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오병상 런던특파원] 한국은 미국을 모른다. 영국 BBC 방송이 17일 밤(현지시간) 방영한 '세계는 미국을 어떻게 보나'의 요약이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한국인들의 응답에 너무 일관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세계 11개국 1만1천명에 대한 면접 조사로 만든 토론 프로그램이었다.
미국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 면에서 한국은 조사대상 국가 중 정확히 중간이었다.
미국에 대한 호감도 응답의 평균은 +18점. 한국은 +22점으로 미국(+88).캐나다(+65).영국(+57).이스라엘(+47).호주(+35)에 이은 6위. 부정적인 평가를 내린 국가는 요르단(-60) .브라질(-43) .인도네시아(-27). 프랑스(-10)순이며, 러시아(+21)는 한국과 가장 비슷했다. 부시 대통령에 대한 호감도 평가에서도 마찬가지다. 평균 -22이고 한국은 -20으로 정확히 중간에 서 있다.
각론에 들어가자 양상이 달라졌다. 지구 온난화 문제에서 미국의 정책을 평가하는 대목을 보면 한국은 독보적인 친미국가였다. 평균 -18인데, 한국은 +35점을 주었다. 미국인 스스로 +5점을 매긴 항목이다. 8개국이 마이너스 점수를 주었다. 온실가스 배출량 세계 1위인 미국은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한 협약인 교토의정서 비준을 일방적으로 외면해 세계적인 비난을 받고 있다. 마이너스 평가가 합당하다.
빈국 지원 문제에 대한 미국의 정책을 평가하는 항목에서도 한국은 압도적인 플러스 점수를 주었다. 평균은 -10인데 한국의 평점은 +76이다. 미국인 자신들의 평가는 +13점에 불과하다. 8개 국가는 모두 마이너스. 국제사회에서 미국은 자신의 부(富)에 비해 가난한 나라를 지원하는데 상대적으로 인색한 나라로 평가된다.
이상이 무지(無知)의 결과라면 이후 이라크전과 관련된 평가는 혼선이다. 먼저 미국의 반(反)테러 정책에 대한 평가에서 한국은 가장 친미적 성향을 보였다. 평균 +9인데, 한국은 +49로 미국(+61)에 이어 두번째로 긍정적이었다. 이어 '미군의 존재가 평화와 안정에 도움이 되느냐'는 질문에도 한국은 가장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평균 -16인데 한국은 +32.
그런데 바로 다음 항목(미군의 이라크 침공에 대한 평가)에서 한국민들의 71%가 부정적 평가를 했다. 각국의 부정적 평가 평균 56%보다 훨씬 높다. 미국의 반테러 정책과 미군의 존재에 대해서는 긍정하면서 이라크 침공엔 반대하는 셈이다. 이어 '후세인 몰락 이후 이라크인들의 삶이 나아질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그렇다'(58%)는 대답이 훨씬 많았다. 미군의 침공에 반대하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 이라크인들의 삶은 더 나아질 것이란 전망이다.
토론 말미에서 "한국인들의 답변은 앞뒤가 잘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 것은 당연했다. BBC는 우리나라가 국제질서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기에 조사대상국에 포함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BBC가 예상했던 만큼 미국을 잘 알지 못했다.
오병상 런던특파원 ob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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