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프랑스 남편과 사는 얘기 11
프랑스 살기 전, 한국과 미국생활을 통틀어 먹어 본 치즈는...세어 보니 딱 4가지네요. 햄버거 사이에 들어가는 체다, 피자와 파스타용 모짜렐라와 파마잔, 그리고 빵에 발라 먹는 크림치즈. 뭐 크림치즈에도 종류가 있다라고 한다면 숫자가 조금 더 늘 수도 있겠네요. 마늘맛, 양파맛, 레몬맛, 딸기맛 등등 - 미국산 필라델피아 크림치즈에서 만드는데 실제로 과일맛이 존재한답니다. 프랑스 사람들이 경악할 부분이지요.
프랑스 생활 겨우 2년째인 현재까지 먹어 본 치즈를 세라면....어휴, 기억하기가 힘드네요. 정확한 숫자는 잊어 버렸지만 프랑스 내에서만 만드는 치즈의 종류가 250가지가 넘는다고 했던가요? 그런 나라에 살다보니 치즈에 맛이 들려서 치즈 모듬과 샐러드가 한끼 식사가 되기도 하고 햄 모듬과 삶은 감자에 녹인 치즈를 얹어가며 먹는 라클렛이나 볶은 감자, 베이컨, 양파에 치즈를 녹인 타티플렛 등의 치즈요리를 아주 좋아하게 됐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의 집에 식사초대를 받았을때 제가 긴장하는 순간이 바로 이 치즈가 나올 때 랍니다. 전에 먹어 본 적 없는 치즈를 처음 대할 때면 으례히 경험에서 오는 두려움이 먼저 앞서기 때문인데요, 내오는 치즈를 보면 벌써 냄새가 범상치가 않답니다. 대개 서너가지가 섞여 나오는데 그 중에 저의 구세주인 에멘탈이나 콩테, 혹은 카망베르가 섞여 있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마음을 좀 가다듬어야 합니다. 특히 초대한 집이 치즈애호가인 경우와 냄새는 강도가 비례하면서 종류도 더 다양해지는데요, 이건 어디서 온 무슨 치즈, 저건..하며 치즈에 대한 사랑으로 일일이 설명해 주는 주인 앞에서 거절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지요.
이 때 절대 믿지 말아야 할 것은 '먹기 전엔 냄새가 강해도 막상 입에 넣으면 냄새가 안 느껴진다'는 말입니다. 먹기 전에 치즈에서 나는 냄새는 먹을 때도 나고 먹은 후에도 나고 잡았던 손가락에서도 납니다. 그나마 작게 한조각 자른 치즈를 도저히 넘길 수가 없었던 경우가 한두번이 아니구요 남편도 입에 안 맞아 하는 걸 알면서 그래도 프랑스사람인데...하며 남편의 접시로 넘긴 적도 허다합니다. 한번은 그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가 옆에 있길래 식탁밑으로 살짝 넘겨줬더니 질색하고 도망가더군요.
제 시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치즈는 그 악명높은 뮌스테르입니다. 그 특유의 꼬리꼬리한 냄새때문에 가족들이 다 질색을 하는데도 아랑곳않고 드시지요. 냉장고에 뮌스테르 한 쪽을 넣어두면 냉장고에 넣어둔 물에까지 그 냄새가 밴다고도 하고 날아가던 파리들이 질식하고 떨어진다고도 하는 바로 그 치즈입니다. 시아버지의 기담 하나...어렸을 적엔 뮌스테르를 지하 창고에 보관했는데 이게 오래되다 보면 구더기가 생긴답니다. 그 구더기를 걷어가며 먹던 뮌스테르 치즈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나요...
어쨌든 무심코 치즈를 먹다가 겉포장을 보니 '일천 팔백 몇년 부터' 라고 쓰여 있더군요. 물론 그 전에도 치즈야 있었겠지만 이때 벌써 치즈가 상업화되었나? 라는 물음이 생기더군요. 우리나라의 경우 제가 기억하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제일 오래된 과자가 새우깡-1972년, 삼양이나 농심이 시작된 것도 전쟁 후다 보니 대개 일천 구백 단위로 시작하잖아요.
남편에게 와-이 치즈는 역사가 백년이 넘었네 했더니 그게 뭐 대수냐는 표정, 관심없습니다. 냉장고를 뒤졌지요. 겨자-1747년 부터, 커피-1753년 부터, 오이피클-1747년 부터, 연도가 적힌 건 1700년 단위가 만만하지 뭡니까? 제일 최근 연도가 적힌 게 하인즈 토마토 케찹-1869년 부터 인데 그나마 프랑스 제품이 아니더군요. 어쨌든 오래된 역사를 잠깐 실감했지요.
요즘 제가 맛을 들인 치즈는 그리스산의 페타치즈인데요 마늘이랑 파슬리를 저며넣고 올리브오일에 재웠다가 샐러드에 섞어 먹으면 맛이 그만이더군요. 한국에 있을 때는 두부를 좋아해서 칼슘걱정을 안 했었는데 프랑스에서는 두부가 귀하기도 하고 비싸기도 해서 안사게 되더군요. 우유도 잘 안 마시던 차에 발견한 페타치즈 덕에 칼슘걱정을 좀 덜었답니다. 생긴것도 꼭 두부처럼 생겼지요.
한국에 살 땐 오늘은 뭘 먹을까가 매일의 걱정이었는데요, 회사다닐 때도 오늘은 점심을 뭘 먹어야 잘 먹었다고 하나...했었구요. 프랑스에 살다보니 그것보다 먼저 선결해야 하는 문제가 있더군요. 바로 그날 먹을 빵을 확보해 두는 겁니다. 빵 없이 식사를 한다는 건 상상을 못하는 데다가 그 유명한 바게뜨는 하루 지나면 굳기 때문에 매일 빵을 사러 가는건 정말 꼭 해야 할 일이 되지요. 제 남편에게 결혼하고 나서 제일 좋은 점을 꼽으라면 마누라가 요리를 잘해서, 셔츠를 다려줘서..가 아니라 매일 신선한 빵을 먹을 수 있어서 라고 할 겁니다. 신혼 때는 매일 아침 남편이 출근하기 전에 빵집을 가서 신선한 바게뜨를 사다 주었답니다. 그게 뭐 대수냐구요? 여기서는 아주 엄청난 정성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 중에 하나랍니다. 매일 마른 빵이나 아침식사용 비스킷을 먹고 출근하던 남편이 신선한 바게뜨를 매일 대하는 그 감격이 상상되지 않습니까? 바게뜨 하나를 아침식사에 뚝딱 끝내 버리기가 일쑤...회사 옆 단골 식당 아줌마가 '무슈 뺑'이라 부르는 이유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결혼 2주년이 되어가는 요즘은...물론 안합니다. 대신 꾀가 늘어서 3, 4일은 끄덕없이 버티는 시골빵을 한꺼번에 사다 놓고 있지요. 빵집가는 횟수가 매일에서 일주일에 한두번이 됐구요 그나마도 슈퍼 갈때 슈퍼에서 사기도 하구요. 슈퍼에서 만드는 빵은 아무래도 빵집 것만 못하지만 가격이 절반이라 넉넉하게 사다 놓기도 하구요. 물론 손님이 오는 날은 꼭 빵집에서 좋은 빵을 준비합니다. 살림의 힌트 하나, 주말이고 날씨가 안좋다? 서둘러 빵집을 가야 합니다. 날씨가 안 좋은 날은 빵이 떨어지는 시간이 특히나 빨라지기 때문이지요.
참, 브리오쉬 만드는 법 알려 달라고 하셨나요? 손으로 반죽하려면 시간과 힘이 많이 든답니다. 다른 빵에 비해 계란과 버터를 많이 넣어 부드럽게 만드는 게 포인트인데요 반죽이 질척하기 때문에 손으로 치대기가 몹시 힘들거든요. 제 시아버지가 어렸을 적에 제일 하기 싫었던 집안일 중 하나가 바로 이 브리오쉬 반죽하는 거였다고 하더군요. 어머니가 반죽을 섞고 나면 반죽의 질척함이 사라지고 유연성이 생길 때까지 나무주걱으로 계속 저어주는게 제 시아버지 몫이었는데 그게 너무 하기 싫어서 하루는 나무주걱들을 다 부러뜨렸다고까지 하니까요. 저는 만능믹서가 새로 생겨서 반죽을 기계로 만듭니다. 왠만한 프랑스 빵집도 손으로 반죽을 하는 곳이 거의 없다고 하더군요. 기계로 돌린 브리오쉬를 맛보시면서 제 시아버지, 세상 참 좋아졌다고 하시지요.
제 시아버지 어렸을 적 얘기 하나 더, 알자스 지방은 계란을 넣은 파스타 면이 또 유명한데요 당시엔 어머니가 이 파스타면을 집에서 직접 만들었다고 해요. 어머니가 반죽을 얇게 밀고 나서 칼로 썰면 헤어드라이어로 일일이 말려가며 떼어서 보관했다는데...저의 시아버지 연세가 올해 칠순, 헤어드라이어가 당시에 상용됐었구나...했지요.
그럼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