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장갑차 여중생 살인사건 범국민대책위'가지난 1월 네티즌 4천233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63%는 '우리의 요구가 실현 안되면 반미는 당연하다'고 답했다. 조건없이 '반미는 당연하다'는 응답도 20%에달했다.
이보다 앞선 작년말 한국갤럽의 조사에서도 53%가 미국에 대해 '반감이 있다'고답했고, 이들 가운데 45%는 주한미군 철수에 찬성했다. 미군 철수에 대한 비율은 10년 전에 비해 10% 포인트 늘어난 것이다.
이 조사결과가 확인시켜 주는 것은 '대세적 반미'의 양상이다. 여중생 살인사건에 이어 미국의 이라크침공 사태를 겪은 한국민들의 뇌리에는, '친미는 수구, 반미는 진보'라는 도식이 자연스레 박혔고, 실제 대통령선거를 비롯한 정치.사회적 사건들에 직간접적인 울림을 던져 주었다.
세대와 계층에 따라 미국을 인식하는 감정의 높낮이는 있을지 모르나, 광화문촛불시위에 쏟아져나온 중장년층의 물결을 떠올려보는 것 만으로도 이제까지 한번도표출되지 않았던 '보편적 반미'가 한국민의 새 이데올로기가 터잡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반면 여중생 살인을 규탄하는 촛불시위가 그 자체로 반미라는 테제의 산물이라고 보기는 힘들다는 견해 역시 만만치 않다. 그보다는 어린 딸들의 죽음을 수수방관할 수 밖에 없는 친구와 부모들의 자존적 몸부림이라고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하다는분석이 설득력을 갖는 것이다.
비평가 김동식씨는 '잡다'(雜多)라는 평문집에서 "6월의 월드컵 세대가 반미 세대로 나타났다는 일부 언론의 평가는 대체로 정확한 지적이나 제가 광화문에서 보고느낀 것은 반미라는 말로는 포괄할 수 없는 다양한 측면들이었다"고 토로했다.
김씨의 시각은 촛불시위와 그 이후 반미의 이름으로 벌어진 여러 양상들이 단순한 반미라기 보다는 그간 '맹방.우방'이라는 미명 아래 묵인돼온 '맹미'(盲美)에 대한 현세대의 성찰적 반성과 정부의 무능을 질타하는 자존적 행위로 매김시키는 것이옳다는 입장들이다.
그러나 미국을 상대로 자존을 지키려는 움직임이, 필연처럼 반미로 나아가게 된것은 분명한 현실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여론조사의 결과를 거론 않더라도, 이라크전과 더불어 북한을 깡패국으로 못박고 '전쟁'을 들먹이며 협박하는 미국의 태도에 적지않은 한국민들은 넌덜머리를 냈다.
특히 '미국은 혈맹' 고로 '반미는 빨갱이'로 인식되던 세대적 멍에에서조차 자유로운 네티즌으로 대표되는 젊은세대는, 한반도가 처한 국제정치 역학 등 정치적고려를 고민하기 보다는 '주한미군 철수' 등 정서에 호소하는 슬로건에 편승함로써 이른바 반미 정서의 맨앞에 섰다.
이러한 맥락에서 반미 정서의 개념은 '성격이나 담지자(현주소와 세대갈등)'라는 양측면에서 분명히 규정짓기 힘든 공간에 존재해 있다. 다만 그 정서와 이것이낳은 일정 부분의 갈등양상을 어떻게 발전적으로 승화시켜 가는가가 보다 중요한 문제이며, 현실적인 문제라는 입장에 무게를 실어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친미와 반미, 월드컵세대와 친미세대 등의 양자택일적 사고에 매몰되는 차원을극복하고 보다 냉철한 입장에서 정치.문화적 힘의 흐름을 인식, '자존'의 정서를 '현실의 자식'으로 승화시키자는 것이 그러한 주장들이다.
미국사에 정통한 권용립 교수(경성대 정치외교학과)는 "한국 정치사에서 진정한'친미'는 존재한 적이 없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한국 현대사에서 '친미'는 선택이아닌 생존의 문제였고, '반미'는 군부 아래서 '반정권'의 다른 이름일 뿐이었다"며이 두가지 이데올로기를 넘어서는 지점을 가리켰다.
거듭 그는 "친미가 외교적 선택의 산물이 아니었듯 반미 또한 과거의 일방적 한미관계에서 비롯된 정신적 굴종의 관행을 거부하고 우리 내면과 과거를 반성하고 꾸짖는 정치적 슬로건이었을 뿐"이라며 "친미에 대한 저항은 '지나치게 대미 의존적이고 굴족적인 우리의 과거에 대한 감정적 저항"이라고 그 성격을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