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여성 편력' 카사노바 사망
“나는 여자들을 미치도록 사랑했다. 그러나 자유를 더 사랑했다”던 베니스 출신의 카사노바가 1798년 6월 4일, 체코 프라하의 둑스성(城)에서 73세로 숨졌다. 죽기 전 자신의 인생을 파노라마처럼 펼친 자서전 ‘내 인생의 이야기’를 탈고, 자신의 존재를 후세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알렸다. 자서전은 노골적인 사랑 묘사로 그의 생존시 출간되지 못했다. 카사노바는 사람들이 알고 있듯 많은 여성의 체취를 탐닉한 감각파였고 낭만파였지만 그가 추구했던 지향점은 여성이 아니었다. 그의 삶을 관통하는 것은 자유였고, 그의 촉수는 언제나 상류사회를 향해 있었던 현실파였다. 18세에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던 뛰어난 두뇌, 40여권의 저서를 저술한 박식함, 신학·자연과학·예능 등 다방면에 걸친 재능은 그를 어느 한 곳에 묶어두질 않았다. 한 여성의 남자가 되기를 거부했고 유럽 전역을 떠돌아 다녔다. 프리드리히 대왕, 예카테리나 여제 등 당대의 실력자를 만나서는 자신의 재능을 과시했고, 계몽사상가 볼테르를 만나서는 그의 사상을 반박했다. 넘치는 재능과 해박한 지식은 신분상승을 위해 상류사회를 기웃거릴 때도 활용됐지만 여성들을 탐할 때도 동원됐다. 2m나 되는 큰 키와 남자다운 풍채를 겸비한 그에게 여성들도 유혹의 눈길을 보냈다. 그의 여성관은 자서전 서문에 드러나 있다. “나는 느낀다. 고로 존재한다.”
[국내] 항일유격대 보천보 급습
1937년 6월 4일, 만주 일대에서 활동하던 중국 공산당 소속의 항일유격대 동북항일연군 제1군 6사 병력 100여명이 압록강을 건너 함남 갑산군 내 보천보를 급습했다. 보천보는 일본인 50여명과 조선인 1300여명이 거주하고 있는 작은 시골도시. 일본 경찰 주재소와 면사무소 등을 파괴하고 관청을 불태운 뒤 밤늦게 떠난 유격대의 뒤를 인근에 있는 일본 경찰이 추격에 나섰지만 7명의 전사자와 14명의 부상자만 내고 말았다. 이상이 북한이 그들의 영도자 김일성이 주도했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하는 ‘보천보 전투’다. 이 전투는 당시 국내신문이 호외를 발행할 정도로 크게 보도됐지만 김일성이 보천보 전투를 실제로 지휘했는지, 북한의 김일성이 보천보 전투에서 활약한 김일성과 동일 인물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학계 의견이 일치되지 않고 있다.
[그 밖에 무슨일이…]
▲1966:장면, 제2공화국 총리 사망
▲1946:아르헨티나 페론 대통령 취임
▲1886:한·불 수호통상조약 체결
조선일보 김정형 기자 jhkim @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