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큰 전염병, 약세장은 침체 더 깊게해
강세장선 돌출변수로만 작용… 대세 그대로
“역사적으로 전염병과 같은 외부 충격이 주식시장의 흐름 자체를 바꾸지는 못했다. 그러나 (경기가 좋지 않을 때 전염병이 발생하면) 주식시장의 침체를 더욱 가속화시키곤 했다.”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세계경제에 큰 타격을 주고 있는 가운데 독일계 투자은행 도이치뱅크는 최근 ‘전염병과 투자’라는 전략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현 단계에서 사스가 주식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측하는 것은 어렵다”고 전제, “그러나 과거 전염병과 주식시장의 관계를 살펴볼 경우 약세장(場) 속에서 전염병이 발생하면 그 (주가약세) 흐름을 더욱 가속화시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 전염병과 주가변동의 역사
보고서는 세계경제에 영향을 미친 첫 번째 전염병으로 세계 1차 대전이 끝날 무렵 유행했던 ‘스페인 독감’을 들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유행성 감기의 일종인 스페인 독감은 1918년 9월부터 퍼지기 시작, 전 세계적으로 2000만~40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당시 사망한 미국인의 수는 1~2차 세계대전·한국전쟁·베트남전쟁에서 사망한 미국인 수보다 많았다.
하지만 이 같은 재앙에도 불구하고, 당시 미국의 주식시장은 1919년 말까지 상승세를 유지했다. 보고서는 “S&P500 지수(미국 500개 우량 상장기업의 주가를 평균한 지수)에서 (스페인 독감으로 인한) 대재앙의 흔적을 찾기는 어렵다”며 “이는 1차 세계대전의 승리 때문”이라고 결론내렸다.
보고서는 또 1950년대에 유행했던 소아마비를 두 번째 예로 들었다. 1916년 뉴욕에서 시작된 소아마비는 이후 40년 동안 미국의 모든 주(州)와 시(市)에 타격을 입혔고, 1952년에는 미국에서만 5만8000건의 소아마비 환자가 발생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미국의 주식시장은 상승세를 이어갔다. 보고서는 “1950년대의 S&P500 지수에서도 (소아마비로 인해) 극도의 공황이 있었다는 사실을 찾아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보고서는 그러나 60년대 후반 홍콩독감이 유행했을 때는 수만명의 희생자와 함께 주식시장도 약세를 면치못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그 이유에 대해 “홍콩독감이 주가가 떨어질 때 발생해서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기 때문”이라고 결론지었다.
◆ 사스의 향후 전망
도이치뱅크의 보고서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사스가 결국 현재 세계경제의 큰 흐름인 디플레이션(물가하락과 경기침체가 장기간 지속되는 상태) 경향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보고서의 결론대로라면 2000년부터 시작된 세계적 주가하락 추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보고서는 그러나 사스로 인한 피해는 국가에 따라 달라 (한국·중국·대만 같은) 신흥시장국가들이 특히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했다. 또 경제주체 중에서는 고비용·저효율 구조를 가진 재벌, 비효율적인 기업, 수직적으로 통합된 기업, 은행, 주식소유자, 생산자 등이 피해를 볼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미국·일본·독일 같은) 선진국과 저비용·고효율 기업, 한 분야에 특화된 기업, 채권소유자, 소비자 등은 피해가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됐다.
삼성투자신탁의 임창규 펀드매니저는 “세계경제는 90년대 거품경기가 무너지면서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며 “사스로 인한 희생자가 늘어나고 피해기간이 길어진다면 이 같은 주가약세의 흐름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 매니저는 특히 “한국은 주요 교역국인 중국·홍콩 경제가 직접 타격을 입게됨에 따라 기업들의 피해도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경제 / 宋東勳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