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이 휴전된 지 50년이 흘렀다. 그동안 남북 간 통일을 위해 많은 대화와 합의가 있었다. 그러나 한반도에는 아직도 전쟁 얘기가 예사로 나오고 있다. 특히, 부시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미국이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적대적 무관심 정책과 북한 고사 전략으로 나가자 북한은 다시 핵카드를 들고 나와 제2의 핵위기가 일어났다. 그 위기가 지금 한창 진행중이다.
한·미 정상회담과 한·일 정상회담을 통해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원칙에 정상들이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일본과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대북 봉쇄 수순을 본격적으로 밟고 있다. 이것은 한반도에 긴장을 고조시키는 수순이지 평화적 해결의 절차가 아니다. 평화적 해결을 위해서는 어떻게 대화의 틀을 만들고, 어떻게 당사국들을 대화의 틀 속으로 끌어들일지에 대해 진지한 외교적 노력이 있어야 한다.
50년전 한국전쟁의 최대 피해자는 한반도였다. 물론 도발을 한 북한정권에 가장 중요한 책임이 있다. 우리는 한국전쟁을 생각할 때 미국과 우방들의 도움을 떠올린다. 학문적 분석도 주로 국제사회가 한국전쟁에 끼친 영향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런데 그 반대, 즉 한국전쟁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질서 구축에 끼친 영향은 어땠을까라는 질문은 하지 않는다.
단적으로 말해서, ‘한국전쟁이 세계를 구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전쟁이 나기 전인 1940년대말 세계 질서는 한 마디로 위기였다. 제2차 대전에 의한 주요 선진국들의 인적·물적 피해는 실로 엄청났다. 패전국은 말할 것 없고 승전국들도 사정이 좋지 않았다. 자본가들은 물적 토대를 잃었고, 특히 패전국들은 정통성 위기에 시달려야 했다. 달러는 미국으로 거의 몰려 자유무역 체제에 심각한 위협 요인이었다. 미국이 생산한 엄청난 물자에 대한 구매력이 유럽에는 없었다. 대서양 삼각무역에 큰 위협이었다. 국가 간의 위계질서도 바로잡혀 있지 않았다. 이때 미국의 힘이 제일 강했지만 헤게모니를 장악하지는 못했다.
일본은 당시 미군 점령 아래서 지나친 안정화 정책을 취한 나머지 경기 침체를 겪었다. 노조와 좌파 정당의 활동으로 인해 정치 불안도 만만치 않았다. 미국도 1949년에 투자 감소, 생산 위축, 실업 증대, 수출 감소 등으로 경기후퇴를 겪고 있었다. 외교노선에서도 충돌이 일어나 국내 제도정치의 위기가 나타났다. 노조의 질풍노도와 같은 파업 물결이 사회를 뒤흔들었다. 중국에는 공산정부가 들어섰고, 소련에서는 1949년에 원자탄 개발로 미국을 놀라게 했다. 독일에서는 베를린봉쇄 사건이 발생했으며, 동유럽에선 의회민주주의 전통이 강했던 국가들이 공산화됐다.
이런 국면에서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바로 ‘한국전쟁 붐’이 일어났다. 한국전쟁을 계기로 미국 경제가 즉각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원자재 가격의 폭등으로 세계 경제도 상승 국면으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미국은 전후 세계 질서 구상인 유럽과 일본의 부흥계획도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군수물자 조달을 통해 유럽과 일본에 막대한 달러가 흘러 들어갔다. 특히 일본은 횡재를 했다. 그 결과 일본과 유럽은 다시 세계 경제의 공장 역할을 담당하게 됐다.
냉전 체제가 공고화됨에 따라 노조와 좌파 정당은 철저하게 와해되고, 자유주의 경제 체제가 구축됐다. 미국내 정치 위기도 타개됐다. 공산진영과 자유 진영의 구분도 명확해졌다. 한국전쟁을 통해 미국은 자신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를 만들 수 있었고, 이후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경제는 약 25년간 역사상 유례없는 황금기를 누리게 됐던 것이다.
이렇듯 한국전쟁은 1940년대말 당시 위기에 처한 세계를 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미국은 경제·정치적 위기를 타개했고, 일본은 횡재를 해 재건에 성공했다. 미국과 우방이 나서 우리를 구했지만, 그 반대로 한국전쟁이 미국과 일본을 구했다는 논리도 성립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한반도가 당면한 위기를 해소하는 데 미국과 일본이 적극 나서야 하며, 그것도 지금과 같은 부정적 방식이 아니라 긍정적이고 전향적인 입장을 취해야 한다는 논리도 성립된다. 한반도가 이렇게 된 데는 물론 당사자인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 그러나 한반도 역사는 주변 외세의 탓도 크다. 지금은 주변 외세가 한반도 평화를 위해 담당할 몫을 제대로 발휘해줘야 할 때다.
/ 이수훈 경남대 북한대학원 교수 ·국제정치경제학 /문화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