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신용평가기관 무디스사의 톰 번 부사장이 9일 서울에서 열린 동북아 경제포럼에서 '북핵위기 해소를 위한 한미공조'를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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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운명, 무디스가 쥐고 있다
신용평가 무기삼아 외교정책 간섭까지
한국경제의 미국경제에 대한 종속이 계속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미국계 국제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가 ‘신용등급 조정’을 무기로 한국의 정치, 경제에 내정간섭에 가까운 주문을 하고 있다. 이는 한국의 미국에 대한 경제적 종속이 한국 정부의 정치적 자주권을 심각히 침해하는 단계로까지 발전했음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한국경제의 대미 종속은 21세기 들어 더욱 심화되고 있다. 미국은‘외국인 투자자’라는 드러나지 않는 세력을 통해 한국의 금융 및 증권시장을 손안에 쥐고 있다. 대한민국의 대표기업인 삼성전자는 전체지분의 51%를 외국인이 보유하고 있다. 대표적인 금융기관인 국민은행의 외국인 지분은 무려 67%에 이른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2월말 현재 시가총액 기준으로 거래소 상장주식의 35.4%를 외국인이 차지하고 있다. 5년 전인 1998년의 17%보다 2배로 늘어난 것이다. 코스닥시장도 1999년의 7.4%에서 2002년말에는 10.5%로 늘어났다.
한국 주식시장 미국 예속 심화
'파병' 결정 등 큰 영향력 발휘
한국시장에 투자하는 외국인 투자가들을 각각의 독립된 개체로 볼 수 있지만 이들은 월가의 분위기를 방향타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한국증시는 이미 미국시장의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다. 미국계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는 바로 이런 점을 이용해 한국 주식시장에 바로 영향을 미치는 ‘신용등급 조정’을 무기로 한국정치에까지 강한 입김을 불어넣고 있다.
무디스사의 한국담당 총책임자인 톰 번 국가신용담당 부사장이 지난 4월7일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서울 소공동 프라자호텔에서 열린 ‘동북아경제포럼’에 참석, “한국과 미국이 북한 핵과 관련해 공동전선을 취하지 않을 경우 국가신용등급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 신용등급 평가에 있어서 북한이 근본적인 우려 요인이며 북한 핵 개발 등으로 안보상황에 문제가 생기면 신용등급 평가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마디로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이 미국쪽과 같은 입장을 취하지 않을 경우에는 한국의 신용등급 하향도 고려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미 동맹을 강화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그는 한발 더 나아가, “북한이 걸리게 되면 모든 것이 얽히게 된다”면서 “한국의 민족주의가 한-미간 분열을 발생시키고, 북한이 한-미간 분열을 확대시키는 현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며 북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북한 핵에 대한 무디스의 이같은 시각은 미국 부시행정부를 비롯 공화당내 보수 강경파의 견해와 거의 일치한다.
중앙대 제성호 교수는 “북한 해법을 놓고 그동안 노무현 정권과 미국과의 입장차가 드러나면서 미국 일각에서는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설과 주한미군 철수 등 한국에 대한 정치, 군사적 압력을 내놓았던 것”이라며 “지난 2월 무디스의 신용등급전망 하향조치가 바로 무디스라는 신용평가기관을 통해 미국의 한국의 경제적인 압박 카드를 내 보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무디스는 전 세계의 국가나 기업이 발행하는 채권의 약 90%에 대해 신용등급을 매기는 신용평가기관이다. 따라서 무디스가 국가의 신용등급을 한 등급이라도 떨어뜨리면 한국의 경우 당장 수억달러 이상의 외채 이자를 물어야 한다. 이들의 등급 조정으로 국내 증권금융시장이 출렁이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을 정도다.
문제는 이 무소불위의 경제권력 기관이 다른 신용평가기관과 달리 정치적이면서도 미국 정부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평가’의 일관성이 없다.
단적인 예가 지난해 1월 미국의 대표적인 기업인 엔론의 분식회계건이다. 무디스는 엔론사건이 터진후 주가가 대폭락하고 있었음에도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엔론이 파산을 신청한 다음날에야 비로서 채권을 다섯단계나 하향조정했다.
미국 국가신용도와 경제에 엄청난 타격을 줬던 9.11테러 당시에도 무디스 등 신용평가기관은 침묵했다. 단지 일부 항공사에 대한 신용등급 전망을 한단계 낮췄을 뿐이었다.
하지만 지난달 국내에서 SK 글로벌의 분식회계가 터졌을 때 무디스는 곧바로 SK의 채권 신용등급을 두 단계나 하향 조정했다.
정부는 지난 6일 조윤제 청와대 경제보좌관을 뉴욕과 워싱턴 등지에 보냈으며, 10일부터는 김진표 경제부총리를 비롯한 대규모 정부 투자유치단이 뉴욕과 런던에서 한국 투자설명회를 갖는다. 노 대통령의 5월방미에 앞서 국내 보수계 인사들로 구성된 경제사절단도 대거 미국으로 건너간다. 월가 투자가들과 무디스를 달래기 위해서다.
대안연대회의 정승일 정책위원(베를린자유대 경제학박사)은 “지난 97년 경제위기이후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외국투자자 최우선’ 정책이 경제 주권마저 외국에 넘겨주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천대 이찬근 교수도 “한국경제가 미국식 발전모델에 너무 경도돼 있다”면서 “우리식으로 미국식을 뛰어넘을 수 있는 기업과 금융을 하루빨리 키워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