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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실의 거짓말

 
-이병진 국무조정실 일반행정심의관의 ‘제주 4·3 사과 연기된 경위’에 대한 재반론
4월5일치 ‘왜냐면’에 실린 이병진 국무조정실 일반행정심의관의 반론을 요약하면, △제주 4·3사건위원회 위원장인 고건 총리는 첨예한 대립으로 또다시 연기 결정이 나올 가능성이 컸던 진상조사 보고서 채택안에 대해 중용의 지혜를 발휘하여 전원 일치 견해를 이끌어 냈으며 △총리가 아닌 전체 위원의 이름으로 진상조사 보고서가 최종 확정된 이후에 정부의 공식 견해를 밝힐 것을 건의했다 등이다.

진정 그런가 당시 언론보도와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민간위원들의 전언을 종합하면, 이는 명백한 거짓말이다. 언론 보도에서, 지난 3월21일 6차 회의에서도 대부분의 참석위원들이 4·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의 의결을 강력히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민간위원들을 통해 확인한 바, 이날 대부분의 위원이 보고서 심의·의결을 주장했다. 심지어 정부 쪽 위원인 강금실 법무부장관은 “법이 정한 시한을 넘길 수 없다”고 했고, 김화중 보건복지부장관도 “다수결로 처리하자”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러나 총리는 군·경 쪽 위원 2~3명의 주장만을 받아들여 그 결정을 제7차 회의로 미룬 것이다. 그리고 국방부장관(차관)이 포함된 소위를 구성해 3월24일부터 28일까지 축조심의를 벌여 군·경 쪽의 일방적 주장을 보고서에 대폭 수용토록 했다. 이처럼 국방부차관까지 합의한 수정안이 마련됐는데도, 총리는 제7차 회의에서 또다시 6개월이란 수정 여유를 둔 것이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29일 열린 제7차 회의에서 고건 총리가 4·3 보고서의 의미를 축소하려고까지 시도했다는 사실이다. 보도에서, 고 총리가 “4·3보고서를 4·3특별법 3조2항의 1인 ‘제주 4·3사건 진상조사를 위한 국내외 관련 자료의 수집 및 분석에 관한 사항’으로 의결하려던 것을, 몇몇 위원들의 지적에 따라 3조2항의 4인 ‘진상조사 보고서 작성 및 사료관 조성에 관한 사항’으로 상정해 수정 의결했다”고 하니 말이다. 이때 그냥 넘어갔다면, 총리는 나중에 “그때 의결된 것은 ‘진상조사 보고서에 관한 사항’이 아니라 단지 ‘자료수집 및 분석에 관한 사항’일 뿐이다”라고 발뺌하려 했던 것인가. 과연 ‘행정의 달인’다운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백보 양보해, 그의 주장대로 총리의 순수한 뜻을 수용한다 하더라도 다음의 문제가 제기된다. 지난 4월2일 4·3 민간위원들과 만찬 자리에서 노무현 대통령도 지적했듯이 ‘만장일치’ 의결이 지닌 한계다. 회의에 참석한 한 4·3 민간위원은 “(그동안 군·경 측 위원들을 제주도에 초청하기까지 하면서) 아무리 참혹했던 현장의 진실을 보여주며 설득해도 결국 관점이 바뀌지 않았다”며 즉시 표결을 주장했다고 한다. 이 말은 그동안 위원회 내부에서 충분히 토론했으며, 6개월 아니 6년이라는 유예기간이 주어진다고 해도 바뀔 수 없는 한계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이럴 경우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카드는 ‘다수결’밖에 없지만 이를 피해간 것이다.

다음으로 “위원회가 … 진상조사 보고서가 더 논란 없이 최종 확정된 이후에 정부의 공식 견해를 밝힐 것을 건의했다”는 이씨의 주장에 대해서다. 회의에 참석한 민간위원들에게 확인해 보니 “결코 그런 일이 없다”고 펄쩍 뛴다. 지난달 29일 최종의결 당시 합의한 사항은 “진상보고서 채택과 ‘정부의 사과’를 포함한 7개항의 건의문뿐이었다”고 말이다. 따라서 위원회가 대통령의 사과를 유보해 달라고 건의했다는 그의 주장은 많은 4·3 위원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발언이다. 문제는 이씨가 은밀히 고백하고 있는 것처럼, 위원회가 아닌 총리실에서 “이후에 정부의 공식견해를 밝힐 것을 건의”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씨는 “대통령은 … 정부의 사과문제는 매우 신중할 필요가 있으므로 …”라며 마치 대통령이 먼저 사과를 미루자고 한 것인 양 사실을 오도하고 있다.

끝으로 이씨는 “55년의 세월을 기다려 온 것을 생각하면 6개월의 시간은 결코 길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점잖게 충고한다. 그렇게 속아온 반백년이 넘는 세월이었다. 이번에는, 올해는, 내년에는 하면서 기다려온 것이. 그 과정에 4·3 후유 장애인들이나 4·3 1세대들은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있다. 더구나 유예기간이 4·3의 진실을 왜곡하는 데 이용될 우려도 크다. 어렵게 탄생한 4·3 보고서가 그 의미를 되새기기도 전에 ‘누더기’가 될 위험성에 빠졌다. 지금 제주도민들은 실망을 넘어 분노하면서도 일단 지켜보고 있다.



2003-04-09 22: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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