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기업에 다니는 문모씨(37·여·서울 은평구 갈현동)는 꽃가루가 날리는 시기인 4월만 되면 눈이 가려워 고생이다. 며칠 전부터 문씨는 갑자기 눈이 가려운데다 눈 화장을 할 때는 눈에 통증까지 왔다. 문씨는 눈 주위가 벌겋게 부어오르면 회사에서 업무상 사람과 만나기도 힘들다고 호소했다.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 봄이지만 문씨처럼 알레르기 결막염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에겐 그리 반가운 계절이 아니다. 알레르기 결막염 환자는 알레르기 비염이나 천식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아 ‘이중고’에 시달리기도 한다.
연세대 의대 신촌세브란스병원 안과 김찬윤 교수는 “최근 알레르기 결막염 환자가 증가하고 있는데 원인은 각종 오염물질과 집 먼지, 황사, 꽃가루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라며 “알레르기 결막염은 6∼13세의 아이들에게서 가장 많이 나타나며 나이가 들면서 증세가 호전되지만 일부 환자들은 증세가 더욱 심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증세=갑자기 눈이 가렵고 눈물이 많이 나며 충혈 되고 따가우며 눈에 뭔가 들어간 것 같은 이물감을 느껴진다. 심하면 눈을 덮는 결막이 붓거나 눈꺼풀이 부풀어오르고 눈을 비비면 끈끈한 분비물이 나오기도 한다. 환자에 따라서 눈부심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다. 봄철 알레르기 결막염은 먼지나 꽃가루가 사람의 눈을 자극해 염증을 일으키는 면역반응이다. 대기 중 각종 오염물질 화장품 등이 눈의 점막에 닿아도 알레르기 결막염이 생긴다. 보통 봄철에만 생긴다면 꽃가루가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
서울대 의대 알레르기 내과 조상헌 교수는 “도시 도로변에 솜털 같은 꽃씨를 날리는 ‘이태리 포플러’는 알레르기 현상과 큰 관계가 없다”며 “자작나무나 일본 삼나무 개암나무 포플러의 미세한 꽃가루가 봄철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주원인이다”고 말했다.
▽치료법=심하게 가렵거나 붓는 등의 증세가 생기면 우선 집에서 깨끗한 찬물에 눈을 담그고 몇 분 정도 깜박거리거나 얼음을 천에 싸서 눈에 냉찜질을 하면 증세를 가라앉힐 수 있다. 차가운 것이 눈 주위에 닿으면 일시적으로 염증반응을 감소시키기 때문이다.
치료제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은 가려운 것을 막아주는 항히스타민 안약과 염증반응을 막아주는 비만세포안정 안약이다. 항히스타민 안약은 소량이 몸에 흡수돼 부작용으로 졸음을 일으킬 수 있다. 최근에 졸음이 없는 2세대 항히스타민 안약도 나왔다.
비만세포안정 안약은 이미 생긴 결막염은 막아 주지 못하지만 더 나쁘게 진행되는 것을 막아준다. 충혈이 심하거나 환자가 못 견딜 정도로 증세가 심하면 스테로이드 안약을 사용한다. 스테로이드 안약은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돼 있어 의사의 처방이 필요하다. 장기간 사용하면 녹내장이나 백내장, 세균성 결막염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의사의 지속적인 상담이 필요하다. 의약분업 이전에는 스테로이드 안약이 일반의약품이어서 환자의 약품 오남용이 가장 심했던 품목이기도 했다.
충혈이 아주 심할 때는 ‘혈관 수축제’를 사용한다. 그러나 효과가 일시적이고 6시간이 지나면 약효가 떨어지면서 반작용으로 증세가 오히려 심해질 수 있는 단점이 있다. 고혈압 환자는 다른 안약은 사용해도 큰 문제가 없지만 혈관수축제는 혈압 상승의 부작용이 있으므로 사용을 피한다.
▽예방법=꽃가루가 날리거나 황사가 있을 때 외출을 피하는 것이 최선의 예방법이다. 어쩔 수 없이 바깥으로 나갈 때는 항히스타민 안약이나 비만세포안정 안약을 미리 사용한다. 또 안경 마스크 모자 등을 착용해 대기와 피부의 접촉을 가능한 차단한다. 귀가 후엔 옷을 털고 집안으로 들어오며 손발을 잘 씻고 양치질을 한다.
소금물을 이용해 눈을 씻으면 오히려 눈을 자극하므로 피한다. 눈이 가렵다며 식염수로 눈을 씻는 경우가 많은데 안구표면에 있는 눈물층의 보호성분만 씻기게 되므로 피하는 것이 좋다. ‘인공눈물’은 눈을 보호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자주 눈에 점안해 준다. 인공눈물은 식염수와는 달리 눈물에 있는 단백질 등 각종 성분을 포함하고 있다.
성균관대 의대 삼성서울병원 안과 정의상 교수는 “바람이 강한 날은 눈에 보이지 않는 꽃가루가 많이 날리므로 창문을 열지 않도록 하며 물걸레로 집안을 자주 청소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한편 안구가 쉽게 건조해지는 사람은 인공눈물을 자주 넣어주고 또 콘택트 렌즈를 착용하는 사람은 렌즈를 평소보다 더 자주 세척한다.
이진한기자·의사 likeday@donga.com
▼"꽃가루 심한 날 알려줍니다"▼
계절과 지역별로 꽃가루 정보를 매주 알려주는 ‘꽃가루 예보제’가 시행됐다.
대한 소아알레르기 및 호흡기학회(회장 이하백 한양대 의대 교수)는 13일 “서울과 경기, 강원, 천안, 대구, 광주, 부산, 제주 등 전국 8개 지역에 꽃가루 채집장비 설치를 최근 끝냄에 따라 꽃가루 예보제를 12일부터 실시했다”고 밝혔다. 꽃가루 예보제는 전국 8개 지역 병원 옥상에 설치된 채집장비에 담긴 정보를 이 학회 산하 꽃가루위원회(책임자 오재원 한양대 의대 교수)에서 매주 분석해 일반인에게 홈페이지(www.pollen.or.kr)를 통해 공개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예컨대 알레르기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꽃가루가 발견되면 분석 책임자가 이 꽃가루가 다음 한주 동안 어느 정도 날릴 것이며 알레르기 환자들에게는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것인가 등을 분석해 예보하게 된다.
학회는 이번 시스템을 위해 95년부터 알레르기와 호흡기 질환 분야의 전문의들로 ‘꽃가루 역학조사팀’을 발족해 운영해 왔다.
오 교수는 “그동안 국내에서는 꽃가루 정보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이뤄지지 않았지만 이번 예보제 실시로 꽃가루 알레르기를 가진 환자들이 미리 1주일간 외출계획을 짜는 등 대비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김상훈기자 core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