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직전 뭐가 보이는지 궁금했어. 난 눈뜨고 죽을 거야. 죽을 땐 뭐가 보고 싶을까? 발 없는 새가 태어날 때부터 바람 속을 날아다니는 줄 알았는 데 그게 아니었어. 그 새는 이미 처음부터 죽어 있었어. 난 사랑이 뭔지 몰랐지만 이젠 알 것 같아. 이미 때는 늦었지만….” -영화 ‘아비정전’에서
장궈룽(장국영)은 영화 속에서 이미 자신의 마지막을 예견했는지도 모르겠다. 지난 1일 홍콩 만다린 오리엔탈호텔 24층에서 몸을 던진 그는 병원 응급실에 도착해서도 숨을 거두지 않았다고 한다. 투신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한 사람치고는 상처 하나 없이 매우 깨끗한 얼굴로 죽기 직전까지 의료진과 대화를 나눴던 장궈룽. 영화 같은 삶을 살고 삶 같은 영화에 출연했던 우리시대 최고의 만능 엔터테이너는 ‘발없는 새’가 돼 저 멀리 하늘로 날아갔다.
●노래와 연기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최고급 양복 재단사의 10남매 중 막내로 자라난 그는 유복했던 가정환경에도 불구하고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으로 외로움에 떨어야만 했다. 자식들이 가업을 이어받기를 원했던 아버지의 강권에 못 이겨 영국 리즈대 섬유공학과에 입학했으나 학과 공부에 적응하지 못해 홍콩으로 몰래 돌아온 장궈룽은 77년 한 가요제에 출전해 2등으로 입상한 뒤 연예인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나름대로 화려하게 출발한 가수 생활이었으나 과정은 신통치 않았다. 가수로 별 재미를 보지 못한 그는 전략을 수정해 연기에 입문한다. 그저 그런 TV드라마에 출연하다가 85년 ‘영웅본색’을 만나 대박을 터뜨리게 된다. 조직폭력배의 동생이자 강직한 경찰 송자걸로 나와 열연한 장궈룽은 남성미 만점의 저우룬파(주윤발)에게 다소 가려지기는 했으나 해맑은 미소로 홍콩과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후 ‘영웅본색 2’와 ‘천녀유혼’으로 스크린 스타의 자리를 확실하게 굳힌 뒤 다시 노래 활동을 병행하며 알란탐(담영린)과 함께 홍콩 연예계의 쌍두마차 체제를 형성한다. 초콜릿 CF에 출연하며 한국 연예계에서 절정의 인기를 누린 것도 이때다.
심약하고 예민한 성격의 장궈룽은 지나친 라이벌 관계에 염증을 느끼고 89년 돌연 연예계에서 은퇴한다. 그러나 캐나다로 건너간 지 1년 만에 “팬들의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며 복귀를 선언하고 아이들 스타에서 본격적인 연기파로의 변신을 꾀한다.
지난 93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패왕별희’와 왕지아웨이(왕가위) 감독이 연출한 ‘아비정전’ ‘동사서독’ ‘해피 투게더’ 등을 통해 퇴폐미가 가득한 밀도 있는 심리 연기를 펼쳐 국제적인 명성을 얻는다.
최근 ‘성월동화’ ‘이도공간’ 등에 출연했으며 감독 변신을 계획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남과 여를 모두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
장궈룽은 남성과 여성을 모두 사랑한 바이 섹슈얼(양성애자)이었다. 한순간의 쾌락을 위해 성별을 가리지 않았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이성과 동성을 가려가며 사랑하기에는 그의 내재된 성향은 무척 다양했고 폭이 넓은 게 사실이었다.
연예계 데뷔 초기만 해도 많은 여성과 염문을 뿌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매니지먼트를 봐 주던 여성과 절친한 동료였던 아니타 무이(매염방)가 상대였다. 주위의 관계자들에 따르면 당시의 장궈룽은 이성에 대해 호기심을 감추지 않던 평범한 사내였다.
그랬던 장궈룽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 것은 연예계에 복귀한 지난 90년 초부터다. 가수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 때 만나 우정을 나누던 탕탕과 본격적인 동성 연인 관계로 발전한 것도 이 시기였다. 극성스럽게 유명 연예인의 뒤를 쫓기로 소문난 홍콩 언론들은 이 같은 변화를 가만히 두고 보지 않았다. 파파라치들을 붙여가며 커밍아웃(성 정체성을 밝히는 것)을 은근히 부추겼다.
열띤 취재 공세에 신물을 느낀 그는 지난 2000년 콘서트장에서 무대의상으로 치마를 입고 나와 관객석 뒷편의 탕탕을 가리키며 “내게는 어머니 다음으로 사랑하는 사람(남자)이 있다”고 밝혀 자신이 양성애자임을 시인했다.
생전의 장궈룽은 가식적인 행동에 익숙한 동료들과 달리 매우 솔직한 성격이었다. 인터뷰 석상에서도 자신이 몸담고 있는 연예계를 향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은 직선적이고 담백한 성품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매스컴으로부터 집중 포화를 당한 적도 있으나 15년 이상 팬들로부터 ‘거거(可可·귀여운 형님)’로 불리며 우상의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조성준기자 wh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