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um - 뉴스 - 나도한마디"에서 퍼온 글입니다. 논리 정연하고 냉정하게 잘 쓴 글이라 생각되어 올려봅니다.
" 정진혁 : 미테러 대참사 : 제가 읽어 본 미국 테러에 관한 다른 관점입니다.
제국 붕괴의 서곡인가, 팍스 아메리카나의 재기인가?
▲뉴욕의 상징이라 불리는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화염에 휩싸여 있다.
(자료 CNN)
뉴욕 맨해탄의 야경(夜景)을 즐기는 가운데, 월드 트레이드 센터의 스카이 라운지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대서양을 보며 애정의 밀어(密語)를 나누는 일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다소 지루하면서도 평범한 도시 워싱턴 D.C.의 안전 또한 보장되지 않는다. 펜타곤은 그 5각의 균형이 깨진 채 대 제국의 수도(首都)를 위한 철벽같은 방어망이 뚫린 현실을 참담하게 보여주고 있다. 결국, 미국은 이제 전혀 안전지대가 아닌 엄연한 현실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보스니아와 팔레스타인이 처한 아비규환의 현실은 워싱턴과 뉴욕의 중심에서 언제든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미국은 처절하게 경험하고 있다. 붕괴된 건물 더미 사이로 빠져 나오는 사람들의 두려움에 찬 행렬은 미국인들에게 더 이상 CNN의 외신 보도가 아니었던 것이다.
무고한 다수의 인간 생명을 이토록 무자비하게 살해해버린 테러리즘에 대한 지구촌의 분노는 너무도 정당하다. 누가 이 기막힌 죽음 앞에서 무차별적으로 휘두른 폭력에 격노하지 않을 것인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 분노를 어떻게든 새로운 전쟁의 에너지로 만들려는 자들의 움직임은 진정 가증스러운 것이다. 그것은 또다시 더 많은 무고한 사람들의 생명을 위험한 지경으로 빠뜨리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이미 부시정권은 이번 사태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제공한 책임이 있다는 세계언론의 비판을 서서히 받기 시작하고 있다. 실로, 초강대국 미국의 대외정책이 강경 군사주의 노선을 추구할 때, 그 역풍은 자국 국민들의 생명을 소리 없이 겨냥하고 있었던 것이다.
폭력의 악순환을 중단시킬 의 지혜는 없는가?
“이것은 전쟁 그 자체다”라고 절규하는 소리는 테러에 대한 응징을 강조하고 있지만, 실로 는 테러에 대한 보복조처로 유지되지 않을 것이 분명해지고 있다. 문제의 뿌리는 보다 깊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하여, 우리는 월드 트레이드 센터와 펜타곤이 공중 납치된 민간 항공기의 기습 앞에서 무력하게 파괴, 파손 당한 현실을 보면서 거대한 제국의 붕괴인가 아니면, 팍스 아메리카나의 재기인가, 그 기로에 서있는 미국을 본다.
역사의 패권체제 순환사(循環史)에서 무수한 제국(帝國)이 명멸했던 바, 이제 미국은 드디어 자신의 심장부를 겨냥한 폭력 앞에서 제국의 위세를 복구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국가의 진로를 선택해야 할 것인가의 크나큰 숙제를 안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다만 미국의 문제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에게 던져진 간단치 않은 질문인 것이다. 그 질문의 요체는 다른 것이 아니다. “지구촌의 평화를 위한 새로운 질서를 인류사회는 만들어 낼 수 있겠는가?”이다. 그 질서의 수립에 실패하는 한, 인간은 그가 어디에 있든지 도처에서 끊임없는 테러의 위협과 전쟁의 공포에 떨어야 할 것이다.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무너지기 전 낙화(洛花)처럼 고층(高層)에서 떨어진 사람들의 비극적인 운명은 결코 먼 거리에 있는 낯선 타자의 운명이 아니다. 그것은 대립과 갈등을 해결하는 평화의 방식에 무지하게 되면, 문명의 정상에서 자칫 추락할지 모를 인류의 현실을 생생하게 증언하는 처참한 몸짓이 되고 있다. 여기 저기에서 보복의 소리는 높지만 그 어디에도 이 폭력의 악순환을 중단시킬 의 지혜를 내는 이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세계는 심장에 화살을 맞아 격노하며 포효하고 있는 거인의 일거수 일투족이 또 어떤 다른 비극을 낳게 될 것인지 잔뜩 긴장하고 있다.
미국의 여론조사는 90퍼센트 이상이 전쟁을 불사하고라도 보복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쪽으로 나왔다. 이것은 사태 발생 직후의 결과로서, 미국이 공격당했다는 분노가 그대로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러한 상황은 다소 누그러지게 될 것으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아 나름의 희망을 주고 있다. 이것은 이른바 ‘베트남 신드롬’의 여파이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은 분명하겠지만, 일단 전쟁이 발생해서 미군이 희생되는 사태가 예견될 경우 행동은 쉽지 않다. “전쟁은 찬성하지만, 내 자식이 전선에 나가는 것은 싫다”이다. 전군 동원령을 통해서 전시상황으로 가자면 이러한 미국 내 시민들의 심리적 저항을 충분히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이 요구된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워낙 넓어서 동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직접적인 충격의 강도와, 서부 그리고 남부에 살고 있는 미국인들의 정서는 사뭇 다르다. 뉴욕과 워싱턴이 공격당한 것이 곧 서부나 남부의 위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남부의 경우에는 남북 전쟁 이후의 경험으로 해서, 북부가 중심이 된 연방정부의 움직임에 언제나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사태가 진정되고 감정적으로 격앙되는 상황이 느슨해지기 시작하면, 보복에는 지지하지만 전쟁시스템을 전격화하는 것에 대해서는 찬반논란이 일 것이다. 이것은 지난 미국의 역사 속에서 되풀이 되어왔던 논쟁이라는 점에서 일단 주시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평화론자들에게 던져질 돌팔매
하지만, 결국 결정은 워싱턴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환기할 때, 이렇게 미 전역이 전쟁 히스테리로 몰아가지는 상황을 안이하게만 볼 수는 없다. 전쟁이 일어나게 되면 가장 먼저 희생당하는 것은 ‘평화’이다. 평화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추진되는 전쟁은 실로 언제나 평화부터 희생시키며 시작된다. 진정 이 평화의 뜨거운 육성이 힘을 얻기까지는 평화론자들에게 던져질 돌팔매가 적지 않을 것이다.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는 곧 보복의 에너지로 전환될 수 있으며, 이런 상황에서 평화의 논리는 자칫 분노의 대상과 이적행위로 몰릴 수 있다. 그래서 평화는 언제나 전쟁을 일으키는 일보다 더한 고강도의 용기를 요구한다.
의 경우, 전통적으로 군사적 방식의 대응보다는 외교적 대응을 선호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이 신문조차도 이번의 경우에는 상당히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 가 유태인 자본의 휘하에 있다는 점도 강하게 작용을 했을 것으로 여겨지지만, 정보와 군사적 대응의 기능을 최대한 강화해야 한다는 점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부시정권이 그 동안 강조해왔던 강력한 안보 국가론에 대한 지지를 의미한다. 상황이 이런 식으로 가게 되면, 부시정권의 군사노선이 파죽지세의 기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전쟁 자체로 즉각 들어서지는 않는다 해도, 전쟁 시스템을 강화하는 쪽으로 갈 수 있는 것은 분명해진다. 이렇게 될 경우, 전쟁 시스템의 해체라는 목표를 지니고 있는 한반도의 전체적 틀 거리는 상당한 위기에 처하게 될 수 있다. 북한에 대한 미국의 테러국가 혐의가 완전히 벗겨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대 테러 군사시스템의 강화는 한반도 정세를 압박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우리의 우려는 깊다.
의 접근
한편,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미국의 유력지 가 전쟁 히스테리의 상황을 저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 신문은 지금은 차분하게 사태를 수습하고 희생자들과 부상자들의 문제를 처리하는 동시에, 이러한 상황이 전쟁으로 치닫지 않도록 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뉴욕과 워싱턴에 대한 테러리스트들의 공격으로 전쟁 준비에 들어서게 되는 것은 찬성할 수 없으며, 지금 보다 절실한 것은 후속 테러가 발생하지 않도록 정보능력을 신장하고 테러 대처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테러리스트들을 색출하고 이들을 죽이는 일로 사태의 근본 원인을 해결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나선 것이라고 하겠다. 현재와 같은 분위기에서는 상당히 용기 있는 논조를 개진한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신문은 지난 1950년대 식으로 전쟁 히스테리가 미국을 지배하게 해서는 곤란하다면서, 이때야말로 언론인들의 역할과 정치인들의 역할이 중요해진다고 말했다. 이러한 논조는 이번 사태를 놓고 미국 내 강경 극우 군사주의자들이 전쟁불사의 여론을 업고 강성 군사노선을 정당화하는 쪽으로 가는 것을 저지하려는 노력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월드 트레이드 센터’와 ‘펜타곤’이라는 두 기둥
뉴욕주의 별칭은 이다. 그리고 뉴욕시 맨해탄은 바로 그 제국의 중심부라고 할 수 있다. 워싱턴은 제국의 운명을 관리하는 대본영(大本營)이며, 펜타곤은 바로 그 대본영의 근육이다. 월드 트레이드 센터와 펜타곤이 납치된 비행기의 기습적인 공격을 받은 상황은 바로 이 두 개의 기둥이 일대 타격을 입어 제국의 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태였다. 실로, 아무리 제국의 폭력에 저항할 이유가 있다해도 이렇게 무고한 생명을 무수히 희생시킨 테러리즘의 야만적 현실은 철저하게 응징해야 한다.
이와 함께, 이러한 사태가 일어나게 된 그 뿌리를 동시에 보지 못하고서는 올바른 해결책을 선택할 수 없다. 도리어, 본질적인 원인의 규명은 배제한 채 대(對) 테러 공격에만 치중하게 될 경우 국제사회는 테러의 악순환과 도처에서 무차별적인 희생의 빈발이라는 더더욱 무섭고 불안한 현실과 직면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교토 기후 협약’에 대한 거부를 신호탄으로 부시 정권의 등장 이후 미국은 국제법적 합의나 국제사회의 여러 가지 중요한 노력을 거의 철저하게 배타적으로 대해왔다. 일종의 초국제법적 제국의 위상을 무리하게 내세워온 것이었으며, 그로써 이에 대한 세계적 반발의 강도가 한계에 도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논란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특히 얼마전 남아프리카에서 열렸던 인종차별철폐 유엔 회의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문제를 거론하는 것에 대한 불만으로 퇴장한 것에 대해서 국제사회의 비난은 점증했다.
결국, 미국은 강대국의 패권적 논리에 사로잡혀 역사의 잘못된 유산을 극복하고 새로운 국제사회를 만들어 나가려는 노력을 번번이 거부함으로써 미국에 대한 반감을 계속 높여 왔던 것이다. 그렇게 보자면, 이번 사태는 미국에 대한 세계적 반감의 절정이 테러의 방식으로 표출된 것이며, 이로써 제국의 운영방식에 대한 일대 도전과 재검토가 이루어져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테러리즘과 패권주의 대결
물론 이것이 미국에 대한 테러 공격을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얼굴 없는 폭력이 이토록 무고한 인간의 생명을 노리는 것은 그 이유가 아무리 명분이 있다해도 결단코 모든 인류의 적이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는 미국 자신의 초국제적 패권주의가 미국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도록 만드는 요인을 축적해오고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직시해야 할 필요가 있다. 즉, 테러리즘 자체에 대한 대응과 예방도 중요하지만, 누군가가 테러리즘이라는 방식으로 미국과 대치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몰리고 있다면 그러한 상황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테러의 발생원인을 제거하는 길이 된다.
이쪽에는 테러리즘이라고 부르는 행위가, 저쪽에서는 더 이상 물러설 여지가 없어진 자들의 죽음을 불사한 비정규적 저항이라고 한다면 바로 이 폭력의 악순환을 가져오는 보다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를 파고드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저쪽에서는 당하고 당한 끝에 결행한 목숨을 건 저항이라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면, 이러한 현실을 바로 풀지 않고서는 테러의 중단은 무망해진다. 제국이 유지하는 평화를 외쳐온 미국 자신이 바로 그 제국의 중심부에서 아무런 대응 시스템도 제대로 가동하지 못한 채 안전이 파괴되는 것을 경험한 이상, 이것은 위기이며 지금까지의 제국의 생존 방식을 일대 바로 잡지 않고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것은 전쟁을 통해서 바로 잡혀지는 것이 아니라, 고도의 인내를 바탕으로 한 평화의 추구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평화는 약자가 폭력과 빈곤의 악순환에 갇혀 지내는 한, 결코 확보될 수 없다. 강자들이 안전한 곳에서 편안하게 지내는 동안 울부짖는 약자들의 현실은 마침내 테러리즘이라는 마지막 수단에 호소할 수밖에 없게 된다면, 세상은 어디도 안전해지지 못하며 끊임없이 전쟁의 위기에 시달릴 수밖에 없게 된다. 이제 미국은 테러리즘에 대한 보복과 응징에만 주력할 것이 아니라, 테러리즘이라고 하는 가장 야만적인 폭력의 방식으로 미국에게 도전하지 않고서는 자신들의 생존이 더 이상 불가능하다고 믿는 사람들의 절박한 현실에도 깊이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인류는 모두가 모두에게 적이 되는 잔혹한 현실 앞에 서게 될지도 모른다. 그것은 인류사회가 항상적인 전시상태에 처하게 되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모든 제국은 전쟁을 통해서 등장했지만, 전쟁을 통해서 사라지고 말았다. 칼로 선 자 칼로 망하는 법이다. 테러리즘의 야만성과, 패권주의의 폭력성 모두 인류에게 공적(公敵)이다. 테러리즘과 패권주의 대결은 인류사회를 공멸(共滅)의 장으로 끌어들일 것이다. 부디, 미국은 이번 사태의 깊은 교훈을 직시하고 테러리즘에 대한 응징 못지 않게 패권주의의 독선과 오만이 어떤 결과를 도처에서 낳고 있는지를 깨달아, 인류의 평화를 위한 새로운 질서를 마련하는 일에 역사적인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