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새없이 행인의 시선을 잡아끄는 호객꾼의 박수소리, 발 디딜 틈 없는 시장 골목 그리고 수세미에서 전자제품까지 ‘없는 것 빼고 다 있는’수입품 가게들. 남대문시장을 아직 이 정도로 연 상한다면 이미 ‘쉰세대’에 속한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남대문 시장은 ‘디지털카메라의 메카’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의 대표적인 재래시장인 남대문시장의 변신은 알고 보면 놀 랄 일만은 아니다. 종로4가와 함께 남대문시장 주변은 오래전부 터 카메라전문시장으로 유명했다. 여기에다 오랫동안 다양한 수 입제품을 취급해온 상인들의 노하우가 더해진 결과다. 남대문시 장 입구에 있는 숭례문수입상가와 남문상가가 디지털카메라의 중 심상권. 최근에는 굿앤굿(옛 새로나 백화점) 쇼핑몰 1층을 중심으로 속속 매장들이 들어서고 있다. 지난 11일 오후 숭례문수입상가.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였지만 좁다란 지하상가 안은 디지털카메라를 사러 나온 젊은이들로 가 득 찼다. 발걸음을 내딛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이 곳에 자리잡 고 있는 디지털카메라 매장은 50여개. CD플레이어나 MD플레이어 같은 전자제품을 함께 취급하는 매장까지 합치면 그 수는 훨씬 더 ?뭅? 디지털카메라 전문매장인 주원의 전창권 사장은 “우리는 요즘 젊은이들을 MD(미니디스크)세대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휴대용 카세트플레이어나 CD플레이어보다 디지털음향기기인 MD, MP3플레 이어로 음악을 듣고 자란 세대들이 필름카메라보다 디지털카메라 에 더욱 친근감을 느낀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숭례문 상가에서 ‘디카’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디카’와 ‘필카(필름 카메라)’의 판매량 비율이 8대 2가량 된다. 요즘 가장 많이 팔 리는 ‘디카’는 300만화소급 고체촬상소자(CCD)를 장착한 제품 으로 가격은 40만원 내외. 10대, 20대가 주고객층이다 보니 비싼 고급제품보다는 휴대하기 간편한 보급형 제품이 인기다. 최근에 는 ‘디카’마니아층이 형성되면서 100만원이 넘는 고급형 제품의 수요도 꾸준히 늘고 있다는 게 이곳 상인들의 얘기다. 용산이나 테크노마트같은 전자제품 전문상가를 제치고 이 곳이 ‘디카의 메카’가 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우선 국내 전자 상가들의 도매상 역할을 하다보니 가격이 저렴하고 제품군도 다 양하다. 외국 카메라업체의 국내법인이 내놓는 정품뿐만 아니라 별도로 수입된 외국 내수용 제품에 눈길을 돌려봄직하다. 한글지 원이 안되고 애프터 서비스(AS)가 불편하다는 단점을 감수한다면 최고 10% 정도는 싸게 살 수 있다. 게다가 ‘디카’붐이 일면서 디시인사이드(dcinside.com), 디매니아(dmania.intizen.com) 등 유명 ‘디카’사이트에 사용자들이 구입기를 올려놓기 때문에 바 가지를 씌우거나 폭리를 취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이곳에서 만난 대학생 심민정씨는 “디카에 대해 조금만 아는 친 구들이면 용산이나 테크노마트에는 가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심씨는 “남대문에 나오면 최신제품을 가장 먼저 구경할 수 있는 데다 바가지 상혼에 휘둘릴 염려도 없다”고 말했다.
최근 남대문 ‘디카’시장의 확장세는 폭발적이다. 몇 년전까지 만해도 MD나 MP3플레이어같은 소형가전을 취급하던 상점들이 ‘ 디카’붐에 힘입어 전문매장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최근에는 남 대문시장 외곽의 전통적인 카메라전문매장과 굿앤굿쇼핑몰 1층으 로까지 세를 불렸다. 굿앤굿쇼핑몰은 떠오르는 신흥 상가지역. 주로 카메라업체들의 직영대리점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곳이다. 20년째 남대문에서 카메라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는 효성사 정용환 사장은 “불과 1년만에 디지털카메라 매출비중이 엄청나게 늘었 다”고 말했다. 매장 진열대 위에는 작고 날렵한 ‘디카’들이 묵직해보이는 전문가용 카메라들을 제치고 가운뎃자리를 차지하 고 있었다.
매장에서 만난 대학생 정성희씨는 “우리 세대들에게 디카는 장 난감과 같다”고 말했다. e메일과 인터넷을 통해 끊임없이 자기 복제를 하는 디지털문화의 최첨단 ‘디카’와 재래시장의 대명사 남대문시장의 만남은 어찌보면 어울리지 않는 것도 같다. 하지 만 15세기 왕실의 임대전(賃貸廛)으로 시작된 이래 유행과 경기 변화에 따라 한 가지 업종에 연연하지 않고 변신해 왔던 남대문시장 의 역사와 일맥상통한다. 이동현기자 offramp@munhwa.co.kr
[문화일보 2003-06-13 10:1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