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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오늘] 6월13일

 


[세계] 美 ‘미란다 원칙’ 고지 의무화 판결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으며….” 1966년 6월13일, 범인체포시 ‘미란다 원칙’ 고지가 의무화되도록 한 판결이 처음 내려졌다. 경찰로부터 묵비권과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권리를 사전에 듣지 못한 피의자에게 미 연방 대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미란다는 1963년 3월,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시의 한 극장 앞에서 10대 소녀를 납치ㆍ강간한 혐의로 재판에 회부된 23세의 멕시코계 청년 어네스토 미란다의 이름이다. 미국인들에게는 ‘미란다 대 애리조나’로 더 잘 알려져있다. 경찰조사에서 자신의 범행사실을 자백하고 진술조서에까지 서명을 마친 미란다가 돌연 재판과정에서 강요된 자백이라며 진술을 번복함으로써 재판이 잠시 차질을 빚긴했으나 법원은 미란다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고 최고 30년의 중형을 내렸다. 주 대법원에서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미란다의 무죄를 주장하는 ‘미국 자유시민 연맹’이 연방 대법원으로까지 사건을 끌고가자 연방대법원은 5대4로 원심을 뒤집고 미란다의 손을 들어줬다. 판결 후, 인권에 대한 획기적인 판결이라는 평가도 있었지만 비난의 목소리도 적지않았다. 공교롭게도 판결이후 강력범죄가 급증했다. 미란다는 그뒤 동거여인의 증언 등으로 다시 유죄가 확정돼 옥살이를 하다가 1972년 가석방됐으나 1976년 술집에서 싸움 끝에 죽었다.

[국내] 양화진에 외국인 묘지 허가

조선조 말, 외국인이 숨지면 주로 제물포항 언덕에 묻혔다. 정부가 성내 매장을 엄격히 금지했기 때문이다. 1890년 헤론이 전염성 이질에 걸려 숨진 것을 계기로 외국인들은 한강변에 가까운 양화진을 공동묘지로 불하해 줄 것을 정부에 요청했다. 헤론은 1885년 의료선교사로 파견돼 불철주야 한국인을 위해 의료사업을 펼쳐온 사람이었다. 6월13일(음), 정부가 묘지설립을 허가하고 헤론이 이 곳에 처음 묻히면서 이후 양화진은 베델, 언더우드, 아펜젤러, 헐버트 등 면면이 한국인을 위해 헌신했던 사람들의 안식처가 됐다. 묘비도 감동적인 문구로 가득해 베델의 묘비에는 “내가 한국을 위해 싸우는 건 소명”, 헐버트의 묘에는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히기 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한다”고 적혀있다. 현재 4000여평의 공간에 500여명이 묻혀있다.

/ 조선일보 김정형 기자 jhkim@chosun.com

[그 밖에 무슨일이…]

▲1991:옐친, 러시아공화국 초대 대통령에 당선

▲1956:영국군, 74년 만에 수에즈운하서 철수

▲323(BC):알렉산더 대왕 사망


좋은친구♬~
2003-06-13 03: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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