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옷차림이 어떻습니까? 일부러 이렇게 입고 나왔습니다.’ 면바지에 티셔츠 캐주얼 차림으로 국회에 나온 유시민의 첫 멘트이다. 그는 미리 준비한 ‘국회의원 선서에 부쳐 드리는 말씀’에서 불관용과 독선과 싸우기 위해 캐쥬얼차림으로 나섰다고 명분을 밝혔다. 의원들의 퇴장으로 첫날 불발된 의원선서를 오늘 유시민은 신사복 차림으로 마쳤다. 그리고 또 물었다. ‘오늘은 제 옷이 마음에 드십니까?’라고-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대답하겠다. ‘마음에 들고 안들고를 떠나 나는 유시민의 옷차림에 관심이 없다’고- 지금 나의 관심사는 지독한 불경기, 심상찮은 북핵위기, 불안하기 그지 없는 사스이다. 이 와중에 유시민의 패션 퍼포먼스를 지켜보자니 쓴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개혁정당 대표 주자인 유시민은 스스로를 새내기 국회의원으로 불렀다. 경력이 중시되는 세상에 유권자는 왜 유시민같은 경험도 없는 새내기를 뽑았을까? 유시민이 부르짖던 ‘개혁’ 의지 때문었다. 밝고 깨끗하고 평화로운 세상으로 ‘개혁’을 위해 그가 뭔가 제몫을 하려니 했다. 그가 쓴대로 역사를 거꾸로 보건 차례대로 보건 그 모든 개혁은 어렵고 힘들며 고통이 수반된다. 사회란 참신함과 젊은 혈기와 도전만으로 ‘개혁’될 정도로 그리 간단치않다. 그 뿐아니라 개혁세력도 문제가 있었다. 비바람에 절은 굴비는 천천히 썩어도 방금 뜬 생선회는 금방 맛이 가듯이-
그러나 아주 드물게 성공한 개혁에는 몇가지 특징이 있다. 진지함과 성실, 그리고 겸손이다. 유시민에게 내가 기대했던 것들이다. 낡은 와이셔츠를 깨끗이 빨아 입고 유행 지난 양복을 깔끔하게 다려입고 다소 촌스런 넥타이를 매고나와 형형한 눈빛으로 국회의원 선서를 할 유시민을 상상했다. 가뜩이나 정상적인 사람이 드물고 진지한 사람이 귀하고 상식적인 사람이 없는 세상이라 더욱 그랬다.
캐주얼 차림으로 국회의원선서를 한데 대해 유시민은 얄팍한 인기전술이 아니며 튀고 싶어서도 아니라고 했다. 그는 국회는 일터이며 ‘일터에 맞는 캐쥬얼’로 나왔고 ‘다름’을 인정하는 관용을 위해서라고 했다. 그의 본래 뜻을 왜곡할 생각은 없다. 또한 TV토론 사회를 볼 때 항상 넥타이에 말끔한 정장 그리고 분장까지 꼼꼼히 신경쓰고 나왔던 그가, 선거 운동을 할 때도 꼬박꼬박 신사복에 넥타이를 맨 그가 국회알기를 TV출연보다도 우습게 알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나는 유시민이 이렇게 단순하고 아마추어적인가 하는 점이 유감스럽다. 자신이 미칠 행동을 헤아리는 진지함이 아쉬웠다. 또한 칼을 쓸데 써야지 이런 사소한 일로 관심을 모으고 화제를 모으는 경솔함이 실망스러웠다. 그는 캐주얼 차림으로 국회의원 선서를 한다고 해서 퇴장한 국회의원들이 여유과 관용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또한 양복에 넥타이를 고집하는 이들은 불관용과 독선이라고 빗댔다. 넥타이를 좋아하면 보수이고 캐주얼이면 진보라는 단순하기 짝이없는 편가르기야말로 답답한 일이다.
옷은 매우 중요하다. 왜 승려들이 머리를 깎고 허름한 승복을 걸치는가? 많은 것을 포기한다는 표시이다. 내가 아는 한 목사님은 평상복에 로만칼러를 항상 하고 다녔다. 신부도 아니지만 그는 성직자라는 신분을 드러냄으로서 항상 더 언행에 조심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국회의원이란 성직자 못지않은 자기절제와 겸허함이 필요한 자리이다.
우리는 ‘캐주얼’한 유시민보다는 많은 것을 조심하고 겸손하고 진지한 유시민을 원한다. 개혁의 치어리더로서 일회성 퍼포먼스에 몰두하는 유시민보다는 골방에서 고민하는 유시민을 원한다. 지금 국민은 양복이냐, 캐주얼이냐하는 소모적인 찬반론을 캐주얼하게 구경할 정도로 몸도 마음도 한가롭지 않다. 유시민이 ‘캐주얼 국회의원’으로 기억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정치인으로서 소모적 행동이다. 깔끔하고 반듯하게 정공법으로 진짜 개혁을 할 만한 일에 몰두해 정책적인 논쟁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 유시민의 갈 길이다.
그리고 캐주얼의 패션 감각에 한마디 하겠다. 원래 양복보다 캐주얼이 소화하기가 힘들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외모를 굳이 거론하는 것은 아니지만, 캐주얼은 얼굴도 몸매도 어느 정도 받쳐줘야 한다. 적어도 남의 눈에 거슬리지 않기 위해 ‘등원용 캐주얼’을 갖추려면 적잖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간다. 바라건대 유시민은 너무 옷차림에 신경쓰지 말고 오로지 나랏일에만 몰두했으면 싶다.
전여옥(방송인)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