine Deneuve)
파니 아르당 (Fanny Ardant)
이자벨 위뻬르 (Isabelle Huppert)
피르민 리샤르 (Firmine Richard)
에마누엘 베아르 (Emmanuelle Beart)
비르지니 르두와이엥 (Virginie Ledoyen)
뤼디빈 싸니에 (Ludivine Sagnier)







1950년대, 한적한 어느 시골의 대 저택...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인 식구들은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한껏 젖어있다. 바로 그 때, 예상치 못한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이 집안의 유일한 남자이자, 대 저택의 주인이 등에 칼이 꽂힌 채 침대에서 발견된다. 외부와 철저히 격리된 대저택의 의문의 살인 사건... 그리고 남겨진 8명의 여인들... 범인은 누구일까 ?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8명의 여인들, 그녀들 간의 음모와 배신, 폭로와 전쟁의 기나 긴 하루가 시작된다.


'누구도 시도해 본 적 없는 최고의 캐스팅'

'왜 아무도 이런 캐스팅의 조합을 생각해 내지 못했을까 ? 배우들의 스케줄이 바빠서 ? 아니면 이들의 출연료가 너무 비싸서 웬만한 제작자는 엄두를 못낸걸까 ?'
프랑스와 오종의 2001년 작, '8명의 여인들'을 보면서 제일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이런 것들이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그만큼 이들을 한자리에서 만난다는 사실은, 분명 색다른 즐거움이다. 더욱이 영화 속 각각의 캐릭터들은 그동안 그녀들이 쌓아 온 모든 이미지들을 일순간에 전복시키기에 충분하다. 예를 들어, 프랑스 여배우 중 가장 차갑고 지적인 아름다움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이자벨 위뻬르의 고집불통 안경잡이 노처녀의 모습은 엽기에 가깝다. (지난 해 국내 개봉된 미하엘 하네케 감독의 '피아니스트'의 그녀를 알아보기란 웬만한 프랑스 영화팬이 아니고서는 쉽지 않아 보인다)
어디 이 뿐인가 ? 프랑스와 트뤼포의 전부인이기도 하고 국내에는 80년대 트뤼포 감독의 '이웃집 여인'(LA FEMME D'A COTE)에서 전형적인 프랑스의 마드모아젤 이미지로 기억되는 파니 아르당은, 블랙 & 레드의 타이트한 드레스에 팔목까지 오는 긴 장갑을 하나씩 벗어 가며 노래하는 장면에서, 1940년대 찰스 비더 감독의 흑백 영화 '길다'의 리타 헤이워즈를 되살려 놓는다.
아마도 오종 감독이 관심을 가진 건 스크린 속 캐릭터들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이 여배우들이 아니었을까 ? 감추어진 그녀들 개개인의 매력은 그녀들의 연기, 특히 노래를 통해 거침없이 서로 충돌하며 발산해 나간다. 대개 감독은 배우들에게 하나의 역할을 부여하고 자연스럽게 그 역할의 인물로 자신이 녹아 내리기를 주문한다면, 오종 감독은 그 반대의 방법을 택했다고 한다. 즉, 정해져 있는 각각의 캐릭터에 배우들 자신의 모습을 투영시키라는 것. 그녀들 스스로 자신의 숨겨진 혹은 억제되어 있던 무언가를 끄집어 내서, 연기 자체를 즐기며 때로는 과장하여, 관객이 스크린 속의 그녀들을 망각하고, 마치 현실에서 그들과 함께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어 일으키라는 요구. 이 불가능한 주문은 배우 개개인의 절정의 연기를 통해서 성공하고 있다. 그리하여 50년대 프랑스 어느 시골에서 벌어지는 허구적 사건은 한층 현실에 다가와 있고, 관객은 그 키치적인 배경과 연기에 몰입되어 어느 새 과거에 대한 그리움을 호소한다.


'아가사 크리스티 식 엽기 발랄 뮤지컬 코믹 느와르 치정 추리극 ?'

'때는 1950년대, 어느 크리스마스 이브... 눈이 수북이 쌓여 외부 세계와 완전히 고립된 대 저택에 한 젊은 여인이 도착한다. 핑크 빛 드레스 차림의 이 아름다운 아가씨, 쉬종 (비르지니 르드와이엥)은 그녀가 현재 공부하고 있는 런던으로부터 이제 막 도착했다. 저택에는 선머슴 같지만 귀여운 여동생 까트린느 (뤼디빈 싸니에)와 우아함의 극치, 엄마 게비 (까트린 드네브), 너그러움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외할머니 (다니엘 다리유), 심술쟁이 이모 오귀스틴 (이자벨 위뻬르), 흑인 유모 샤넬 (피르민 리샤르)과 얼마 전 새로 고용한 매혹적인 하녀 루이즈 (에마누엘 베아르)가 있다. 그렇다면 이 집의 주인은 어디에 있을까 ?
처음부터 유일한 이 영화의 남자 주인공은 얼굴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이 등장해야 할 장면에 가서는 등에 칼이 꽂인 채 침대에 얼굴을 파묻고 죽어 있으니... 처참한 살해 현장을 목격하고 공포에 휩싸인 이 여인들, 경찰에 신고하려 전화 수화기를 들어 보니 누군가 전화선을 끊어 놓은 상태. 눈이 쌓여 길조차 막혀 버린 이 상황을 이 가녀린 여인들은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까 ?
그때 꽁꽁 얼어버린 저택 입구에 한 사람의 그림자가 등장한다. 무서움에 벌벌 떨고 있는 여인들 앞에 모습을 들어낸 이는, 범인이 아닌 (아니 범인일 지도 모르지만) 밤무대 가수, 고모 삐에레뜨 (파니 아르당). 집의 내부 구조를 전혀 모른다고 하던 고모는 이상하게도 오빠의 방이 어디인지를 단번에 찾아내고... 아빠가 살해되던 시간, 남은 여인들 조차 일치하지 않는 알리바이를 들이대다가 뭔가 서로에게 석연치 않음을 느끼게 되고, 결국 범인은 8명의 여인들 중 하나라고 확신하게 된다. 이 때부터 우리에게도 익숙한 아가사 크리스티식 추리극이 전개되는데...'


'화려한 색채감에 친숙한 멜로디... 보는 즐거움에 듣는 기쁨'

프랑스와 오종 감독은 이러한 일종의 퍼즐게임에 관객의 동참을 요구한다. 각각의 여배우들은 영화의 시작부터 정해진 꽃과 색의 이미지로 연결되어 표현된다. 또 허구적인 현실을 극대화하기 위해 감독은 뮤지컬 기법을 도용하고 있다. 현재 관객이 보고 있는 건 '현실이 아니고 모두 거짓이다'라고 외치려는 듯, 각각의 여배우들은 모두 자신에게 어울리는 (?) 노래와 안무를 준비하고 있다.
막내 뤼디빈 싸니에가, 60년대 프랑스의 히트 곡 '아빠는 시대에 뒤떨어져 있어'란 구닥다리 노래를 부르면, 중년을 넘어 노년에 접어 든 카뜨린 드네브와 20대의 아름다운 비르지니 르드와이엥은 촌스럽기 그지 없는 춤을 함께 추며 기꺼이 망가진다. 극이 얼마간 진행되고 나면, 극악스러워 보이는 이모 이자벨 위뻬르가 요조숙녀와 같은 이미지로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며 '프랑스와즈 아르디'의 '전화 메시지'란 곡을 부른다. (이 부분은 오종 감독이 영화 '피아니스트'의 이자벨 위뻬르를 패러디하기 위해 일부러 건반 앞에 세웠다고 한다)
프랑스 관객에게는 익숙치 않은 영국식 블랙 유머도 영화 전편에 숨어 있다. 예를 들어, 막내 딸이 엄마에게, '엄마 할머니 어디 계세요 ?'하고 물어보면, 엄마는 '부엌 찬장 한번 열어보렴'하고 답한다. '어 ? 할머니가 찬장에 ?'하고 되물으면, '거기서 낮잠 주무시는 게 버릇이야'라고 아무러지 않은 표정으로 답하는 식이다.
50년대를 완벽하게 재현한 세트와 의상, 그리고 소품들에 대한 감독의 섬세함은 영화의 또다른 즐거움이다. 이런 장치들은 배우들의 자연스런 연기에 힘입어 그 허구적 진실성이 극대화되고, 결국 그 사이에 놓여진 경계는 무의미해지게 된다. 이는 현실과 허구 사이를 오가는 영화의 자생적 아이러니에 대한 오종 감독의 영화관이기도 하다. '8명의 여인들'에 남자들이 끼어 들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남자들은 죽었거나 모두 떠나 버린 상태다. 혹시 살아 있다고 해도 그들은 별 가치가 없어 보인다. 그나마 이들 중 몇몇은 남자들만이 줄 수 있으리라 믿는 감정적 혹은 육체적 경험을 스스로 해결하려 한다.
결국 8명의 여인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위에서 언급한 키치적인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이 부르는 노래 가사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화려해 보이는 고모는 쓸쓸히 '사랑도 없이 사는 인생, 자유롭게 산들 무엇하나 ?'를 부르고, 찔러서 피 한방울 안나올 것 같은 이모는 '난 홀로 쓸쓸히 죽을지도 몰라요. 시간을 준비해요. 당신을 위해 내 모든 걸 바쳐요'라며 센치한 감정을 드러낸다. 평생 남을 위해서만 살아 온 흑인 유모는 '혼자 살기 싫어서, 당신을 사랑합니다. 혼자 살고 있다는 것을 잊기 위해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요'란 자조섞인 노래를 부른다. 그러나 이 비도덕적인 줄거리의 진정한 메시지는 외할머니가 부르는 마지막 노래에서 발견되어 질지도 모를 일이다. '인생을 배우겠다고 시간만 보내면 이미 늦은 일일지 몰라... 사랑이란 원래 행복한 게 아니지'


'프랑스와 오종, 악동적 취미는 계속되야 한다. 쭉~~~~'

영화 '8명의 여인들'의 성공은, 연극적인 배경과 장치 속에서 이 엽기적인 가족의 비밀들이 하나 둘씩 풀려 나가는 유쾌한 과정의 자연스러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여기에 오종 감독만의 단골 소재들이 빠질 리가 없다. 부르조와에 대한 냉소와 비꼼, 동성애, 살인, 근친상간에 새디즘과 마조히즘까지...
지난 해 부산 영화제를 찾은 오종 감독과 두 여배우의 기자회견장에서 나는 왜 오종 감독이 유난히 이런 주제들에 관심을 가지는 데에 물어본 적이 있다. 그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그런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영화는 가상현실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실제 현실과 착각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영화가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나의 영화속에 나오는 가정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오이디푸스 가정과 비교했을 때 덜하거나 못하지는 않을 것이다' 라고…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에 대해서는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동심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어릴 때 하던 놀이나 얘기들을 영화로 만들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다행히 사람들이 나의 이런 생각에 공감하고 재밌게 느껴서 프랑스에서 대성공을 거두었다. 나의 에고이스트적인 생각이 대중들에게 어필했다고 볼 수 있다.'

'8명의 여인들'은 프랑스와 오종 영화 가운데 분명 가장 상업적인 영화임에 틀림없다. 그의 작지만 재기 발랄한 전작들에 열광한 팬이라면 이번 영화는 다소 아쉬움으로 남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유년 시절 간직해 온 소중한 기억의 조각을 살며시 꺼내어, 그저 재미있게 재현해 보려 했다는 감독의 소박한 의도는 엄청난 상업적 성공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러한 상업적 성공을 뒤로 하고 특유의 악동적 기질과 엽기성으로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고 있는 이 젊고 잘생긴 감독의 차기작들을 기다리는 건 그의 영화를 사랑하는 모든 팬들의 몫이다.


블루베리
2003-04-03 00:45:43
636 번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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