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10대 소년이 살인죄로 천안교도소에서 2년10개월째 옥살이를 하고 있다. 그는 무죄를 주장했지만 10년형을 선고받아 앞으로 7년여를 감옥에 더 있어야 한다. 그런데 다른 사건에 관련된 사람이 “이 사건은 내가 진짜 범인이다”라는 자백을 했다. 경찰은 이 사건을 처음부터 다시 수사할 수밖에 없게 됐다. 누가 진범인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무죄를 주장하는 16세 소년이 살인범으로 유죄판결을 받기까지 수사 및 재판 과정을 살펴보면 곳곳에서 석연치 않은 점들이 발견된다.
◇사건발생과 경찰수사=2000년 8월10일 새벽 2시쯤 전북 익산시 부송동에서 택시기사 유모씨(당시 42세)가 온몸이 예리한 흉기에 찔린 채 발견됐다. 대학병원에 옮겨진 그는 이날 새벽 3시20분쯤 저혈량성 쇼크로 사망했다.
경찰은 사건발생 사흘 만인 13일 당시 16세 최모군(현재 19세)을 범인으로 검거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최군은 사건 현장 부근에서 범인으로 보이는 사람 2명이 도주하는 것을 본 목격자였다. 초등학교만 나온 최군은 음식점 배달일을 하며 홀어머니 김모씨(44)와 함께 살고 있었다. 최군의 어머니는 아들을 도울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문제는 경찰수사 과정에서 강압수사가 있었다는 주장이다. 최군은 최근 한 지역신문과의 옥중 인터뷰에서 “형사들이 나를 익산경찰서 지하실에 있는 숙직실 끝방으로 데려가 뒤로 수갑을 채운 채 경찰봉과 걸레자루로 구타했다”며 “죄가 없는데 이래도 되느냐고 항의했지만 믿어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최군의 어머니 김씨도 최근 “긴급체포 당시 내가 형사계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이에 구타소리가 들렸고 조사 후 밖으로 끌려나온 아들은 옷이 풀어헤쳐진 데다 얼굴이 벌겋게 부어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주장했다. 하지만 경찰은 “최군이 자백을 한 마당에 강압수사를 하는 경찰이 어디 있겠느냐”며 구타의혹을 일축하고 있다.
◇결정적 증거의 진실=최군은 당초 경찰에서 인정했던 범행사실을 재판과정에서 부인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심변론을 맡았던 ㅂ변호사(당시 공익법무관)는 “최군은 범행을 부인하면서도 진술을 번복하는 등 일관성이 없어 재판부를 혼란스럽게 했다”며 “그러나 증인으로 출석한 최군 친구들이 강압수사 의혹을 제기했다”고 기억했다.
최군의 유죄가 인정된 결정적 증거는 그가 미결수 상태인 2000년 9월20일 경찰에 보낸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반성한다’는 편지내용이다. 검찰과 재판부도 이 편지를 정황증거로 채택했다.
그러나 최군이 이 편지를 경찰에 보내기 전 어머니에게 다섯차례나 편지를 보낸 사실이 있다. 2000년 9월13일과 17, 18일 세번에 걸쳐 최군이 쓴 편지에는 ‘나는 죄가 없고 억울하다. 어머니만은 믿어달라’고 호소했다.
왜 최군은 범행을 부인하다가 나중에 이를 시인하는 편지를 담당 경찰에 보냈을까. 변호인은 고사하고 주변에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한 16세의 소년이 누구의 권유로 편지를 쓴 것은 아닐까.
◇진실을 규명못한 재판=이 사건 재판 내내 범행에 사용된 흉기 등 결정적 증거는 하나도 드러나지 않았다. 그가 1심 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증거는 ▲법정에서 한 일부 진술 ▲증인의 진술 ▲검사의 피의자 신문조서 중 진술내용이 전부였다.
당시 판결문을 보면 “수사기관에서 범행을 모두 자백하고도 이 법정에 이르러 범행을 부인하는 등…”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경찰의 가혹행위 의혹까지 있는 마당에 최군이 범인이 아니라면 재판에서 이를 부인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이를 유죄판결의 중요 이유로 삼은 것이다.
항소심도 마찬가지였다. 검찰, 법원, 심지어 관선 변호사도 이 사건의 명확한 진실을 규명하려는 의지는 별로 없었다. 최군은 2001년 2월9일과 4월4일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저를 이렇게 만든 사람들에게 반드시 복수하겠다, 이제 다 포기했다”고 울부짓고 있다.
항소심 변론을 맡았던 ㄱ변호사는 “당시 최군은 범행사실에 긍정도 부정도 안하는 자포자기 상태였다”면서 “최군이 범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심증은 있었지만 범행사실을 부인하지 않아 5년이 감형돼 유죄가 인정됐다”고 말했다. 당시 검찰과 재판부는 “최군의 진술이 오락가락 번복돼 거짓말을 잘하는 피의자라는 인식이 컸다”며 “옥중에서 보낸 참회의 글 등은 물증 없이도 살인죄를 적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밝혔다.
최군은 광주고등법원에서 10년을 선고받고 상고를 포기, 형이 확정됐다. 결국 이번 사건에서 살인의 증거는 ‘겁에 질린 16세 소년의 자백’밖에 없었다.
◇높아지는 재수사 촉구여론=전북 평화와인권연대는 지난 11일 성명을 내고 익산 택시기사 살해사건의 진범논란이 일고 있는 만큼 철저한 재수사를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진범이 누구냐와 함께 사건 실체를 규명하는 작업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같은 조직인 군산경찰이 수사를 하는 데 한계가 있는 만큼 상급 수사기관이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전북지부 박민수 변호사도 “최군이 불가항력적인 공권력에 의해 허위자백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만큼, 재수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요구했다. 안종택 군산지청장은 13일 “이번 사건은 자칫 사법제도 전반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용근기자 yk21@kyunghyang.com〉
최종 편집: 2003년 06월 15일 18:3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