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여타의 수퍼 히어로 액션 영화들과 달랐다. 자신의 힘으로 모든 악을 쳐부술 수 있다고 믿는 할리우드의 수많은 정의의 사도들과 달리 의 돌연변이들은 자신의 능력이 부담스럽고 무서웠다. 그들은 늘 평화를 원했고 인간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했다.
하나씩 가지고 있는 엄청난 능력은 그들을 멋있게 보이게 만들었지만, 반면에 그 능력으로 인해 그들은 고통받았다. 이 보여준 단순 선악구도 이면의 어두운 영웅상처럼 의 돌연변이들도 남들과 다른 자신의 능력 때문에 외로움 속에 갇힌다. 이것이 의 매력이었고 차별화 전략이었다.
하지만, 는 전편보다는 덜 매력적이다. 돌연변이들은 더이상 자신의 능력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여 권선징악의 사도가 되려 하고 있다. 착한 쪽이 살아남고 나쁜 쪽은 버림받아야 한다고 믿고 있다.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이 없다.
손가락에서 갈퀴가 솟아나올때 아프다고 수줍게 고백하던 울버린(휴 잭맨)은 사라지고 대장노릇을 하는 열혈전사 울버린만 남았다. 손에 닿는 모든 것을 죽일 수 있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정신병을 앓던 로그(안나 파퀸)는 이제 사랑에 빠진 여자다. 눈에서 나오는 붉은 광선으로 괴로워하던 스콧(제임스 마스든)은 아예 중요 인물군에서 사라져버렸다.
이렇게 개인적인 감정들을 누락시킨 는 그대신 더 큰 공간으로 접근한다. 백악관이 배경으로 등장하고 엑스맨들은 미국식 정의감에 사로잡혀 인류 전체를 걱정한다. 이쯤되면 여타 수퍼 히어로 영화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컨셉트다.
엑스맨들은 애초에 인간의 욕심에 의해 만들어졌다. 방사능 폐기물과 복제인간의 유전자가 결합하여 초능력을 갖게 된 것이다. 이들의 숫자가 늘어나자 인간은 두려움을 갖게 되었고 멀리하게 되었다. 엑스맨들은 인간과 고립되어 살아간다. 두 명의 위대한 엑스맨인 자비에(패트릭 스튜어트)와 매그니토(이안 맥켈렌)는 각각 엑스맨들의 정신적 지주와 지배욕망에 사로잡힌 강자로서 한 명은 엑스맨과 인간이 조화롭게 살기를 바라고, 다른 한 명은 인간을 모두 없애고 엑스맨들의 세상을 만들고 싶어한다.
이처럼 '엑스맨'이라는 텍스트는 다분히 정치적이다. 인간과 인간 사이, 종족과 종족 사이에 일어나는 문제를 돌연변이와 인간의 문제로 치환시키고, 엑스맨 내부에서도 두 수퍼파워의 다른 접근방식으로 인해 문제들이 야기되는 방식이 인간의 권력싸움과 닮았다. 여기에 덧붙여 에서는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지를 꾸준히 주입시킴으로써 미국영화임을 명백히 드러낸다.
가령 파이로(아론 스탠포드)가 경찰에게 불을 뿜어대는 장면에서 그의 표정이 무섭게 일그러지는 것을 보라. 그가 나쁜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을 영화는 열심히 설명하는 중이다. 또, 베를린에서 온 나이트크롤러(알란 커밍)가 열심히 성경구절을 외우는 장면은 그가 사실은 착한 캐릭터라는 것을 한 방에 설명해주기 위한 장치다.
미국 대통령을 해코지한 그가 굳이 베를린에서 온 캐릭터라는 것이 강조되는 것도 우스운데 그들의 일원이 되기 위한 발판이 독실한 카톨릭이라니 이 얼마나 미국적인가!
▲ 진은 기독교적으로 다른 동료들을 구원하고 자신을 희생한다.
ⓒ2003 20세기폭스
이처럼 미국적 권선징악은 미국인이 아닌 관객을 당혹스럽게 한다. 착한 사람은 상을 받고 악한 사람은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어느 나라에나 있는 속담이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나쁜 짓을 한 자를 죽게 내버려둬야 한다는 것은 아마 미국인이 아니면 쉽게 이해하기 힘든 설정일 것이다. 가령 제이슨(마이클 레이드 맥케이)이 자비에에게 환각술을 걸었다고 해도 그는 그의 아버지 스트라이커의 사주를 받아 움직였을 뿐이다.
나이트크롤러는 카톨릭이라 용서가 되면서도 제이슨은 용서가 안되었나? 왜 그를 죽게 내버려두는가. 마찬가지로 울버린은 스트라이커에게 차라리 아이를 택하겠다면서 그를 죽든말든 내팽개친다. 돌연변이 소탕에 불을 켠 그가 엑스맨들의 적인 것은 확실하나 스트라이커와 울버린은 프랑켄슈타인과 괴물처럼 창조주와 피조물이라는 독특한 관계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런 식의 마무리는 좀 비겁했다.
이렇게 넌 나쁜 짓 했으니 벌 받으라는 일방적인 강요는 사실 현실세계에서 미국이 항상 외교를 통해 보여준 것과 일맥상통한 것 같아 씁쓸하다. 더욱이 실제로 나쁜 짓을 한 것과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그것이 나쁜 짓이 아닐 수도 있음을 알 수 있는 경우(아버지의 사주를 받은 제이슨처럼)는 구분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는 이에 무심하다. 오직 동료들을 대신해 기독교적인 희생정신으로 장렬하게 전사한 진(팜케 얀센)만이 눈물로 기억되고 영웅으로 추앙될 뿐이다.
기실 는 좀 더 스케일이 커졌고, 볼거리도 화려해졌다. 제트기 안에서 벌어지는 공중전은 만큼이나 현란하다. 또, 전편에 등장하지 않던 새로운 캐릭터들은 재미있는 신기술을 보여준다. 얼음으로 벽을 만들고, 불로 차를 뒤집는다. 영화의 앞뒤로 펼쳐지는 나레이션은 전편에서 사랑받은 돌연변이의 '자유'에 대한 주제를 직접적으로 부각시켜 감동을 주려고 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전편보다 많이 영악해졌다. 더 많은 엑스맨들이 등장하지만, 사실 엑스맨 개개인이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는 더이상 다루지 않는다. 전편에서 울버린을 주축으로 하면서도 비슷한 비중으로 소개되던 캐릭터들이 속편에서는 마초 울버린 중심으로 바뀌어 화려한 격투기 실력을 보여주는데 치중한다.
어둠 속에 고민하던 의 음울한 영웅상이 에서 전면 스포트라이트로 바뀐 것처럼 의 엑스맨들 역시 화려해지고 좀더 무덤덤해졌다. 얻은 것은 미국식 정의감이요 잃은 것은 '엑스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