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정국정(40)씨는 혼자서 법전과 씨름하며 소송을 벌여 마침내 문서위조범이라는 누명을 벗었다. 그는 지난 2000년 대기업 L사와의 법정 소송에서 대기업측의 증인이 거짓말을 하는 바람에 위조범으로 몰리게 됐다. 그는 “굳이 돈을 들여 변호사를 선임해 이를 해결하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생전 처음으로 민법, 형사법 등 법률책 수십 권을 사다 밤낮으로 공부를 했다. 그런 뒤 A4용지 100장 분량으로 소장과 첨부 자료를 만들어 소송을 냈고 마침내 승소한 것이다.
대기업이나 대형 로펌 등을 상대로 독학으로 법률 공부를 해 소송을 제기하는 ‘나홀로 소송’이 유행이다. 전문가들은 일반국민들의 교육 수준이 높아진 데다 인터넷이 보편화돼 법률 정보와 서비스가 대중화됐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대법원 통계과 관계자는 “지난해 1심까지 처리된 전체 소송건수 97만건 중 89%가 변호사 수임 없이 진행된 ‘나홀로 소송’이었다”고 말했다.
대학생 이수향(22)씨는 올 초 경기도 오산시에서 햄버거를 먹고 두드러기가 생겨 1주일간 피부병을 앓았다. 담당 의사는 “햄버거 안에 들어 있는 방부제가 원인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법대 친구 등 주위의 도움을 받아 며칠 밤을 새워 가며 소장을 만들었고 16일 햄버거 회사를 상대로 서울지방법원에 소송을 냈다.
‘나홀로 소송’이 급증하자 이를 경험한 사람들이 뜻을 모아 만든 단체도 생겨났다. ‘나홀로소송시민연대’(www.nasiyen.com)는 지난 1월 결성된 시민단체. 발기인으로 참여한 이들은 각자 사연 있는 소송을 경험했다. 삼성화재를 상대로 소송 중인 회사원, 국민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낸 주부, 다단계판매회사의 횡포에 맞선 회사원 등이다. 회원 수는 창립 두 달 만에 100명을 훌쩍 넘었으며 현재 시민 30여명이 ‘나홀로 소송’을 진행 중이다.
모임 결성을 제안한 이철호(47) 대표는 “나홀로 소송에 나선 이들이 대부분 어려운 처지에 있어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경험자들이 뜻을 모았다”면서 “높은 수임료 때문에 변호사를 선임하지 못 하는 시민들의 법률 자문에 역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작년에 “30년간 마신 콜라 때문에 치아 11개가 상했다”며 코카콜라를 상대로 12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낸 상태다. 16일 다섯 번째 재판이 열렸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겐 ‘베테랑’ 회원들이 모여 실력을 발휘, 소장을 써주기도 한다. 황복성(65·여)씨는 지난 2월 초 20년 전 떼인 돈 1억6000만원을 되찾기 위해 시민연대를 찾았다. 황씨는 형편이 어려워 소송을 낼 엄두도 못 내었지만 시민연대측의 도움을 받아 소장을 작성해 채무자에게 보낼 수 있었다.
시민연대는 현재 약 1조원의 통행료가 부당하게 도로공사측에 지불됐다며 강동대교 통행료 반환 소송을 준비 중이다. 이들은 “2㎞도 되지 않는 거리인데도 획일적으로 요금을 부과하는 것은 지역 주민들에게 불합리하다”고 주장했다. 현재 시민 40여명이 모였으며, 100명이 모이면 1차 소송을 낼 계획이다.
(李敬恩기자 diva@chosun.com )
(金南仁기자 artemis@chosun.com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