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선수로선 처음으로 K-리그 통산 100골을 달성하며 역대 외국인 선수 중 최고로 꼽히는 샤샤(31·성남).
한국에서 어떻게 지낼까. 그가 사는 곳은 경기 분당의 60평짜리 아파트.
로맨틱한 유고 음악이 잔잔히 흐르고 혼자 사는 남자의 체취가 물씬 풍겼지만 어느덧 한국생활 9년째의 편안한 숨결이 배어 있었다.
혼자 살기에는 다소 큰 집. 4개의 방에는 온통 옷밖에 없다. 감각이 뛰어나고 패션에 민감한 그는 매달 2,000달러가량을 옷사는 데 쓴단다. 신발만도 50켤레.
조금 특이하다면 방마다, 눈에 띄는 곳엔 어김없이 어머니 사진이 자리하고 있었다.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파는지, 어떤 가게의 커피가 맛있는지, 어떤 레스토랑의 스테이크가 먹을 만한지 훤히 알고 찾아갈 정도지만 처음 서울에 발을 내디딘 1994년 겨울만해도 한국이 무척 낯설었다.
“처음 2년반 동안은 음식·언어·문화차이 때문에 힘들었죠. 다 바꿔보려 했지만 먹는 것만 극복했어요. 한국어가 너무 어려워 아예 영어부터 배웠죠”. 한국에 와서 제일 먼저 접한 음식은 라면. 그가 ‘soup’이라 표현한 라면국물은 유고에선 찾아볼 수 없는 얼큰한 맛이었다. 이젠 너무도 친근해진 한국과 한국인. “유고가 태어난 고향이라면 한국은 젊음을 다 바친 내 나라죠. 이곳서 나의 커리어를 쌓았고 돈을 벌었고 새인생을 찾았어요”
샤샤는 경기가 없을 땐 고향출신 친구들과 압구정에서 쇼핑을 하거나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며 혀를 즐겁게 한다. 팝송보다는 컴퓨터로 다운로드받은 고향의 유행가를 즐겨 듣고 고향 친구들과 메일을 주고받으며 불쑥 찾아오는 외로움을 달랜다.
같은 언어를 쓰는 동료 사비와 있을 때면 ‘고독과 무료함’이 씻은 듯 사라진단다.
‘여친’을 묻자 “1,000명 정도는 될 것”이라며 능청스럽게 받아쳤다. “한국인 여자친구를 한명도 못사귀었다면 분명 바보일 것”이라며 “결혼 전까지 자유의 몸을 즐기고 싶다”고 프리스타일 연애관을 나타냈다.
한국생활에 불편함이 없는 샤샤가 귀화할 생각은 없는지 궁금했다. “아버지가 혼자 계세요. 결혼에 국적은 상관없지만 왔던 곳으로 돌아가야죠”
샤샤가 태어난 곳은 크로아티아. 그러나 92년 그의 가족은 모든 것을 잃고 세르비아로 피란을 갔다. 구유고에서 벌어진 종교분쟁 때문. 프로축구 선수였던 아버지는 집과 직업 등 모든 것을 잃었고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던 그도 돈을 벌기 위해 축구를 선택했다. 구유고에서 클럽 챔피언을 할 정도의 강팀이고 유럽에서도 이름을 날린 강호 ‘렛스타(letstar)’ 소속이던 그는 동료들이 스페인·프랑스 등 유럽행을 선택할 때 새로운 인생의 돌파구를 찾았다. “미지의 세계를 동경하던 차에 한국에서 러브콜을 받았죠. 전혀 몰랐기 때문에 더 오고 싶었어요”
3년전 어머니의 죽음.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때로 기억한다. 그때 인생은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허망한 것이라는 걸 깨달았단다. “나는 꿈을 꾸지 않아요. 이뤄지지 않는 게 꿈이죠. 내일이요? 앞서 생각하지 않아요”. 샤샤는 어제와 내일의 창을 닫아두고 오늘에만 충실한다. 내일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는 생각에.
인터뷰가 끝난 후 샤샤는 자신의 100골 성공 축하차 수원에서 찾아온 친구들을 위해 앞치마를 두르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고향요리를 선보이기로 했다며. 마지막으로 그는 “사랑을 노래한 내 나라 유행가다. 들어보라”며 CD 한장을 선물하고는 씽긋 웃었다.
〈심희정기자 heejung@kyunghyang.com〉
출처 :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