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울화통이 터져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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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죄 판결 처한 검사 고소인 매수
[속보, 사회] 2003년 05월 19일 (월) 10:33
현직 부장급 검사가 유죄판결을 받을 상황에 놓이자 자신을 고소한 사람에게 돈을 주고 소송을 취하하도록 해 물의를 빚고 있습니다.
한 지방 검찰청의 조 모 검사는 최근 서울 방화동에 사는 66살 조인준가 자신을 상대로 불법체포와 감금혐의로 제기한 소송을 취하해 달라며 조씨에게 수천만원을 건넨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고소인 조인준씨는 조검사가 동생을 통해 합의금을 제공하고,하루에도 몇차례식 전화를 걸어오는 등 합의를 종용해 요구를 수용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조인준씨는 지난 98년 조 검사가 교통사고 사건을 처리하면서 자신을 뺑소니로 몰아 긴급체포하자 소송을 제기해 대법원으로부터 사건 무죄판결과 담당검사의 직권남용 인정 판정을 잇따라 받아 냈습니다.
대검찰청 감찰부는 조 검사의 이같은 행위에 대해 감찰조사에 착수했습니다.
이재홍 [honglee@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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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나는 개구리였다…검찰이 던진 돌에 맞은
[속보, 사설/칼럼] 2003년 04월 13일 (일) 23:18
“제 권리를 변호한다는 게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습니다.
그야말로 고립무원의7년 세월이었죠.” 40년 가까이 평범한 버스 운전사였던 조인준(66·서울 방화동)씨는 지난 7년 동안변호사의 도움 없이 홀로 검찰을 상대로 한 법정 싸움에서 “어느날 느닷없이짓밟힌 인권”를 되찾고 있다.
교통사고 피해자인 자신을 ‘뺑소니’ 가해자로둔갑시킨 검찰에 맞서 2001년 1월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냈고, 지난달 말엔불법체포와 직권남용 혐의로 담당검사를 고소한 사건에서 ‘검사 무혐의’의 원심판결을 깨는 대법원의 ‘파기환송’ 결정을 받아냈다.
“법률전문가의 높은 벽을 넘어 법의 상식을 찾는 데까지 너무도 먼 길을 돌아온것 같다”는 그는 이제 일흔을 바라보는 노년에 접어들었다.
조씨는 “검찰의어처구니없는 사건처리 탓에 나와 가족의 삶은 완전히 바뀌어버렸다”며 “우리는아이가 무심코 던진 돌에 맞은 개구리의 운명이었다”라고 허탈해했다.
지난 1996년 6월15일 밤 10시25분, 서울 충정로3가에서 조씨가 몰던 시내버스를뒤쪽에 있던 승용차가 들이받은 가벼운 접촉사고가 발단이었다.
현장조사에서조씨가 피해자임이 밝혀져 끝났던 사건은, 이틀 만에 조씨에게 ‘손괴 후미처리’(뺑소니) 혐의가 붙어 검찰로 보내졌다.
조씨는 정년퇴직을 한달 앞두고권고사직으로 핸들을 놓아야 했다.
“억울함을 도무지 참을 수 없었습니다.
변호사 살 돈도 없었으니, 1년 넘게서점에서 혼자 형사소송법을 탐독했죠.
그런데 법전 안에는 정의가 엄연히 살아있더라고요.
현실은 정반대였지만….” ‘법의 정의’를 믿었던 그는 ‘도주우려가 있다’며 자신을 긴급체포했던 검사까지 불법체포·직권남용 혐의로고소했다.
힘겨운 싸움은 시작됐다.그리고 ‘나홀로 소송’은 그의 생활을 철저하게뒤바꾸었다.
서초동 법원의 법정을 틈만 나면 찾아, 형사재판을 방청했다.
“재판도 기술이란걸 터득했다면 터득했죠.
변호에도 순서·절차가 있고 요령도 있더라고요.” 그는법정 변론의 ‘노하우’를 익혔다.
경찰·검찰청과 법원을 오가는 바빠진 생활탓에 그는 아들의 오토바이를 자가용 삼아 타고다녔다.
변론요지서, 준비서면, 증인신청서 등 갖가지 재판서류를 준비하기 위해선 두딸의 도움을 받아 컴퓨터의 문서작성 프로그램과 타자법을 배워야 했다.
증거와재판서류를 준비하느라 밤샘하기 일쑤였다.신문·잡지에 난 법률 관련 기사는모조리 오려두는 버릇도 생겼다.
“7년 동안 라면상자로 일곱 상자 분량의재판서류와 관련자료들이 이젠 방 안을 가득 차지할 정도”라고 한다.
“처음 법정에 섰을 때 막강한 법률전문가들 사이에서 주눅이 들어 나홀로무인도에 있는 듯하던 느낌도 점차 사라지더군요.갈수록 법전에 담긴 정의는 꼭실현돼야 한다는 사명감까지 들더군요.” 하지만 가족의 어려움은 컸다.
시내버스 업계에 조씨의 이야기가 퍼지면서 검찰과경찰의 눈치를 보던 업계에선 더이상 일자리를 얻을 수 없었다.
빚이 늘면서 30년된 100평짜리 집을 팔아 전세로 옮겨야 했다.울화병까지 겹쳐 고혈압으로 건강도악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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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더 참을 수 없는 것은, 얼마 전 대통령과 검사들의 대화를 생중계한 방송에 내 사건을 담당했던 당시 공판검사가 나와 검찰개혁을 얘기할때엔 기가 막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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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서민의 작은 인권에는 눈을 돌리더니….”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준비중인 조씨는 “기소해야 할 것은 기소하지않고, 기소할 만한 것이 아닌 것을 직권남용으로 기소하는 검찰의 나라에서기소독점주의는 민주주의의 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나 같은 서민의개인 인권들도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세상에 보여주기 위해 앞으로도 끝까지싸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