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5·18 기념식장인 광주 망월동 묘역에서의 항의시위와 관련해 검·경은 '엄정수사·전원사법처리' 방침을 세웠다. 이에 대해 제11기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에서는 "현장에서의 경찰 대치 상황은 다분히 돌발적이었다"며 "5·18 관련 유가족과 국민 여러분께 사과 드리고 필요하다면 검찰의 수사에도 응하겠다"고 밝혔다.
20일 정재욱(23·연세대 총학생회장) 11기 한총련 의장은 를 에 송고해왔다. 정 의장은 당선 직후인 지난 4월 노 대통령에게 보내는 첫 번째 편지를 쓴 바 있다. 는 당시 현장 상황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정 의장의 생각이 담긴 이번 편지 전문을 싣는다...
노무현 대통령께
안녕하십니까?
첫인사를 어떻게 드려야 할지 무척 고심했습니다. 요즘 여러 문제로 난감하신 걸 잘 알고 있는데 안녕하시냐는 인사를 드리기가 무안했거든요. 지난 5월 1일, TV토론회에서 "느낌이 좋다"는 칭찬을 들은 지도 꽤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 동안 대통령께서는 미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셨고 저는 합법 한총련의 출범식을 우리 국민들과 함께 하기 위해 이라는 이름의 행사를 성대하게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지난 대선 당시 "미국에 안 갔다고 반미주의냐. 반미주의면 또 어떠냐"라는 대통령의 말씀에 희망을 느꼈습니다. 그 동안 당선되자마자 으레 미국으로 인사하러 가던 과거 대통령에 대한 문제의식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추가적 군사 조치를 인정하고 민족 내부 교류마저 미국의 개입을 용인하겠다는 발언은 그 동안 대통령께서 강조하신 '자주 외교, 수평적 대미관계'의 원칙과 사뭇 다른 발언이었습니다. 대통령을 진심으로 지지하고 그간 행보에 대해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많은 국민들이 이번 대통령의 미국 방문에 대해 '저자세 굴욕 외교'라고 비판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아실 겁니다. 저희는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했기에 솔직히 그 동안 실망했던 마음을 대통령께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5.18 묘역 입구에서 대통령께 저희의 고민을 담은 글을 전달하고자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이런 실망감만 가지고 5.18 묘역 입구에 서 있던 것은 아닙니다. 중국의 주룽지 총리가 그러했던 것처럼 대통령께서도 직접 저희들에게 다가와서 만족할 수는 없더라도 자신의 고민을 조금은 인정할 수 있지 않겠냐고 호소하면서 "기개 있는 여러분의 모습이 내일의 한국의 모습이다"라고 말씀하시고 행사장으로 들어가시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조금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자리에서 대통령의 모습을 볼 수 없었습니다. 대신 새까만 방패에 둘러싸여 을 불러야 했습니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미국에 가서 그런 발언을 할 수밖에 없는 이 땅의 현실이 억울해서 땀과 눈물 범벅으로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총련 학생들이 차량을 흔들었다느니, 조화를 짓밟았다느니 사실과 다른 내용이 대통령께 전해지는 것 같아 우려가 듭니다. 어쨌든지간에 저희 생각을 전달하고 시위를 마감하려 했지 행사 자체를 방해하고자 했던 것이 아니었는데, 국립 묘역으로 승격되고 민주유공자 예우를 받게 된 첫 해인 올해 5.18 행사에 기대가 컸던 국민들과 유가족들이 상심하셨을까봐 무척 걱정됩니다.
저희들은 대통령께 위협을 가하려던 것도 아니고 대통령을 모욕하고 타도 대상으로 삼았던 것도 아닙니다. 많은 분들이 이야기하시는 것처럼 이 현실에 대해 억울해 하는 순수한 젊은이들의 비판과 저항 의식을 표출하고자 했던 것이었습니다.
그 동안 대통령의 고심을 이해하려고 많이 노력했지만 아직도 저는 대통령께서 5.18 기념 행사에 18분 늦어서 생긴 문제보다 이번 미국 방문에서 잃어버린 것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사람이 아닌 '노무현'이기에 설령 그 방법이 서툴더라도 자주와 민주주의, 평화와 통일이라는 이 시대 5월 정신을 이어가고자 하는 저희들의 진심을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대통령께서 '난동자에 대해 법을 엄격히 적용하라'고 이야기하신 이후 때아닌 서슬 푸른 대량 검거령으로 5월의 대학가가 얼어붙고 있습니다. 내일이면 '난동 주모자'인 저를 비롯한 몇 명에게도 출석요구서가 발부되고 예년처럼 '국가보안법 위반'이 아닌, 다른 명목으로 검거 조치가 내려진다고 합니다.
"우리 한총련이 때로는 대통령과 같은 길에 서 있을 수도 있겠지만 때로는 대통령께 거침없는 비판과 공격의 화살을 던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던 제 첫 번째 편지를 기억하실 겁니다. 이번 일 역시 한총련은 대통령과 반대편에 서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한반도 전쟁을 반대하고 외세의 간섭을 반대하는 한총련의 목소리는 더욱 더 높아질 것입니다. 그러는 동안 서로 다른 길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일이 많아질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을 두려워하지는 않아야 하겠죠? 언제나 한총련은 이 땅의 '부르노'나 '단재 신채호'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전에 약속했던 것처럼 굳건한 오해의 벽을 넘어 서로 마음을 열고 이야기할 준비를 항상 하고 있겠습니다. 사법 처리 방침을 철회하시고 섭섭하시더라도 저희 대학생들의 이야기, 우리 국민들의 비판에 대해 이해하고 함께 평가할 수 있도록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이런 순수한 비판의 목소리를 보장할 때 진정한 5월 정신 계승이, 최근 대통령께서 강조하시는 통합이 실현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일에 대해 비판도 적지 않지만 많은 분들이 한총련을 격려해주셨습니다. 18일 밤, 수배 해제 문제를 다룬 TV토론에서 만난 송영길 의원은 "한총련 학생들의 주장도 겸허하게 들을 자세를 갖는 것이 참여 정부의 자세다. 사법 처리된다면 내가 가장 먼저 나서서 지키겠다"고 이야기하셨고 손석춘 기자는 "한총련의 시위에서 오히려 이 땅의 희망을 읽었다"고 글을 쓰셨습니다.
"우리 젊은이가 침묵을 지켰다면 이게 얼마나 절망적인 나라냐. 젊은이들이 당당한 목소리를 내는 게 아름다웠다. 그리고 조국의 미래가 든든했다"는 김원웅 의원의 말씀을 다음 기회에는 노무현 대통령께 직접 들어볼 수 있도록 이 땅의 젊은이답게 살아가겠습니다.
지난 4월 19일 처음으로 편지를 보내고 나서 두 번째로 편지를 보냅니다. 매번 우리나라 자주와 민주주의 실현을 앞당긴 민중의 싸움이 있었던 역사적인 날마다 편지를 보내게 되는 걸 보니 아마 다음 편지 날짜는 6월 10일이 되지 않을까요? 그때는 미선이와 효순이 1주기 추모 행사에 초청하는 내용을 담은 편지를 보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언제나 우리 사회 발전을 위한 대통령의 노력 잊지 않겠습니다. 다음에 뵙겠습니다. 건강하십시오.
2003년 5월 20일
11기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의장 연세대학교 총학생회장 정 재 욱 드림
/정재욱 기자 (11hcyzzan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