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다드는 ‘해방정국’을 맞았다. 사담 후세인이 이끈 바트당 일당독재 체제가 무너지자 해외에서 활동했거나 지하로 숨어들었던 정치집단들이 우후죽순처럼 얼굴을 내밀고 세력 확장을 꾀하고 있다.
정치집단들의 백가쟁명=바드다드의 와지리야 지역에 자리잡은 ‘자유로운 장교와 시민 운동’ 본부는 23일 단체 조직원과 새로 가입하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영국 런던에 망명해 있던 나지브 알살리히가 이끄는 이 조직은 1979년 설립됐고, 후세인 정권에 반대해 해외로 망명했거나 내부에서 몰래 활동했던 군인들이 주축이다. 바그다드 본부 책임자인 압둘 라힘 알나스랄라(39)는 “다른 단체와 달리 외국으로부터 지원을 받지 않고 이라크인의 힘으로 민주정부를 세우는 것이 목표”라며 “현재 바그다드에 3개의 지부가 있고, 앞으로 더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단체는 곧 전체회의를 열어 정당으로 모습을 바꿀 계획이다. 육군 준장으로 95년부터 몰래 가담했다는 자심 알아니(44)는 “현재 정당과 정치운동 단체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생겨나고 있지만 실제로 후세인 정권에 반대했고 이를 인정받는 집단은 12개 정도뿐”이라며 “정치집단 사이의 통폐합이 이뤄질 것”으로 내다봤다.
바그다드에서 날마다 늘어나는 정당·정치단체 지부만큼 이들이 내거는 이념도 자유민주주의에서부터 이슬람국가 건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사담 후세인이 어렸을 때 자라난 곳이어서 그의 궁전이 있는 카두르 알야스 거리에는 ‘아랍민족·민주운동’의 본부가 있다. 지도자인 카말 알자라(60)는 “이집트의 나세르가 내걸었던 범아랍민족주의를 추구하는 단체들의 연합”이라며 열흘 전 사무실을 열었는데 곧 정당으로 탈바꿈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압둘 사타르 알주마일리(50)는 “미군은 현재 해방군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점령군이 되는 순간 미군의 철수를 요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바그다드의 부자 동네인 만수르 지역에는 아흐메드 찰라비가 이끄는 이라크국민회의(INC)가 둥지를 틀었다. ‘자유민주당’도 거리에 당이 조직됐음을 알리는 플래카드를 내걸었고, ‘자유로운 군인들의 정당’도 생겨났다. 이라크공산당(ICP)도 벽면에 붉은색으로 옛소련의 상징인 낫과 망치를 그려놓고 중앙당의 문을 열 준비를 하고 있다.
이라크 북부 쿠르드족 자치지역에 근거지를 둔 쿠르드민주당(KDP)와 쿠르드애국동맹(PUK)도 바그다드에 서너개씩 지부를 냈다. 쿠르드민주당은 지부마다 “연방제가 이라크의 통합을 이룬다”거나 “아랍과 쿠르드족은 하나다. 여성과 남성은 평등하다”는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쿠르드애국동맹의 중앙위원회 위원인 쿠르두 카심(49)은 “바그다드에 50만~100만명의 쿠르드족이 살고 있다”며 “쿠르드족의 권리를 대변하기 위해 지부들을 설치했다”고 말했다.
◇ 시아파 움직임=이슬람 시아파의 정치조직화 움직임도 본격화하고 있다. ‘이슬람다와당’(IDP)은 바그다드 서부 다마스쿠스 거리 근처에 중앙당 사무실을 차릴 준비를 하고 있다. 이 정당 대변인인 압둘 카림 알엔지(49)는 “1980년대 후세인 정권이 많은 조직원을 처형했지만 지하활동을 계속해 지금은 나자프와 쿠트, 나시리야, 바스라 등지에 지부를 냈다”며 “이슬람에 기초한 국가의 건설을 추구하지만 선택은 인민들의 몫”이라고 말했다. 바스라의 시아파 지도자인 하심 알무사위가 단체의 중심 인물이고 시아파의 최고지도자 가운데 한명인 후세인 알사디르를 따른다.
바그다드에는 시아파의 최고지도자들인 알리 후세이니 알시스타니와 알사디르, 알하킴 등 5명의 얼굴과 공동서명이 담긴 팸플릿이 뿌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의 추종세력들은 서로 주도권을 잡기 위해 팽팽히 대립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아파의 급속한 세 확산에 긴장한 미국은 23일 이란의 시아파 정권에 대해 강력히 경고하고 나섰다. 애리 플라이셔 백악관 대변인은 이란이 정보요원을 침투시켜 이라크 시아파를 선동하는 것은 명백한 외부 간섭이라고 주장했고, 미군은 이란-이라크 국경지대 순찰을 시작했다.
바그다드/황상철 기자 rosebud@hani.co.kr
안정이 될려면 좀 시간이 걸리겠군요..쉽진 않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