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아름답다는 건 美의 관점이라기 보다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에서와 같은 류의 표현이라는 걸 말씀드립니다. 물론 오스칼은 美의 관점에서도 충분히 아름답지만요.
제가 본 많지 않은 만화 중에서 가장 멋진 여주인공을 꼽으라면 단연 베르사이유의 장미에 나오는 오스칼 프랑소와 드 자르제이죠. 오스칼이 실존인물은 아닙니다만, 이 만화에 나오는 상당수의 인물이 실존인물이죠.
TV애니로만 보았고, 그 나마도 토막 토막 보아서 확실치는 않을 겁니다.
대귀족가의 외동 딸로 태어난 오스칼은 아버지의 고집에 따라 남자처럼 키워지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유모의 손자인 앙드레와 친해지게 되죠. 10대 후반의 나이로 오스칼은 뛰어난 검술 실력을 인정받아 근위대장으로 지목되고, 이 자리를 받지 않으려 하지만 아버지의 고집과 심경 변화로 인해 근위대장 자리를 얻게 됩니다. 그 와중에 근위대장이 되려는 한 귀족 남자와 결투를 하게 되는데 오스칼이 쉽게 이겨버리죠.
오스칼은 한 사람의 귀족으로서 노블리스 오블리주(주1, noblesse oblige, 사회 고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를 충실히 이행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당시의 많은 귀족들은 평민들에게 마구 대하고 있었지만, 한 불행한 평민의 딸을 자기 집에서 키운다거나 고관대작의 음모를 파헤친다거나 약이 없어 신음하는 평범한 평민의 아이를 위해 단신으로 마을을 향해 말을 달린다거나 하는 등으로 사회 지도층으로서의 의무를 다합니다.
십수년 동안 근위대장으로 성실하게 임무를 수행한 오스칼은 평민들로 구성된 대대의 대장을 맡게 됩니다. 자신을 여자라고 무시하는 평민 출신 병사들을 실력으로 제압한 뒤 오스칼은 이들과 협력해나가게 되죠. 프랑스 대혁명이 터졌을 때 오스칼은 평민의 편에 서서 바스티유 감옥(주2)을 대포로 공격합니다. 당시 오스칼은 폐결핵을 앓고 있었고 눈도 거의 안 보이는 상태였죠. 절친한 친구이자 오스칼이 결혼 상대로 생각하고 있던 앙드레를 프랑스 혁명이라는 혼란기의 와중에 잃은 상태에서 오스칼은 그렇게 자신의 군대를 지휘했죠.
하지만 전장에서 군대를 지휘하는 지휘관은 좋은 표적이죠. 애니에선 총에, 원작 만화에선 대포에 맞아 오스칼은 죽게 됩니다. 이때 오스칼 나이가 아마 30대 후반일 거예요.
베르사이유의 장미는 개인적으로 명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체적인 역사를 보는 시각도 균형 잡혀 있고 인물들도 제법 생동감 있게 잘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애니는 당시 기술의 한계도 있고, 자급 압박도 받았는지 어색한 장면이 많지만 그만하면 괜찮은 편이구요.
ps.평생 딱 한 번 오스칼이 드레스를 입고 무도회에 나간 적이 있죠. 허구헌날 군복만 입고 나가다가 딱 한 번 드레스를 입고 나가는데 아무도 알아 보지 못 하더군요. 가면도 안 썼는데 알아 보지 못 했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억지....
주1.프랑스 발음상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아니라 노블리스 오블리주가 맞다는군요. 관용적으로 노블리스 오블리제라 쓰이지만, 앞으로 외국어 발음 규칙이 개정되면 또 모른다네요.
주2.왕정 프랑스의 대표적인 정치범 수용소였죠. 당시엔 달랑 4명 밖에 투옥되어 있지 않았고, 그나마 몽땅 귀족이었는데다 정치범은 있지도 않았다죠. 그러나 당시 바스티유 감옥은 감옥이라기 보다는 파리 시내에 있는 하나의 요새로서 기능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곳을 시민군이 대대적으로 공격한 것은 상징의 의미 뿐아니라 전략적 의미에서도 올바른 결정이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