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술 서
성명: 이**
주소: 현거주지 - 충북 청원군 강내면 다락리 산7번지 교원대학교 기숙사
현주소(주민등록지)-
연락처: 01*-****-****
주민번호: 7*****-*******
1. 3월 3일 2시경(교수연구실)
-교수와의 첫 대면에서 처음 보는 대학원생들에게 바로 나이와 성별에 상관없이 너, 하며 반말을 썼다. 그리고는 각각에게 결혼 여부를 묻고 미혼 학생들에게는 애인이 있는지 물었다. 그 자리에서 김** 학생에게 너는 결혼했고 애도 있고 남편이 서울에 있으니 공부 다 글렀네 라는 등의 비인격적 말을 했고, 김** 학생에게도 안성에서 통학하며 다니면 공부하기 틀렸다고 했다. 나에게도 주말에 애보러 가려면 공부 못한다고 비꼬아서 교수의 성격이 남다르다고 느꼈다. 그리고 *** 학생에게도 결혼해서 임신하면 공부 못한다고 이야기하며 이 중에서 공부 제대로 할 사람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학생에게도 애인이 군대 가 있어서 면회 다니고 하다가 공부하기 글렀다고 하며 학생들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자세를 보였다.
2. 3월 20일 목 (봉명동 청명일식. 14-16시)
"나는 김**교수(교육사회학과 전공교수)같이 짬뽕 같은 거는 안 먹어. 그런 거는 너거 끼리나 먹어." 처음으로 교수와의 첫 식사 약속을 하고 이교수의 연구실로 학년대표인 내가 모시러 갔을 때 이교수는 나에게 "너거 돈 얼마 걷었어?" "이 십 만원 정도요." "쳇, **(L교수의 조교)야! (비웃으며) 얘 네들 이십만원 걷었단다. 내가 너거 수준 생각해서 만 원짜리 특선으로 했어."
내가 회비(식비)를 2만원씩 걷었다고 하자 콧방귀를 뀌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었다. 그리고 김**, ***, 김** 학생과 함께 교수 자신의 차로 식당까지 오는 내내 돈을 작게 걷어서 그 수준에 맞추어서 식당을 정해야겠다며 L교수는 불만을 토로했다. (나중에 박사과정 선생들에게 들은 이야기지만 교수의 식비 수준은 1인당 7만원정도의 선이며 남자들과 술 먹을 때는 더욱 많은 돈이 필요하므로 절대 밤에는 식사를 하지 말라고까지 이야기했다.)
또, 식사 도중 얘기를 하는 가운데 내가 축하하는 의미에서 결혼을 앞둔 ***이 집을 샀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이교수는 자신의 형수와 비교하며 처음에는 작은 집으로 시작하지만 1년 사이에 집 값이 5000만원 오르면 연봉 2000만원에 매달리지 않는다며 속물처럼 취급했다. 그렇게 되면 학교 다니는 거는 그냥 왔다갔다하게 된다고 장황하게 말을 했다. 이에 ***이 빚을 내서 10여 평의 작은집을 산 거라며 해명을 함에도 불구하고 말을 자르며 계속 힐책하였다.
또 그러고서는 "멍청한 녀ㄴ은 화장하기 전에 머리부터 빗는 녀ㄴ이야. 또 멍청한 녀ㄴ은 자기가 만든 메인 디쉬를 가장자리에 두는 녀ㄴ이야." 또 "멍청한 녀ㄴ은 약속 시간에 못 맞춰서 한 시간 일찍 가거나 늦게 가는 녀ㄴ이야." "멍청한 녀ㄴ은 다른 야채부터 안 쓸고 뻘건 김치 쓸어서 또 씻고 또 씻는 녀ㄴ이야." 등의 입에 담긴 어려운 여성 비하 발언으로 인하여 학생들에게 민망함과 수치심을 느끼게 했다.
강의 중에도 자주 표현을 하긴 하지만 기독교와 기독교 신자에 대한 비난을 서슴치 않았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현실적인 문제가 발생하면 자기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무조건 신만 믿는다고 비판하며 광분한 기독교 목사의 흉내를 냉소적으로 내며 기독교 신자들의 맹목성과 비이성적 판단을 맹 비난하였다.(L교수의 기독교 비하발언으로 2명의 파견교사가 참지 못하고 교원대 파견 근무를 포기한 사례가 있다는 말을 들었음)
사실 그때까지 2학년들과 1학년들의 공식 만남이 한 번도 없어 교수는 그 날 강의 중에 2학년과 1학년들에게 강한 불만을 나타내며 다음주부터는 1,2학년 공이 타 과와 동일하게 월요일 아침 9시부터 토요일 오전까지 무조건 모여 과 강의실에 모두 출근하라고 했다. 특히 파견교사들은 원래부터 공무원이니깐 자신이 통제하겠다고 했으며 만일 과 조교를 통해 출근해 있지 않은 교사(학생)가 있으면 시도 교육청에 공문을 보내 각자 학교로 쫓아 보내겠다고 협박하였다. 그 당시의 마음은 정말 답답하였다. 학교 교장보다 더욱 권위적이고 치사하게 협박하는 말을 듣고 교수에게 많이 실망하였다. 오후 5시가 되어 점심 식사가 끝이 났고 5시 이후에는 우리과 2학년들과 짧은 만남이 있었다. 2학년과 만나면서 L교수의 행동에 대해 물어봤고 그들은 절대 L교수와 회식을 하지 말고 개인적으로 만나지도 말며 항상 일정한 거리를 두고 친하게 지내지 말 것을 얘기했다. 또한 교수를 찾아 갈 때도 2인 이상으로, 과 단체로 가는 것이 가장 좋다고 얘기했다. 그 때는 솔직히 그 말의 진정한 의미를 알지 못했고 2학년들의 생각이 틀렸다고 생각했다.
3. 3월 31일 - 서적 강매(교수연구실, 강의실)
3월 25일 화요일 1학년들이 L교수 연구실을 방문했을 때 ***이 L교수에게 좋은 책 좀 소개 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이 때 이 교수는 아무 책이나 읽으라고 비꼬아 말했다. 그러나 그 다음날 3월 26일 수요일 수업 도중에 책을 주문해 놓았으니 다음주 월요일까지 각자 10만원씩 가지고 오라고 일방적으로 얘기했다. 1학년들은 부당한 처사에 불만이 있었지만 평소 교수의 위압적인 분위기와 우리를 위한 판단일까 싶어 일단 책을 구입하기로 결정하였다. 하지만 우리에게 단 한 명의 의견이나 말을 듣지도 않고 자기가 미리 알아서 책값을 가져오란 일방적인 말은 아무리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심하다 싶었다.(더 심한 것은 문제가 적지 않아 타 과 대학원 학생에게 물었더니 그들 중에는 15만원씩 강매한 과도 있다는 말을 들었음) 그리고 3월 31일에 과대인 나는 70만원의 돈을 모아 교수연구실에서 책 업자로부터 여러 권의 책을 구입하였다.
4. 3월 27일- 3월 28일(하동 청아당에서의 1차회식)
이교수는 나에게 이번 주에 김해(내가 사는 거주지)에 내려 가냐고 물었고 내려간다고 하니깐 같이 가자고 했으며 자신을 하동 악양의 청아당(자신의 별장)으로 데려다 주기를 원했다. 방향이 다소 다르긴 하지만 교수의 부탁이라 쉽게 거절하지 못하고 청아당으로 갔다. 청아당으로 가기 전 무주중학교 교사(김**, 교육대학원 학생)와 만나 하동 갈사의 횟집에서 식사(회)를 하고 횟집주인(나의 누나)가 주는 조개를 싸들고 김** 교사와 함께 동석하여 청아당에 도착하였다. 저녁이 되어 내가 김해로 가려고 하자 이교수는 처음에는 녹차 한잔만 하고 가라고 했지만 시간이 점점 흘러가자 심한 욕설과 함께 비인간적인 언행으로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이교수는 내가 한약을 먹는 사실을 알고는 한약 먹는 것에 대해 많은 질책을 했다. 매주 청주와 김해를 오가기 때문에 나의 아내는 한약을 해 주었는데 교수는 내가 SEX에 미쳐 한약을 먹는다고 생각했고 나처럼 얼빠지고 생각이 없는 사람은 인간이하의 존재라고 비하했다. 황당하고 그 사실을 부인하고 싶었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새벽 1시가 되자 교수의 행동은 광인에 가까웠으며 급기야 나의 아내에 대해서도 욕을 하기 시작했다. “니 마누라는 SEX만 좋아하지, 아마 니가 김해에 내려오면 그 짓만 하려고 덤벼들 거야, 그러니깐 김해가면 SEX 할 생각만 하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 맨 날 니 마누라 배 위에서 X 박을 생각만 하지말고 세끼야, 너는 젊었을 때 많이 여자들을 먹어 봤으니깐 이제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돼, 맨 날 니 마누라 배위에서 응응--할 생각말고 음악 듣고 책 읽어라, 니 마누라는 내가 관리해 줄 테니까!” 정말 수치스럽고 괴로워 교수를 죽이고 싶었다. 나를 욕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나의 아내를 그렇게 치부하고 자기가 나의 아내를 관리한다는 말을 듣자 난 정말 분개하였다. 게다가 내가 자신의 별장에 아직까지 있는 이유를 알고 있다고 말하며 그것은 석사과정에서 공부도 열심히 하지 않고 교수에게 잘 보여서 편안하게 넘어갈 생각이며 박사과정의 진학을 위한 포석이하고 말했다. 나처럼 얄팍하고 속물적 인간이 제일 싫다며 절대 석사과정에서 그냥 놓아두지 않겠다고 나를 압박하였다. 그와의 인간적 만남 때문에 식사를 대접했던 내 자신이 부끄럽고 횟집 주인인 누나가 선사해준 조개들을 정리했던 나 자신이 비굴하고 바보라고 생각했다. 아침 6시가 되어 동석했던 김** 선생은 무주로 다시 출근했고 나는 교수가 깨어나기 전에 곧이어 그 집을 떠났다. 하지만 청주로 올라갈 때 다시 교수를 태워야 했기 때문에 그 주 일요일 오후에 교수를 만나 청주로 올라왔다. 내 아내는 아무런 미안한 마음 없이 나를 호출하여 태워달라는 그의 태도를 보고 한심해 했으며 심한 분노를 느꼈다.
청주에 올라와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이교수의 조교에게 이 사실을 모두 말하자 자신도 똑같이 여러 선배들과 여러 번 당했으며 석박사 과정 대부분의 남자 선생님들은 이 사실을 알고 분개하고 있지만 자신의 처지와 입장 때문에 참고 산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이러한 현실 앞에서 좌절했고 이교수의 인간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이교수의 복잡한 사생활에 대해 많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박사과정을 지내면서 지켜본 이교수의 행위는 나 자신을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여러 여자들과 SEX 스캔들에 관련되어 있으며 이교수의 부인이 여러 관련 여자들과 머리채를 잡고 싸우는 모습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도 여자들로부터 매일같이 전화가 온다는 사실도 알려주었다. 그리고 전국 어디를 가던지 자신의 지인(석박사 과정)을 이용하여 자신의 돈은 하나도 쓰지 않고 빈대만 친다는 기가 막힌 사실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 사실이 모두 확인되지 않은 소문일 수도 있기 때문에 나는 우리 과의 어느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말하지 않고 학교 생활을 계속하였다. 그리고 내가 그때까지는 교수에 대한 일말의 기대가 있었기 때문에 모든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다.
5. 4월 2일 (수업시간)
목련꽃을 보고 여학생들이 예쁘다고 말하자 "나는 갈보가 생각나""가장 지저분한 꽃이야"라고 말했다. 오늘 하동(교수 별장이 있음)으로 내려가는데 같이 갈 사람 있나? 하고 물었다. 사실 미리 학생들끼리 하동으로 엠티를 가려했기 때문에 교수를 속이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지난주의 악몽이 되살아나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교수가 엘리어트의 시를 논하며 여학생들의 정서를 자극하였고 교수의 전모를 알지 못하는 여학생들은 그간의 교수와 어정쩡한 관계가 불편해 청아당으로 같이 가자고 했다. 많이 망설였지만 설마 하는 마음으로 교수에게 같이 가자고 제의했고 교수는 흔쾌히 승낙하였다. 사실 나는 교수가 다음날 12시까지 다시 청주로 올라온다는 사실을 알아서 무슨 일이 설마 있겠나 싶었다. 결과적으로 이는 내 인생의 최악의 결정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14시 30분쯤 나와 ***의 차로 교수와 함께 하동으로 출발하였다.
6. 4월 3일 18시 30분 (하동 화개 식당)
식사 초반부에는 좋은 분위기에서 회식이 진행되었지만 시간이 흘러가자 다시 비인격적인 언행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너희들 여관 값이 아까워 나랑 같이 왔지? 이 속물들아, 어떻게 그렇게 선생님 아니랄까봐 쪼잔하고 쫀쫀하냐? 그러니까 사람들이 선생들을 제일 싫어하지, 너희들은 인간도 아니야, 인간들이어야 말을 하지, 능력도 없고 아는 것도 없는 것들이 잘난척하고 돌아다닌단 말야. 너희 선배들도 다 그렇게 생활하고 나를 거쳐갔어. 교대생 85%는 쓰레기야. 15%만 쓸 놈이야."라며 교대생 비하 발언을 했다. 이 때 이건만 교수의 지인(김**씨)이 나와 동석하였는데, 그에게 우리를 인사시키며 "이것들, 인간 아니니까 인사하지 마라!"며 인격을 모독하기도 했다. 그의 위압적인 분위기 앞에서 어디까지 참아야 하는지, 그리고 참지 말아야 하는지 경계가 막연했다.
7. 4월 3일 21시 묵집(간이 음식점)
학부 때 수강 경험이 있는 이** 학생(이건만 교수는 학부생 중에 이건만파가 있을 정도로 체게바라나 호치민을 팔며 자신의 이미지를 관리해 왔다)이 강의 중에 진보적인 사상을 많이 소개해서 여느 학생처럼 학부 때부터 존경하고 좋아했다. 술이 좀 취하자 "너, 나 좋아한다고 들은 것 같은데 날 여보 라고 불러 봐"하며 손을 이** 학생의 허리를 감쌌다.
그리고 그 곳의 여러 지인들에게 여기에 선생들이 있는데 인간 같은 것들은 하나도 없다며 학생들을 비하하였다.
8. 4월 4일 23시~00시(노래방)
23시경에 노래방에서 세 곡의 노래를 일방적으로 부른 후 자신의 별장(청아당)으로 가자고 했다. 한 학생(이**)이 술을 먹고 힘들어하여 근처 민박에서 여학생들은 숙소를 잡았고 나는 교수를 내 차에 태워 별장으로 향했다.(화개→악양,차로 약 30분 정도의 거리) 차 속에서의 교수의 발언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야, 이** 니가 나를 태워준다고 내가 고마워할 것 같냐? 더러운 자식아, 난 네가 처음부터 싫었어. 너 나한테 잘 보이고 싶지? 그렇다고 내가 잘 봐줄까? X발놈아, 너는 교원대에 있을 자격이 없는 놈이야? 이 더러운 새끼야. 빨리 내려줘! 니가 나한테 식사대접(횟집 식사)을 했지? 내가 그 것을 고마워 할 것 같나? 니 누나 집에서 회를 먹긴 했지만 왜 먹었는지 알아? 진짜 니 누나 집이 횟집을 하나 확인하러 간 거야, 이 더러운 놈아, 그만큼 넌 치사한 놈이야. 그리고 내게 조개(우럭)을 선사했지. 더럽다, 개자식아 필요 없어, 당장 내려 줘!”
30분 후 악양 마을(청아당)에 도착하였다. 1주 전 한번 교수의 별장에 찾아가 보긴 했지만 비가 내리고 시간도 01시경이 되어 교수의 별장을 찾을 수 가 없었다. 교수에게 정중히 집을 못 찾겠다고 말했지만 그의 욕설은 더욱 심해졌다. “그래 X자식아, 교수 집도 기억하지 못하면서 니가 무슨 내 제자냐? 내 제자 맞냐? 니 마음대로 운전해 봐, 끝까지 기다려 볼 거야. 니 마음대로 해봐 멍청한 새끼!” 비는 계속 내렸고 동네 여러 사람에게 교수의 집을 물어 봤지만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차를 세워 동네 사람들에게 길을 묻고 있는 순간 교수는 차에서 내려 갑자기 내 오른쪽 뺨을 내려쳤다. 귀가 멍했으며 동네 사람들이 볼까봐 정말 수치스러웠다. 하지만 차마 교수에게 같이 응수할 수는 없었다. 동네를 30분 정도 헤매고 난 후 급기야 교수는 자신의 집을 가르쳐 주었다. 난 방금 내가 찾았던 집을 자신의 집이 아니라고 거짓말을 한 데서 날 갖고 놀았구나 하고 생각했다. 차에서 내린 후 내가 같이 자려고 하자 그는 갑자기 나의 배를 가격했다. 미리 긴장하고 있어서 충격은 심하지 않았지만 정말 황당하고 수치스러웠다. 교수는 “이 X발놈아 당장 꺼져, 보기 싫어 더러운 인간아” 교수는 열쇠로 문을 열지 못하고 담을 넘어서 그의 별장으로 들어갔다. 황당하고 수치스러운 나는 교수의 집 앞에서 30분 정도 마음을 진정시키고 기다리다가 여학생들의 숙소로 출발했고 그 시간은 대략 02시 경이였다. 그 때 여학생들은 많은 심경의 변화를 가지고 있었고 김**에게 내가 석박사 선배들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다. 이제는 내가 비밀로 알고 있어서는 안될 사실임을 알았고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을 말했다.(참 황당한 일이지만 지금 김**란 사람은 교수를 비호하고 있으며 우리들에게 자중하란 입장을 취하고 있음) 여학생들은 이 사실에 분개하였고 앞으로의 대학원 생활을 걱정하다 새벽 3시경 취침하였다.
새벽 5시가 되자 이** 학생이 나를 깨웠다. 교수의 전화라고 했다. 교수는 대단히 흥분한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니들 지금 어디 있어? 지금 뭐해? 어디야? 왜 내 혼자 있는거야? 지금 당장 모두 달려오지 않으면 끝장이라고 빨리 전해. 여선생들 화장하지 말고 30분 내로 달려와.” 이 말을 듣고 참 황당했다. 내 혼자 가야할까? 아니면 그냥 무시하고 잠을 잘까? 한참을 고민하다 교수가 술에서 깨어났고 우리에게 미안해서 그렇게 행동했다 판단하고 청아당으로 가기로 모두들 합의했다. 5시 50분 경에 악양 청아당 입구에서 출발했는지 확인하는 전화가 다시 왔고, 나는 가고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6시 경 청아당에 도착하자 교수는 그러면 그렇지 하는 얼굴을 하며 방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그 때부터 술자리는 시작되었고 그 이후 과정은 다음과 같다.(미리 밝혀 두지만 본인은 건강상 술을 많이 마시지 못하며 그 전날 화개식당에서 18시 30분경 소주 한잔만을 마셨음을 미리 밝히고 그 이후로는 한 방울의 술도 먹지 않았다.) 모두들 방안에서 둥그렇게 모여 앉아 있었고, 교수는 양주를 꺼내더니 컵에 따르고, 모두에게 한잔씩 주었고, 그 후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틀었다. 분위기가 어색한 상황에서 나는 웃으면서 “교수님, 어제 왜 저를 때렸습니까? 저는 교수님과 이야기하려고 밖에서 30분을 기다렸는데 교수님은 문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하자, 교수는 대충 얼버무려 기억하지 못하는 체 하였다. 시간이 지나자 학생 중 서 너 명이 조니까, “너희는 잠을 7, 8시간을 꼭 자야하나? 짐승같이. 잠이 그렇게 중요하냐? 너희는 다 인간도 아니다.”라고 하면서 “나는, 초등학교 선생님 중 85%는 다 썩었다고 생각해. 병신같이 능력도 안 되는 놈들이 괜히 욕심만 많아. 자존심은 우리 나라 사람들 중 최고일걸? 초등학교 교사가 무슨 전문직이냐? 이런 음악도 들을 줄 알아야지. 너희는 지금 내가 틀어주는 음악도 못 느끼고 있잖아? 다 썩었어. 이**, 너는 교대 출신이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다. 임용고시는 왜 보냐? 진짜 인간 이하라니까. 인간 이하면 뭐냐? 짐승이야 짐승.” 하였다.
잠시 후 “***, 나는 너를 보면 진짜 징그럽다.”하고 *** 학생을 노려보았다. 이에 *** 학생이 “교수님은 우리를 정말 속물로 보시는 것 같아요.” 하자, “너는 나한테 찍혔다. 쓰레기니까. 나는 네 나이 때 월세 살았어. 그런데 집이 있다고? 집 팔고, 월세 살아라.”라고 하였다. 이에 *** 학생은 눈물을 터뜨렸다. 그러자 교수가 *** 학생을 달래려고 했던지 ***에게 바짝 다가와 울고 있는 그녀의 턱을 손으로 치켜 올리더니 “앞에서 안으면 이상하니까 뒤에서 안아달라.”고 하면서 그녀의 두 손을 힘으로 압도하여 뒤로 돌아 자기의 허리를 돌려 껴안게 하였고 그녀는 얼굴을 찌푸리며 손을 뿌리쳤다.
이에 김** 학생이 “**이가 3월에 교수님 말씀 듣고, 얼마나 속상해 했는 줄 아세요? 다 나름대로 개인적인 사정이 있는 건데 교수님이 단정짓고 이야기 하니까 많이 상처를 받은 것 같아요.”하자 교수는 “뭐? 그래서?”하더니 이제부터는 김**학생을 집중적으로 공격하였다. 그러더니 “내가 너희들에게 잘해주니까 그것을 잘 모르는 것 같아. 앞으로는 다른 학과처럼 9시까지 연구실로 출근해서 다섯시 되면 퇴근하게 할거야. 내가 너희 학교로 말하면 교장이야. 수업도 월요일 30분, 토요일에 30분 그런 식으로 교묘하게 할거야. 다른 과는 교수가 언제든 전화하면 10분 내로 집합할 수 있게 해. 기숙사에도 못 있게 하고, 다 학교 앞에서 자취하라고 해. 알겠어? 김** 너, 앞으로는 수업 시간마다 영어 해석하고 매주 마다 발표시키며 갋아 주겠어. 그러면 네가 견딜 수 있겠어? 그리고는 내가 교육청에 너 학교로 복귀시키라고 사유서 써서 보낼 거야. 학위는 받을 수 있을 줄 알아? 이번 2학년들 학위 한 사람도 안줄거다. 너, 나한테 그렇게 이야기했는데 연구 점수? 연구 점수와 학위는 없을 줄 알아.”하면서 소리를 버럭 질렀습니다. “또, 나한테 이야기할 사람 말해봐.”하였는데, 어떤 말도 통하지 않는 상태였고, 위압적인 말과 화를 냈기 때문에 우리는 황당한 나머지 기가 질려버렸다.
잠시 후 여자들 앞에만 차례대로 앉더니 손을 내놓으라고 하면서 자신의 두 손으로 학생들의 손을 마치 애무하듯 주물렀다. 그리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혼자서 중얼거렸다. 곧 *** 학생의 차례가 다가왔는데 그녀는 그 때 손을 일부러 뒤로하고 앉았는데 뒤로 와서 손을 잡더니 오른손을 비비고 주물렀다. 이에 화가 난 김영희 학생이 얼굴을 찌푸리고 있자, “김**, 이 씨X년 나는 네가 제일 기분 나빠. 근데 이중에서 제일 싫은 사람이 누군 줄 알아? 바로 ***이야.”라고 말했다.
너무 잠이 왔던 모양인지 이** 학생이 고개를 숙이고 있자 “너는 교수가 이야기 하는 데 그렇게 졸고 있냐? 너는 너희 부모한테서 그렇게 배웠냐?”면서 핀잔을 주었다. 이에 *** 선생은 “**이가 어제 술을 과하게 마셔서 몸이 별로 좋지 않은가 봅니다.” 하자, “뭐이, 씨X년아? 너는 교수가 이야기하는데 감히 토를 달아?”라고 하였다. 황당하여 우리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 후, “너희들이 인간이 아니라서 그런지 음악도 느낄 줄 모르고 정신적 수준이 너무 낮다.”하면서 애인이 있는 이**에게 “너는 애인 만나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뽀뽀하고 SEX부터 할 생각하지?”하면서 “고추와 X, 자X의 차이가 뭔지 알아? 하하하. 네 애인한테 한번 물어봐라. 네 애인은 X도 방위니까 알고는 있겠지? 군대를 가려면 제대로 가야지 상근이 뭐냐? 진짜 X도 방위다.”하면서 인격적으로 무시하고, 성적인 농담을 하였다. 그리고는 “대한민국 여자들은 몸을 주면 꼭 같이 살자고 하더라. 내가 제일 듣기 싫은 말이 있어. 같이 자자, 같이 살자는 말. 그래서 내가 여자들 이름을 안 외워.”라고 하였다.
곧 시간이 흘러 12시쯤 되자 나는 아침도 거른 우리의 입장을 교수에게 말했다. 특히 교수는 내일이 한식이라 성묘를 가야 한다며 그 날 12시까지 청주로 가야했고 우리는 그를 청주까지 데려다 주기로 약속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의 아내로부터 두 번의 전화가 왔었다. 상황을 봐서 빠져나가려고 모두가 급하게 현관문을 나서는데 교수가 갑자기 “모두들 어디 가는 거야? 다시 들어와.”하면서 각자의 이름을 불러댔다. 하는 수 없이 방으로 들어가자, “나는 너희들에게 정말 실망했다. 밥 먹는 것이 그렇게 중요해서 나를 버리고 도망가는 거야? 이 짐승들아. 정 가고 싶으면 **이 너만 혼자 남아.”하였기 때문에 가지도 못하고, 그 후로 우리는 아무 말도 못하고 불편한 자리에서 오후 1시가 될 때까지 교수의 말을 일방적으로 듣고만 있어야 했다. 곧 교수가 곧 잠을 잘 것 같은 분위기가 되어 우리는 거의 도망가다시피 오후 1시쯤이 되어서야 집을 빠져 나왔다.
사실 더욱 빨리 교수로부터 도망갔다면 이렇게는 되지 않았겠지만 교수를 당일 12시까지 태워달라는 부탁 때문에 시간은 계속 지나 13시가 된 것이다. 도주란 말이 우습긴 하지만 그 당시는 절박했다. 13시 30분에 화개의 숙소에 도착하여 짐을 챙기고 모두를 자리들 떠났다. 난 개인적으로 처음에는 교수에게 너무하지 않았나 싶어서 다시 김해에서 하동으로 태우러 가려고 했지만 너무 굴욕적이라고 느껴 그렇게 하지 않았다.
9. 교수와의 1차 통화(4월 5일)
교수는 다음날 나에게 전화를 했다. 어떻게 된 일이며 김○○ 학생이 한 말이 모두 사실인지 물었다.(김○○ 학생에게 미리 통화한 상태였음) 모두 사실이라고 말하자 교수는 김** 학생의 남편을 아는지 물었다. 대충 그의 신분을 말하자 갑자기 그의 부인이 나에게 구체적인 사실들을 모두 말해 달라했다. 나의 억울함을 말하자 부인은 역으로 자신의 남편을 질책하며 나를 강하게 동조하였다. 그 후 그들은 나와 만나기를 원했고 만나서 진주에 있는 김** 학생과 학생남편을 같이 만나자고 했다. 나는 그들의 부탁을 거절했고 개인적으로 만나기 싫다고 분명히 말했다.
10. 교수와의 2차 통화(4월 6일)
교수는 인터넷에 올라 있는 내용을 알고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그는 앞으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정식으로 사과할테니 김** 학생 남편과의 화해를 신청했다. 나는 교수의 뜻을 받아 들여 그에게 전화했고 그의 답변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 통화 사실을 교수에게 전달하자 교수는 도리어 나를 협박하기 시작했다.“김** 신랑이 그렇게 무서운 사람이냐? 지가 뭔데 나의 학문적 업적을 욕해? 지 운동 많이 했다지? 교장도 3명이나 짤랐다며? 국립대 교수가 그렇게 쉽게 짤릴 것 같애? 나도 운동 많이 한 사람이고 너희들보다 아는 사람도 많아, 법정까지 가고 문제를 지금처럼 계속 확대시키면 너희들 앞으로 어떻게 학교생활 하려고 그래? 나 절대 안 짤린다. 아마 학교에서 징계 받고 교수는 계속 할거야, 그냥 내가 술 마시고 실수한 일을 가지고 왜 이렇게 과격하게 나가냐? 한번 맞짱을 뜨자는 모양인데, 좋아 한판 붙자, 지금부터는 전쟁하는 거야. 알았어 너희들 입장 알았으니깐 한판 거하게 붙자. 나도 전교조에 아는 사람 많고 각종 단체에서 일하는 사람 많아”
11. 교수 부인과의 3차 통화(4월 9일)
교수 부인은 나에게 통화하여 교수가 어디론가 사라졌으며 아마 죽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래서 교수가 건강한지 다시 묻자 지금 절에 있으며 연락은 잘 되지 않는다고 했다. 교수 부인은 계속 나와 만나기를 원했고 나는 거부하였다. 처음 통화 목소리와는 판이하게 부인의 목소리는 도도할 정도로 단호하고 안정되어 있었다. 개인적으로 계속 만날 것을 청하여 만나자는 이유를 묻자 사람이 얼굴을 보고 이야기하지 전화 상으로 많은 이야기를 어떻게 하냐며 계속 만나기를 원했다. 나는 그녀의 부탁을 거절했고 마지막 통화가 되었다.
12. 나의 입장
이교수의 부탁처럼 우리는 학내에서 비대위측과 학교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이교수와 만남을 가졌고 그 자리에서 교수는 전혀 반성하고 있지 않으며 대충 사과 한 후 이 사건을 마무리하고 싶어했다. 학생을 가르치는 교육자가 그렇게 행동하고도 교수직을 지키고 싶냐고 묻자 집에 있는 자식과 자신을 알고 있는 사람 때문에 한 번 용서해 달라고 비굴하게 부탁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교수의 행동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만일 여교사들이 내 아내였다면 참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당한 폭행이나 내 아내에 대한 인격파괴적 모독을 이제는 도저히 참을 수 없다. 정말 나도 미쳤다. 어찌 그 때 그자의 입을 박살내 놓지 못했는지... 아직까지 한국 사회는 술 먹고 실수하는 사람에게 관대하다. 단 한 번의 사건마저도 그는 교수로서의 자질이 결여되었음을 확증시켰고, 수년 전부터 여러 차례 유사한 일들이 있고서는 무마하고 넘어간 것을 확인하고 나자, 상습범임을 확인했다. 따라서 본인은 이처럼 부당한 교수의 처사에 항거하고 법적, 사회적, 제도적, 도덕적 처벌이 이뤄질 수 있도록 끝까지 싸워나가겠다. 문제의 가장 온건한 해결은 바로 이교수의 자진 사퇴뿐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2003년 4월 10일
작성자 이 * *
인간이 아닌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