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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공권력 상징 '최루탄' 역사의 뒤안길로

 


(서울=연합뉴스) 이 율기자 = 과거 `공권력의 상징'으로 통했던 최루탄이 경찰의 `무최루탄 원칙'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처지에 놓였다.

27일 경찰과 관련업계에 따르면 한때 10개에 달했던 국내 최루탄 생산업체는 지난 99년이후 잇따른 부도로 뒤늦게 최루탄 생산시설을 인수한 고려화공 단 1곳 뿐이다.

군용 탄약류를 생산하는 이 업체도 매년 1∼2차례 수단과 예멘, 말레이시아 군.경으로부터의 주문에 대비, 반제품 생산을 겨우 이어갈 뿐이다.

1980년 이후 민주화 시위가 거세지면서 최루탄 산업은 호황을 맞아 삼영화학의 경우 연매출이 500억원대를 넘어서면서 한때 10여곳의 후발기업들이 우후죽순으로 등장할 정도였다.

그러나 1987년 연세대 이한열씨가 최루탄에 맞아 숨지면서 사양길로 접어들기 시작해 1998년부터 경찰의 `무최루탄 원칙'이 고수되면서 이듬해 대화화공의 최루탄 생산시설을 인수한 고려화공을 마지막으로 최루탄 생산업체들이 모두 부도를 내고 도산했다.

경찰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최루탄은 모두 60여만발.

이는 최루탄 사용 전성기였던 1980년대 연 평균 사용량의 3배에 달하는 엄청난 물량으로 경찰은 최루탄 구입비를 아예 예산 항목에서조차 삭제했다.

국내 수요가 전무한 상황에서 고려화공은 한 해 1∼2차례의 수출에 대비하며 한 때 선진 생산기술로 명성을 날렸던 국내 최루탄 산업의 마지막 흔적을 이어가고 있다.

이 회사 박대호 총무과장은 "최근 2년여간은 수출용 물량주문조차 들어오지 않아 다연발 최루탄과 발사기가 재고로 쌓여있다"며 "생산을 중단하기 보다는 수출을 계속하는게 이윤이 커 시설을 유지하고 있는 형편"이라고 밝혔다.

1987년의 67만3천588발을 정점으로 각종 시위진압에 무차별적으로 사용되온 최루탄은 폐렴과 폐질환, 호흡기, 심장, 간장 등에 지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유해물질로 비인간적이고 의학적으로 용납될 수 없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국내에 최루탄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60년 `3.15 부정선거 규탄시위'.

마산 앞바다에서 최루탄이 눈에 박힌 채 떠올랐던 김주열열사의 주검으로 촉발됐던 4.19혁명과 이한열열사가 도화선이 됐던 1987년 `6월항쟁'까지 한국현대사와 궤를 함께해 온 최루탄이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고 있다.

yulsid@yna.co.kr
(끝)

출처 : 연합뉴스


브레인공작
2003-06-27 16: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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