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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비인기·무관심 딛고 세계무대 ‘우뚝’ 여자축구대표팀

 


요즈음 여자축구대표팀 선수들은 신이 난다. 물론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13년간 태극마크를 달아 한국여자 축구를 대변하 고 있는 ‘맏 언니’이명화(30)를 비롯한 몇몇 선수와 안종관(39 ·INI스틸·사진) 감독은 밀려드는 인터뷰 요청에 바쁘다.
이명화는 1990년 새롭게 선보인 한국 여자축구의 역사나 다름없 다. 정부는 90년 베이징(北京)아시안게임에 여자축구가 정식종목으로 채택되고, 남북통일축구가 성사되자 부랴부랴 대한축구협회에 여자축구대표팀 구성을 지시했다.

당시 대구 경북체고 2년생으로 펜싱부원이었던 이명화는 여자축 구팀 창단과 여자대표팀 구성 소식을 듣고 무작정 축구팀이 막 생긴 강릉 강일여고를 찾아갔다.

어릴 적부터 오빠들과 공차기를 즐겼던 그는 축구부에 들어간 지 1주일만에 국가대표로 선발됐고, 아시안게임에서 뛰었다. 육상, 필드하키, 핸드볼 선수들로 급조된 국가대표팀에서 이명화는 그 래도 볼을 찰 줄 아는 유일한 선수였다. 당시 대표선수 가운데 뜨는 프리킥을 할 줄 아는 선수가 이명화뿐이었다.

이명화는 “주로 패스만으로 경기가 이뤄질 정도였다. 발로는 전 술 훈련이 안돼 손으로 볼을 던져가면서 했다. 당시 초등학교 남 자 선수들과 경기를 하면 우리가 힘으로 밀어붙여 어거지로 이겼 고 질 때도 많았다”고 회고하며 “지금은 중학교 선수들을 이길 정도로 수준이 향상됐다”고 말한다.

2002월드컵 유치와 개최로 축구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은 높아갔 지만 한국 여자축구는 철저히 소외됐다. 하지만 ‘그들만의 리그 ’를 치르면서 빠른 속도로 기량이 늘어갔다.

그러나 여건과 저변은 출범 당시보다 나아지지 않았다. 실업팀이 INI스틸과 대교캥거루스 2개뿐이어서 독자적인 경기를 치를 수 없을 정도다. 전국대회가 있을 때마다 8개 대학팀과 함께 묶어 대학·일반부로 치르고 있는것이 한국 여자 축구의 현주소.

중국 일본보다 10여년 늦게 본격적으로 출범한 한국여자축구는 9 1년 일본에서 열린 제8회 아시아선수권대회에 처음 출전한 것을 시작으로 꾸준히 월드컵 본선 진출을 시도했으나 그때마다 일본 과 중국, 북한의 높은 벽에 막혀 고배를 마셨다.

4번(12년)의 도전 끝에 월드컵 본선 진출의 꿈을 이룬 한국 여자 축구는 이제 이전보다는 훨씬 나은 환경에서 세계무대로 나가 그 동안 갈고 닦은 기량과 가능성을 펼쳐보이는 한편 국내에서의 안 정적인 재생산 구조 확보라는 두가지 과제와 씨름해야 하는 상황 을 맞았다. 박광재기자 kj59@munhwa.co.kr

출처 : 문화일보


브레인공작
2003-06-28 20:3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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