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장타를 터뜨리고 있는 '빅초이' 최희섭(24·시카고 컵스)에 대한 환호는 오직 한국 뿐만이 아니다. 미국 현지의 컵스팬들 역시 최희섭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고 있다.
컵스팬들이 '빅초이의 출현'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이유는 그동안 거포 1루수를 한번도 가져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라인 샌버그(2루수) 어니 뱅크스(유격수) 론 산토(3루수) 새미 소사, 빌리 윌리엄스, 핵 윌슨(이상 외야수) 등 컵스의 역사를 대표하는 강타자들은 모두 다른 포지션의 선수들이다.
1876년 내셔널리그 창설과 함께 시카고 화이트스타킹스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컵스의 1루에는 당대 최고의 슈퍼스타였던 캡 앤슨이 버티고 있었다. 앤슨은 27년간 타율 .333 3,418안타 2,076타점을 기록하며 '19세기 최고타자'라는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캡슨이 사라지면서 컵스의 1루는 침체기를 맞기 시작했다. 1902년에는 프랭크 챈스가 주전으로 도약하며 조니 이버스(2루수) 조 팅커(유격수)와 함께 'Tinker to Evers to Chance'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내기도 했지만, 챈스의 전성기는 서른이 되기도 전에 끝났다.
1루의 주인은 빅 세이어(1911-16)와 프레드 머클(1917-20)을 거쳐 1925년 찰리 그림에게로 넘어갔다. 그림은 통산 2,166경기에 출장, 타율 .290 2,299안타 1,078타점을 기록한 강타자였지만, 거포라기보다는 중거리포에 가까웠다. 그림의 통산 홈런수는 79개에 불과했다.
1962년부터 69년까지는 뱅크스가 1루를 맡았지만, 이는 뱅크스가 서른줄을 넘기면서 유격수에서 1루수로 전향했기 때문이다. 뱅크스는 2001년 알렉스 로드리게스(텍사스)에 의해 경신되기 전까지 한시즌 유격수 최다홈런기록(47개)을 갖고 있었다.
1977년에는 LA 다저스에서 건너온 빌 버크너가 컵스의 1루를 책임졌다. 하지만 버크너 역시 중거리포였고, 7년만에 다시 컵스를 떠나 보스턴 레드삭스로 이적했다. 버크너는 이후 1986년 월드시리즈에서 '통한의 알까기' 실책을 범하게 된다.
1988년 마침내 마크 그레이스(현 애리조나)가 나타났다. 그레이스는 꾸준한 활약으로 샌버그와 소사의 가교 역할을 하며 '어메이징 그레이스'라는 애칭을 얻었다. 99년에는 컵스타자로서 8번째로 2,000안타를 돌파했으며, 빼어난 수비력으로 4번의 골드글러브를 따냈다. 하지만 그레이스조차도 홈런과 장타로 무장한 전형적인 1루수의 모습은 아니었다. 그레이스는 지난해까지 통산 506개의 2루타를 기록했지만, 홈런수는 170개에 불과하다.
2000시즌 후 컵스는 계약이 만료된 그레이스를 잡지 않았다. 최희섭을 믿는다는 신뢰의 표시였다. 그레이스 역시 "내 후임이 최희섭이라면 불만은 없다"라는 말로 컵스의 결정을 이해했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지금, 최희섭은 팀과 팬들이 기대한 '홈런을 치는 1루수'가 되어있다. 이제 컵스팬들의 바램은 단 한가지다. 지금의 모습으로 오랫동안, 아주 오랫동안 컵스의 1루를 지켜달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