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13일자 시론 '병역거부자에 대체복무를'이라는 글에서 오태양(사단법인 간사)씨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대체복무를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 내용을 살펴보면 오태양씨가 군의 존재와 역할에 대해 심각한 오해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먼저 그는 "국방의 의무는 비단 총을 짊어져야 하는 것으로 국한되는 것만은 아니다"라고 했는데, 이는 주된 군대의 임무는 외면한 채 부수적인 기능과 역할만 강조한 주객이 전도된 아주 위험하고 잘못된 생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군대란 어디까지나 비상시 국가수호를 위한 혹시 있을지도 모를 '전쟁에 대비하기 위한 집단'이다. 물론 현역병을 충원하고 남는 인력은 국가기간 산업발전을 위해 산업기능요원으로 활용하거나 때로는 국민의 안전과 공공의 이익을 위해 어렵고 궂은 일을 수행하는 데 동원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평화시에 하는 군의 부차적인 기능일 뿐 군 본연의 임무는 아니다. 군은 어디까지나 국가와 민족수호라는 절실한 가치를 위해 존재하는 유사 이래 존속되어온 집단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또한 대체복무의 뜻조차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 현재 공익근무요원 등 대체복무자들은 전쟁이 나면 전시근로소집 대상이 되어 모두 전쟁에 투입되어야 하는 예비 전투요원들이다. 이 때문에 보충역 판정을 받고 산업체나 기업체 연구소 등에서 근무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4~6주간의 기초군사훈련을 통해 총기를 다루는 법과 기본적인 전술 등을 익혀야 하며, 전역 후 8년 동안은 유사시에 대비한 예비전력요원으로서 군사훈련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태양씨를 비롯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모든 집총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그가 용어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병역의 兵(병)은 군사를 의미하며, 집총을 거부하는 것은 병역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체복무제란 이름 하에 사실은 위험스런 자기희생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는 의도를 숨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구심을 갖게 한다.
더욱이 올 10월부터는 복무기간의 단축으로 병역자원이 부족해 현행의 대체복무요원을 감축하여야 하는 실정이다. 이럴 때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병역대체복무마저 인정한다면 군은 어떻게 유지하자는 것인가. 그렇지 않아도 원정출산이나 이중국적 등 갖은 방법을 동원해 병역의무를 피해가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눈에 보이지 않아 측정할 수도,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도 없는 추상적인 개념인 양심, 그래서 무수한 사이비 양심을 양산해낼 수 있는 개인적 신념을 절체절명의 위기상황마저 불러올 수도 있는 안보문제에 적용하라고 하니 참으로 답답하고 우려스러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한편 오씨는 대체복무를 인정한 대만과 독일의 예를 들었는데 그들과 우리는 처해있는 형편이 다르다. 당시 서독은 동독에 비해 군사력에서 훨씬 우위에 있어 비교적 여유있는 상황이었으며, 한편으로는 주변국가에 대하여 침략을 자행해 온 역사현실을 반성한다는 차원에서 인정한 것이다. 또 대만은 군사력으로 중국에 대항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차라리 외교력과 경제력에 치중할 수밖에 없게 된 특수한 경우다.
최근 대만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대체복무를 인정한 이후 돈 있고 힘있는 사람들이 군대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는 등 이 제도에 대한 부작용이 벌써부터 발생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이를 인정한다면 또다시 국민간의 위화감을 조성, 국력을 소모하게 될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끝으로 "총과 군사훈련 없이 인류평화와 복지증진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은 일견 훌륭해 보이는 듯 하지만 역사현실에 터 잡지 못한 뜬구름 잡는 이상일 뿐이다. 자유와 평화가 자유와 평화만으로 지켜진 예는 역사상 없다. 만약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이 모두 오씨와 같은 이상을 좇아 집총을 거부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양심이라는 말은 썼지만 과연 그의 의도가 진정 선한 것인지 우리는 확인할 길이 없고 다만, 그의 글을 읽으며 요점을 비켜가는 어설픈 이론으로 주장한 자기 신념이라는 것이 다른 사람의 목숨을 담보로 지켜지는 평화에 무임승차하겠다는 안일주의 양심, 보신주의 양심이 아닌지 생각해볼 따름이다.
비록 자신의 이상과 맞지 않는 제도라 하더라도 그것이 내가 발 딛고 사는 이 나라의 숙명적인 현실이고 다수의 생각이라면 이에 수긍하고 자신을 맞추어나가는 것이 순리이다. 이것이야말로 몇몇 끼리끼리가 아닌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좋은 벗'으로 가져야할 당당하고도 당연한 자세라고 본다.
/김향구 기자 (kjhhg102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