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철씨의 자립기] 손없는 장애인이 다른 장애인 손발 노릇
# 사고후 아내와 딸 가출 … 노숙자 생활까지
# 장애인 병원 이송·상담 등 도우미로 나서
"자꾸 몸이 아파 봉사를 못하는 날이 올까봐 두렵습니다."
.
3년 전 길에서 검도사범이 휘두른 진검에 한 손 등이 잘리는 사고를 당했던 이영철(李泳轍.46.서울 마포구 성산동)씨는 쇳덩이 같이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오른손을 보며 입을 열었다.
.
당뇨 합병증으로 이가 8개나 빠졌고 눈이 점점 침침해진다. 이러다 운전이 제일 자신있어 택한 '차량 운전 봉사'를 그만두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든다.
.
인쇄소에 근무했던 李씨의 운명이 바뀐 것은 2000년 여름 밤 서울 마포구 성산동 인적이 드믄 길가에서였다. 부인과 휴대전화로 말다툼하다 아내에게 큰소리를 친 것을 지나가던 검도사범(당시 21세)이 자신에게 욕설을 한 것으로 오해, 지니고 있던 진짜 칼을 휘둘렀다.
.
이때 오른쪽 손목은 관절 부분이 완전히 잘려나갔고 왼쪽 팔도 뼈까지 상했다. 머리와 가슴에도 상처가 깊었다. 병원에서 사흘 만에 깨어나 봉합수술을 받았지만 한 손은 모양만 맞춰놨을 뿐 피는 흐르지 않고 신경은 죽은 1급 장애인이 된 것이다.
.
李씨가 한달 만에 퇴원해 집에 돌아와 보니 아내는 아들만 남겨놓은 채 딸을 데리고 가출한 뒤였다. 돈이 없다며 버티는 가해자에게 겨우 받아낸 합의금으로 병원비를 갚고 보니 무일푼이 됐다.
.
성치 않은 몸으로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일년 넘게 노숙자와 다름없이 생활을 해야 했다. 가해자에 대한 증오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에 대한 분노 등으로 하루도 술이 없으면 지내기 어려웠다.
.
그러다 부인이 데려갔던 딸을 다시 찾은 게 李씨의 생활을 다시 바꾸어놓았다. 딸만큼은 불행하게 살게 하고 싶지 않아 마음을 다잡았다. 2001년 6월 李씨는 서울 양천구청에서 운영하는 장애인 자립장을 찾았다. 온갖 어려움 끝에 장애인 운전면허도 받았다. 운전은 비교적 성한 두 다리를 이용할 수 있어 자신에게 적합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
李씨는 이후 한국지체장애인협회 서울 양천구지회 사무실에 출근하며 몸이 불편한 장애인이 병원에 가고자 할 때 차로 태워주는 일을 자청했다.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오는 장애인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살려 조언을 해주는 민원실장도 맡고 있다.
.
또 일주일에 한두번씩 남는 음식을 불우이웃에게 나눠주는 푸드뱅크 봉사에도 참여해 직접 승합차를 몰고 양천구의 제과점.음식점 등을 돌고있다.
.
매달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지급되는 60만원으로 생활하는 李씨는 "아이들이 학교를 마칠 때까지만 살아도 소원이 없다"고 작은 바람을 말했다.
.
한편 양천구(구청장 추재엽) 관계자는 "취업이 어려운 장애인들의 자활 의지를 높이고 사회 적응력을 키우기 위해 두곳의 장애인 자립장을 운영하고 있다"며 "이곳을 거쳐간 장애인들이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것을 볼 때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
박현영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