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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막내린 조흥은행..직원들 "허탈"

 
[머니투데이]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인 조흥은행이 공적자금관리위원회의 매각 승인으로 창립 106년만에 간판을 내리게 됐다.
조흥은행의 브랜드는 신한금융지주와의 협상에 따라 앞으로 2년간은 유지되지만 매각이 결정된만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 것이다.

조흥은행 노조와 직원들은 매각 승인 결정에 큰 동요없이 철야농성을 계속하고 있지만 간판을 내리게 된 데 대해 크게 허탈해하는 분위기다.

1897년 창립된 조흥은행은 국내 은행권의 '맏형'격으로 외환위기 전까지만 해도 은행 순위를 매길 때면 '조(조흥은행)-상(상업)-제(제일)-한(한일)-서(서울)"로 매겨지는 서열에서 선두 주자였다.

한성은행이라는 이름으로 창립된 조흥은행은 '당나귀 대출'로 은행업의 터를 닦았다.

한성은행은 그러나 1920년대 초 전세계를 휩쓴 대공황의 여파로 경기가 악화됨에 따라 은행 경영에 큰 타격을 받았으며 이후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거쳐 은행체질을 개선했다. 1930년대부터는 경영이 서서히 회복됐으며, 1942년에는 연체 대출금 상각을 완료하면서 재도약의 기반을 다졌다.

일제는 만주.중국 침략이 본격화되자 전시 금융 체제 구축이라는 명목하에 금융기관 통폐합을 강행했고 그 결과 한성은행은 1938년 1월 해동은행의 업무를 인수받았으며, 1941년에는 경상합동은행을 흡수.합병했다. 1943년에는 한성은행과 동일은행이 통합되면서 일제의 금융기관 통폐합 정책은 절정에 달하게 되고 은행 이름을 오늘의 '조흥은행'으로 바꿨다.

해방 이후 조흥은행은 증시 상장(1956년), 민영화(1957년) 등을 거쳤고 1966년에는 총예금 160억원을 돌파, 국내 은행 가운데 수위의 자리를 차지했다. 이어 지난 77년부터 온라인 시스템을 가동했으며 82년에는 신용카드 업무를 개시했다.

그러나 조흥은행은 82년 이철희.장영자 부부 어음 편취 사건, 83년 영동개발진흥 부정 지급보증 사고 등으로 위기에 처하기도 했으며, 97년에는 한보사태, 기아그룹 부도 등의 잇따른 악재로 창립 100면만에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조흥은행은 97년12월 외환위기로 정부의 공적자금을 지원받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렀으며, 이후 금융감독위원회의 지휘아래 강도높은 은행 구조조정을 추진할 수 밖에 없었고 99년 3월 충북은행, 9월 현대강원은행과 다시 합병했다.

조흥은행은 2000년들어 흑자를 달성하면서 안정의 기미를 보이기도 했으나 대우사태와 현대 사태 등으로 추가 부실 우려가 제기되면서 또 다시 구조조정 대상 은행으로 거론되는 치욕을 맞았다.

결국 80%의 지분을 갖고 있는 정부는 공적자금 회수 차원에서 조흥은행을 매각하기로 결정했고, 공적자금관리위원회는 19일 우여곡절끝에 매각을 최종 승인했다.

한편 조흥은행 임직원들은 공자위의 결정에 따라 국내 최고(最古)의 은행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데 대해 허탈해하고 있다.

노조는 공자위 매각 승인 결정이 남에 따라 앞으로 파업 수위를 높여 매각 반대투쟁을 진행할 방침이다.

< 저작권자 ⓒ머니투데이(경제신문) >



머니투데이 채원배 기자


written by (guy2002)
2003-06-19 22:5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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