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 뉴스에서 퍼온글입니다.
왜 깨끗한 공무원이 항상 당해야 하는지 속이 뒤집어 지는군요
행정이 뭐라고 생각합니까? 뭐 다양하게들 해석하는데요. 행정은 다름 아니라 법을 집행하는 겁니다. 정해진 규정에 의해서 올바르게 집행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죠."
섣불리 행정은 '서비스'니 '공익'이니 하는 단어를 입에 올렸던 기자의 입이 무안해지는 순간이었다. 정치에 의해 만들어진 규정의 '정'을 곧게 '행'하는 것이 바로 행정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비록 그 자신도 결백할 만큼 그렇게 청렴하지는 못했다고 말하는 이로부터 이런 말을 듣는다는 것에는 분명 뼈아픈 곡절이 있었다.
조금은 회한에 찬 말투로 이렇게 말한 사람은 안산시 토목직 공무원 김봉구(48)씨다. 지난 23일 최초로 부패방지위원회로부터 자신을 하향전보시켰던 소속 시장을 과태료조치에 처하는 의결을 받아낸 '문제'의 공익제보자가 바로 그다. 전화로만 인터뷰했던 김씨를 다시 24일 안산 중앙역에서 만나 지금까지 벌어져왔던 사건의 내막과 지금의 심정을 들어보았다.
김씨의 공무원 경력은 올해로 28년.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9급 공무원으로 시작한 그는 현재 6급 주사 연수만 10년이 다 돼간다. 그 동안 억 단위 이상의 수많은 공사를 담당해왔던 베테랑 공무원이었음을 자부하는 그는 97년에 안산종합운동장이라는 대규모 건립업무를 맡았다. 그리고 IMF가 터지자 공사는 재원마련이 어려워졌고 이를 전담하던 김씨는 공사중시를 건의했다. 이 때부터 그의 외롭고 힘든 싸움은 시작됐다.
IMF시절, 지방경제와 실업자 문제보다 다급했던 운동장 건립공사
운동장설계비 지출문제로 상관(당시 시장은 95년 첫 민선시장에 당선된 송모씨. 그는 이후 2002년 6.13 지방선거에서 다시 시장으로 당선됨)과 대립하던 그는 바로 다음해 안산시 상수도 사업소로 전보된다.
그리고 2000년 12월경, 안산시에 대한 감사원 정기감사 때 이 종합운동장 건립문제를 감사원에 제보하였고 감사원은 '안산시종합운동장건립사업 추진 부적정'만을 통보했다. 그래도 사업은 계속 진행됐고 김씨는 다시 2001년에 YMCA를 비롯한 안산시 시민단체에 운동장 설계비 지출이 부당하였다고 제보했다.
한 달 넘게 진행된 시민단체의 독자적인 진상조사는 2001년 7월 운동장 건립의혹과 관련된 방대한 양의 조사결과 보고서를 내놓았고 이 문제에 대해서 감사원의 재감사를 요청했다. 당시 시민단체가 내놓은 조사결과를 보면 다음과 같은 문제점들이 조목조목 지적돼 있다.
1)IMF 상황에서 종합운동장 건립이 투자우선순위가 아니다(안산시 98년 시 운영방향에도 중소기업 육성지원 및 실업대책이 우선 과제로 설정되어 있다)
2)IMF 상황에서 안산시의 종합운동장 재원조달은 사실상 어려웠다(98년 안산시 재원판단보고서는 IMF로 세입이 향후 5년간 3,432억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3)월드컵 경기장으로 유치가 안된 조건에서 활용도가 극히 낮은 종합운동장을 무리하게 추진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4)실시설계를 1~2년 유보하더라도 법적문제 발생소지가 미약하다
5)지방재정투융자 심사 전 실시설계 추진의 타당성(사업비 50% 이상 증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지방재정투융자심사를 받지 않은 것은 명백한 행정절차와 법을 위배한 조치임. 이후 행자부로부터 종합운동장 투융자심사에서 재검토 지시를 2번이나 받음)
6)안산시는 정상적인 행정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지적을 감사원으로부터 받았다 7)설계비 과다지출 문제(타 지역과 비교할 때 20~30억 정도 과다하게 지출됐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 지적사항이 적혀있는 보고서를 받은 감사원은 2002년 4월 2일에 재감사에 들어갔으나 관련자 5명에 대하여 '징계시효 2년이 지났다'는 이유로 '주의처분'하는 선에 감사를 종결지었다.
이미 운동장 건립업무가 타의에 의해 자신의 손을 벗어났지만 그렇다고 김씨가 '싸움'을 멈춘 건 아니었다.
불행중 다행으로 2002년 1월에 많은 국민의 기대를 받고 '우리역사상 내부고발자 보호 보상제도를 최초로 시행한다'며 대통령 소속하의 부패방지위원회(당시 위원장 강철규, 현 공정거래위원장)가 출범했다.
그리고 그 해 4월 9일 김씨는 마지막 심정으로 부패방지위원회(이하 부방위)의 문을 두드렸다. '안산종합운동장 설계용역비 부당집행'과 관련하여 민선 1기 안산시장과 당시 부시장 등 4명을 부패혐의대상자로 신고한 것이다.
그러나 김씨는 부방위로부터도 '요구인의 신고사건에 대하여 감사원이 2회에 걸쳐 감사하였고, 그 외 '새로운 위법사항'이 없는 사유로 2002. 8. 20. 불이첩 처리하였다'는 답변을 받아야 했다.
6급 근무연수 10차 공무원의 전례가 없는 동사무소 하향전보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말했을 뿐인 그가 이 싸움 끝에 얻은 것이라곤 본청에서 동사무소로의 하향전보였다. 작년 지방선거에서 새로 당선된 송 시장은 대규모 인사를 단행(2002년 10월 22일)하면서 '조직에 밉보인' 그를 전보제한 기간 1년도 지키지 않고 같은 해 11월 1일 토목직과는 거리가 먼 반월동사무소 주무로 보내버린 것이다. 석연치 않은 두 번의 전보조치인 셈이다.
▲ 운동장이 건설되기 이전의 땅부지
ⓒ2003 류종수
이에 앞서 김씨는 10월 26일 내부고발로 인한 신분상 불이익을 이유로 부방위에 신분보호를 이미 요청했다. 부방위는 그가 '약 27년간의 공직생활에서 징계·주의처분을 받은 사실이 없으며, 2001년부터 현재까지 근무태도에서 무단외출·지참 등 사례가 없다'고 확인하며 '그의 전보조치가 신분상 불이익처분에 해당되므로 안산시장은 30일 이내의 원상회복 조치를 취하라'고 의결했다.
하지만 강제력 없는 부방위의 의결을 비웃기라도 한듯 송 시장은 이를 지키지 않았고 과태료 500만원이라는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을 뿐이다. 부방위 출범이래 최초로 나온 공익제보자 '보복행위'에 대한 처벌치고는 너무나 초라한 결과이자 전례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 문제와 관련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법적 조치는 다 취했고 드러난 것도 없지만 아직 김씨는 자신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고 확신했다.
무리한 사업 추진으로 절차와 규정위반의 문제점. 나아가 막대한 예산낭비라는 김씨의 지적으로 이 비상식적인 사업이 중단될 처지에 놓이게 되자 시장과 건설업자는 정상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공사를 강행해 나갔다는 것이 당시 담당자였던 그가 내놓는 흔들림 없는 판단이다. 분명 그 과정에서 최소한 업무상 배임죄에 처할 수 있는 부정부패가 발생했을 것이라고 그는 믿고 있다.
이번 싸움이 그에게 남긴 것.... 허탈과 분노
그리고 결코 쉽지 않았던 시간을 겪으면서 그는 우리사회의 학벌과 파벌, 부처이기주의라는 고질적인 문제점을 새삼 실감했다고 한다.
"애초에 내가 제보해서 감사를 나왔으면 최소한 날 불러서 조사를 해야하는 것 아니냐. 그런데도 감사원에서 나왔다는 사람들은 날 만나지도 않고 단순 행정조사만 하고 가는 거야. 그리고 부방위에서 이 사건을 맡은 실무자들은 또 감사원에서 파견 나온 공무원들이더라구. 조사가 제대로 될 리가 없지. 아 자기들도 원 부처로 돌아가야 하는데 제 부처에서 먼저 조사한 사건을 다시 들쑤시고 싶겠어? 그리고 전 부시장이라는 사람은 또 얼마나 정관계에 인맥이 많은지 그렇게 해먹고도 경기도 행정부시장에 고충처리위원회 상임위원장까지 올라갔어. 내참 우리 사회가 이렇게 썩었어."
그간에 겪었던 마음고생 때문인지 김씨의 목소리는 약간 흥분된 상태였다. 28년간 별 문제 없이 살아온 한 공무원에게 '조직생활에 적응 못해 직원간의 잦은 불화로 동료사이에서 이상한 성격의 소유자로 평가된다(부방위의 '신분보장조치요구 결과통지에 적힌 송 시장의 주장)'는 시장의 말은 아직도 그를 분노케 한다. 그래서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겪은 정신적 고통과 피해사례를 보상하라는 민사상 손해배상소송을 안산시장에게 제기할 계획이다.
부당하고 '냄새나는' 운동장 건립에 정면으로 맞섰던 한 사람은 아직도 속이 곪아있다. 행정은 곧 법의 집행이라고 믿고 법대로 살려고 한 그를 보호해줄 법은 아직 없는 모양이다. 다른 월드컵 경기장과 비슷한 시기에 공사에 들어간 문제의 안산종합운동장은 올 5월 2일에 화려한 기공식을 가질 예정이다.
오마이 뉴스
/류종수 기자 (ryujs5is@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