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후 일본 도쿄(東京)의 긴시초(錦絲町) 지하철역 앞.
개찰구를 나서면 회색 점퍼를 입은 NTT사의 홍보요원들이 다가온다. 이들은 NTT의 비대칭 디지털가입자회선(ADSL)에 지금 가입하면 사용료를 3개월 동안 무료로 해준다고 설명한다. 또 신규 가입자에겐 모뎀도 2개월간 공짜로 빌려준다고 덧붙인다.
50년 넘게 일본 통신업계에서 무소불위의 영향력을 행사해 온 NTT가 이처럼 적극적인 판촉공세에 나선 것은 이례적이다.
같은 날 오후 도쿄 유라쿠초(有樂町) JR역 앞.
역에서 나오는 상당수 시민의 손에는 소프트뱅크의 자회사인 야후(Yahoo)의 로고가 새겨진 하얀 손가방이 하나씩 들려 있다.
도쿄의 거의 모든 역 앞에서 가두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소프트뱅크는 아예 모뎀을 무료로 준다. `ADSL 사용료 2개월 무료`서비스는 물론 직접 고객의 집을 찾아가 설치까지 해준다.
지금 일본에선 NTT와 소프트뱅크의 `ADSL 대혈전`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ADSL 수요층이 크게 늘어난데다 이사.전근 등이 겹치는 봄철을 맞아 고객을 잡기 위한 양사의 경쟁은 한치의 물러섬도 없다.
이들은 `업계 선두를 놓치면 끝`이란 절박함에 출혈경쟁도 마다않고 있다.
◇치열한 역전극=ADSL전쟁에 불을 붙인 곳은 소프트뱅크다. 소프트뱅크는 지난해 4월 ADSL에 가입하면 회원들끼리는 국내 통화료 무료, 미국과의 통화료가 3분에 최저 7.5엔(약 75원)인 인터넷 프로토콜(IP)전화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전개했다.
이것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소프트뱅크는 가입자 수를 지난해 9월 1백만명, 연말에는 1백70만명까지 늘리며 NTT를 제쳤다. 지난 2월 초엔 2백만명을 거뜬히 돌파했다.
그러자 위기감을 느낀 NTT가 대반격에 나섰다. 솔직히 지난해까지만 해도 NTT는 ADSL분야에서 경쟁자에 대해 방심하고 있었다.
ADSL에 신규가입하는 가장 큰 이유는 IP전화 때문인데, NTT로선 IP전화 시장을 키워버릴 경우 현재 독점하고 있는 고정전화를 통한 수익을 스스로 줄이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소프트뱅크에 점점 뒤처질 경우 나중에 본격적인 IP전화시대가 도래했을 때 시장의 주도권을 빼앗기고 말 것이란 우려가 커지면서 NTT는 지난 2월 초부터 대대적인 물량공세에 돌입했다.
ADSL 신규가입 고객에게 2개월 무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신규고객을 소개한 회원에게는 3천엔 가량의 상품권을 제공하고 나섰다. 지난 10일부터는 무료 서비스 기간을 3개월로 늘렸다.
이 같은 물량공세가 효력을 발휘해서인지 NTT는 지난달 말 현재 회원 가입자수 2백56만명(시장점유율 36%)으로 야후의 2백36만명(시장점유율 34%)을 제치며 재역전에 성공했다.
◇소프트뱅크의 승부수=소프트뱅크도 비장의 카드를 던졌다. 소프트뱅크가 보유 중이던 자회사 야후의 지분 일부와 아오조라은행의 지분을 지난달 4일에 팔아 버렸다.
주식을 팔아 조성한 1천8백억엔의 자금을 거의 모두 ADSL회원을 늘리기 위한 캠페인에 쏟아 붓겠다는 게 손 마사요시(孫正義)회장의 사운을 건 승부수다.
그러나 이 같은 양사의 소모전은 결국 승자없는 게임으로 끝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회원 1명을 새로 늘리는 데 드는 비용은 약 2만엔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각사의 손익분기점은 이것을 고려하지 않은 수치다. 예컨대 소프트뱅크의 경우 실제 손익분기점은 회원수 3백만~3백50만명이라는 지적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