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9일부터 13일까지 이태리의 로마 근교에 있는 한 작은 도시Frascati에서 제21차 AKSE(유럽한국학회 Association for Korean Studies in Europe)가 열렸었다. 국내외에서 참석한 많은 학자들의 얼굴들 사이에 오슬로에서 온 박노자 교수의 모습도 보였다.
이라크 파병 동의안의 국회통과를 전후하여 찬성과 반대로 국론이 양분되어 벌인 거대한 담론의 파고가 채 가라앉지 않은 시점에서 그를 만난 기자는 독자들의 궁금증을 대신하여 이라크 파병에 대한 그의 견해를 물었고, 박노자 교수는 자신의 생각을 오마이뉴스 독자들과 함께 나누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며 기꺼이 인터뷰에 응하여 파병에 대한 그의 깊은 우려와 생각들을 진솔하게 피력해 주었다.
아래의 내용은 그와의 즉석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 나라를 뒤흔드는 거센 격론 끝에 마침내 국회에서 파병동의안이 통과되어 이제 파병이 현실의 문제가 되었는데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에 대한 박노자씨의 견해는?
"우선 개인적 의견을 말한다면 분명한 반대이다. 그 어떤 논리로도 전쟁의 불가피성이나 명분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은 테러리즘의 봉쇄라든가 악랄한 독재자에 의한 대량 인명 살상무기의 전세계적 확산 방지 등 여러 가지 핑계를 대고 있지만 이번 전쟁의 근본적 성격은 자국의 국제적 패권과 이익을 지키기 위한 미국의 일방적 침략이다. 이런 전쟁에 한국이 군대를 파견하는 것을 옳지 않다."
- 국민 가운데 상당수가 그러한 견해를 같이 하고 있다. 그러나 또 한편, 많은 사람들은 이번 파병 결정이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의거하여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미국에 등이 떼밀리기보다는 미리 능동적으로 대처한 정부의 이번 결단이 국민의 생존권에 심각한 위협을 끼치고 있는 북핵 위기 등 한국이 처한 여러 가지 특수한 상황을 고려할 때 정부로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이전 정권들이 남겨놓은 여러 가지 역경을 안고 어려운 시기에 출범하게 된 새 정권과 노무현 대통령의 고심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지만 그러나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근거해서 파병의 결정이 피하기 힘들다는 잘못된 인식에 대해서는 지적을 하고 싶다.
리영희(한양대 명예 교수, 의 저자) 교수의 오마이뉴스 인터뷰(2003년3월28일)를 인용하면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양해 사항에는 '무력 공격에 대해 미 합중국은 대한민국에 원조를 해야 할 의무를 지지 않는다'는 내용이 분명히 있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은 미국의 군사공격에 대해 아무런 책임이나 의무를 져야할 필요가 없다. 노무현 대통령은 한미군사동맹의 이유를 들어 파병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 허황된 논리의 실체는 바로 이것이다'라고 밝혔다.
내가 알고 있기로는 한국이 미국이 벌이는 어떠한 전쟁을 막론하고 파병해야 한다고 약속된 글귀는 없다. 따라서 멀리 중동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많은 나라들이 불가피성도 명분도 없다고 주장하는, 이라크전쟁에 꼭 자발적으로 나서서 파병을 결정할 법적인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 그러나 이번 결정을 바라보며 그 동안 정치적으로 노대통령과 반대편에 섰던 사람들조차도 북핵위기는 물론이고 국내적으로 어려운 경제상황을 포함한 대내외적으로 산적해 있는 문제들의 해결 실마리를 제공해줄 수 있는, 국익을 고려한 성숙한 정치 의식의 발로라며 국가지도자로서의 책무를 느낄 줄 아는 사람, 즉 예측과 신뢰가 가능한 지도자라고 대통령에 대한 인식 전환의 자세까지 보이며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진정한 국익은 과연 무엇일까? 단기적으로 보면 미국과의 공조를 통하여 출범 초기에 놓인 새 정권의 안정성이라든가 눈앞에 가로놓인 여러 가지 난제들의 해결에 도움이 될 것같이 보이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이번 파병 결정은 한국인의 자주성과 성숙을 가로막는 선택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많은 사람들이 국익을 말하며 이번 경우처럼 한국이 자발적으로 미국에 협조하면 한반도의 유사시 미국 역시도 협조를 아끼지 않을 것으로 잘못된 믿음을 갖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야말로 그때 그때 자신의 국익에 따라서 움직이고 있을 뿐 약속이나 정의를 지켜오지 않았다. 미국이 그 동안 여러 약소 민족들을 다루어 온 역사를 돌이켜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미국은 언제나 힘을 앞세운 패권주의적 외교로 일관해 왔을 뿐 기본적으로 신의가 없는 나라이다.
마찬가지로, 이번에 우리가 그들을 도왔다고 해서 그들이 북침 계획을 우리를 위해서 철회할 일도 없을 것이다. 만약 그들이 앞으로 북한과 중국을 침략함으로써 가장 큰 잠재적 위험이나 경쟁 세력을 제거하려는 계획이 정말 있다면, 우리가 그들을 돕든 말든 그들이 우리의 생명을 생각해주지 않을 것이다. 1945년에 약 80만 명의 일본 양민을 죽인 그들의 폭격이나, 4백만 명을 죽인 그들의 인도차이나 폭격을 생각해보자. 그들에게는 '유색 인종'의 생명이란 하찮을 것일 수도 있다.
즉, 이번에 한국이 미국을 도와 이라크에 파병한다고 해서 한국이 위험에 처했을 때 꼭 돕는다는 보장은 없다는 것이다. 급변하는 세계정세 속에서 국가간의 이해관계 역시도 항상 변할 수밖에 없고 미래 미국의 국가이익이 한국이 원하는 바와 꼭 합치되리라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라크 전쟁 후 세계는 급격히 미국과 그를 따르는 추종 국가들, 그리고 나머지 세계로 양분될 위기에 있는데 과연 그랬을 때 미국의 국가 이익이 한국의 국가 이익과 일치되지 않았을 때 어쩔 것인가?
한반도에 위기가 왔는데도 미국이 한국을 돕지 않을 때엔 그때 가서 정의롭지 않은 전쟁, 명분없는 전쟁에 동참했던 한국이 UN 또는 국제사회를 향해서 무어라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을까?
일찍이 페루의 G.구티에레스 신부 (해방 신학자)가 말했던 것처럼 '한 나라의 잘못된 정책은 꼭 위정자뿐만이 아니라 그 소속 국민의 집단 죄악이다'라는 말을 생각할 때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방해하는 많은 현실적 불가피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단기적으로 국가에 도움이 되느냐 안되냐 하는 세속적인 이해 관계의 득실을 따져서 결정하기보다는 국가적 자주성과 용기를 가지고 세계평화와 인류의 발전에 이바지할 것이냐의 여부 아니면 적어도 도덕적으로 옳은 선택이냐의 여부를 놓고 결정했어야 했었다.
구티에레스 신부는 제3세계의 고혈을 짜내는 제1세계의 착취적 태도를 모든 제1세계 국민들의 '집단적 죄악'으로 설파했었는데, 제1세계의 가장 호전적인 제국의 편에 서게 된 우리들이 이제부터 우리 자신들을 어떻게 의식해야 할는지! 일제보다 훨씬 더 악질적인 미제의 앞잡이가 돼야 한다면, 일제와 싸웠던 과거의 독립 투사들을 생각할 때 부끄럽지 않을까요?
그나마 전쟁이 끝난 후에 파병하게 되어 한편 다행스럽기도 하지만, 한국을 사랑하여 스스로 한국인이 되어 사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이번 결정은 그런 점에서 아쉬움과 부끄러움 그리고 슬픔을 금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