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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오늘] 6월 3일

 



[국내] 학생시위 격화…계엄령 선포


5·16군사혁명 후 2년7개월 만에 권좌에 오른 박정희 대통령이 첫 대규모 난관에 봉착했다. 한·일 간 국교수립을 서둘렀던 것이 화근이었다. 구악 근절을 내세우면서 신악을 양산한 것도 반발을 부채질했다. 야당을 중심으로 ‘범국민투쟁위원회’가 결성되고 전국의 대학생들이 매국적인 한·일회담 반대를 외치면서 정국은 혼미 속으로 빠져들었다. 1964년 3월 24일, 서울대 문리대생 500여명이 거리로 진출한 것을 신호탄으로 각 대학 학생들도 거리로 뛰쳐나왔다. 이때부터 6월 3일까지 대학가와 거리는 최루탄 연기와 곤봉, 널브러진 돌덩이들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정부는 유화적인 태도로 사태확산을 막아보려 했지만 학생들이 단식농성 등 강도를 점차 높여나가자 강경책으로 선회했다. 6월 3일 시위가 절정을 이룬 이날, 국회의사당에서 청와대에 이르는 길은 수만명의 학생들과 경찰들로 뒤덮였다. 사태가 4·19를 방불케 하자 정부도 분주하게 움직였다. 오후 9시40분, 마침내 오후 8시를 기점으로 한 계엄령이 서울시 전역에 선포됐다. 계엄은 55일 뒤에 해제됐지만 1120명이 검거되고 348명이 구속됐다. 이때 반정부 시위를 주도했던 세대를 학생운동사에선 ‘6·3세대’라고 부른다.


[세계] 인도·파키스탄 분리 독립안 발표


1947년 6월 3일, 영국의 루이스 마운트배튼 인도 총독이 영국령 인도를 힌두교 지역과 무슬림 지역으로 나눠 각각 제헌의회를 세운다는 분리독립안을 발표했다. 힌두교의 국민회의파를 중심으로 순조롭게 진행되던 독립일정이 차질을 빚은 것은 무슬림연맹이 분리독립을 요구하면서였다. 영국은 내전과 분단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고, 국민회의파도 종교갈등과 이로 인한 살육행위를 마냥 모른 체할 수만은 없었다. 간디는 “인도를 생체해부하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대했다. 8월 15일, 마침내 인도와 파키스탄 2개 국가가 분리독립됐지만 이 과정에서 또 대규모 학살이 자행됐다. 힌두교도와 시크교도가 파키스탄으로부터, 이슬람교도가 인도로부터 쫓겨나면서 1400만명의 난민이 발생하고 100만명이 살해된 것이다. 분리 후에도 양국은 경계지역인 카슈미르를 둘러싸고 지금까지 3차례나 전쟁을 치렀지만 긴장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조선일보 김정형 기자 jhkim @chosun.com


좋은친구♬~
2003-06-03 16:17:25
549 번 읽음
  총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1. 치세 '03.6.3 6:26 PM 신고
    :-D*아, 63사태 이야기로군요. 저 어릴 때 국민학교 선생님이 그 때 "참전"한 이야기 해주셨대요. ↓댓글에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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