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아우토반 건설 公社 설립
히틀러는 정권을 장악하는 즉시 아우토반 건설에 박차를 가한다. 명칭은 ‘라이히스 아우토반(독일제국 자동차도로)’. 아우토반 건설을 담당할 공사(公社)를 설립(1933년 6월 24일)하고 3개월 뒤에는 프랑크푸르트~다름슈타트 간의 제1기 공사를 시작했다. 17년 동안 1만7000km의 도로를 까는 것이 목표였지만 2차대전 발발로 히틀러는 생전에 4000km만 볼 수 있었다. 이토록 짧은 시간에 공사가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1926년부터 ‘하프라바(HAFRABA)’라는 민간단체가 아우토반 건설을 추진해왔기 때문이다. ‘하프라바’는 고속도로 연결 예정지 함부르크·프랑크푸르트·바젤(스위스)의 머리글자에서 딴 명칭이다. 히틀러가 아우토반에 매달린 이유는 1차대전 때 마른 전투의 패인이 수송력 부족에 있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650만의 실업자를 구제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했다. 아우토반은 경부고속도로와도 인연이 깊다. 1964년 12월 박정희 대통령이 서독 방문길에 올라 본~쾰른 간 20km 구간을 시속 160km로 달려본 뒤 경부고속도로의 모델로 삼았기 때문이다.
[국내] 최초의 여류 비행사 박경원 출생
1901년 6월 24일에 태어난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 비행사 박경원(朴敬元)이 조종사로서 일본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27년 1월, 3등 조종사 시험에 합격하면서였다. 이 당시의 도쿄 아사히 신문은 ‘조선출신 여성비행사 1호 탄생’이란 기사를 실어 그의 존재를 알렸다. 고국의 하늘을 날고 싶었던 박경원에게 기회가 찾아온 것은 1933년. 서울을 경유해 중국 창춘(長春)까지 ‘일·만(日·滿)친선, 황군 위안’을 위한 장거리 비행이 허락된 것이다. 몰고갈 비행기가 없었던 그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사람은 고이즈미 현 총리의 조부인 고이즈미 마타지로 체신대신이었다. 이후 두 사람은 신사참배도 함께 하는 등 만남이 잦아져 둘 사이의 염문이 일본 신문 가십란에 실리기도 했다. 1933년 8월 7일 오전, 박경원이 장장 2000km의 비행을 위해 청연호(靑燕號)를 몰고 고국을 향해 하네다 공항을 이륙했다. 그러나 50분 만에 그의 애기(愛機)는 하코네 중턱에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청연호의 동체는 두동강났고 박경원은 핸들을 잡은 채 숨져 있었다.
/ 조선일보 김정형 기자 jhkim@chosun.com
[그밖에 무슨일이…]
▲1989:한국계 일본 가요여왕 미소라 히바리 사망
▲1976:구마고속도로 기공
▲1901:피카소 19세로 파리에서 첫 개인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