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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샤머니즘적인 여호와

 


샤머니즘적인 여호와

종교의 발달 과정을 보면 수렵생활 당시 생존의 기원에서 비롯된 애니미즘과 농경 생활 당시 자연 현상에 대한 경외심에서 비롯된 토테미즘과 샤머니즘이 대표적인 종교의 시원이라는 것은 익히 잘 알려진 내용들이다.
기독교의 여호와도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또한 자명하다.

기독교의 시원이 되는 야훼의 경우 시나이 반도에 있는 야훼라는 산 이름에서 기원한듯하며(창세기에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원시 기독교의 형태를 보면 샤머니즘의 전형적인 양상을 더욱 더 잘 이해할 수가 있다.

구약시대의 히브리인들은 어떤 형태이든 생물의 피와 고기를 드림으로써 자신의 죄가 사해진다고 생각했다.
구약에서, 특히 레위기1장, 출애굽기 29장등에서 보면 여호와는 끊임없이 흠 없고 온전한 재물을 제물로 드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

동물들을 잡아서 가죽을 벗겨서 각을 뜨고, 콩팥과 내장을 분류해내는 것과 회막에 피를 뿌리는 행위도 기가 막히지만, 짐승을 태운 냄새가 여호와에게 향기로운 냄새라는 대목에서는 아연실색케 한다.

"그 내장과 정갱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단 위에 불살라 번제를 삼을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레위기1장 9절]

"또 그 날개 자리에서 그 몸을 찢되 아주 찢지 말고 제사장이 그것을 단 윗 불 위의 나무 위에 살라 번제를 삼을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레위기 1장 17절]

"그 수양의 전부를 단 위에 불사르라 이는 여호와께 드리는 번제요 이는 향기로운 냄새니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니라"[출애굽기 29장 18절]

이 얼마나 고대적인 발상의 낡은 신이란 말인가?
무슨 사랑의 하나님이 끊임 없이 희생제물로 가축의 피를 요구하고, 짐승을 태운 냄새 따위에 향기로움을 느낀단 말인가?
피를 흘리고 희생제물을 바쳐야 신이 죄를 용서해 준다는 생각이 얼마나 유치한 샤머니즘 시대의 발상인가.

게다가 솔로몬은 여호와에게 14일 동안 제사를 지내면서 제물로 바친가축의 수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솔로몬이 화목제의 희생을 드렸으니 곧 여호와께 드린 소가 이만 이천이요 양이 십 이만이라 이와 같이 왕과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전의 낙성식을 행하였는데" [열왕기 상 8장 63절]

14만 2천 마리의 가축을 제사에 사용했다니, 이쯤되면 나라살림이 거덜날 정도가 아닐까?(참고삼아 이계식님의 설명을 빌리면 조선 말기 임오군란으로 일본 공사관이 불타자 조선은 일본에다 배상금을 물어야 했는데, 그 액수가 당시 소 600마리 분이었다고 한다. 이 돈이 없어서 조정은 마침내 일본에서 차관을 얻어다가 그 빚을 갚는 어이없는 일을 저질렀었다. 이스라엘에서 아무리 목축업이 발전했어도 지나친 과대표현이 아닌가?)

신들의 분노를 달래기 위해 짐승들을 태우는 것은 고대의 야만적인 믿음으로 거의 세계 어디서나 행해졌다.

또, 성경에는 동물공양뿐만 아니라 인신공양도 등장한다.
창세기에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제물로 삼으려 하는 구절에 대해서 목사들은 여호와가 아브라함의 아들을 죽일 마음이 없었고 단순히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한다.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등 예언서에 이방인들이 인간을 그모스나 바알 등 이방신에게 제물로 바쳤고 여호와가 그것에 진노하는 것을 근거로 내세우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방신에게 제물을 바쳤기 때문이지, 인신공양 때문에 진노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여호와에게 자신의 딸을 제물로 바친 사람도 등장하기 때문이다.

사사기 11장에서 입다는 전쟁터로 가기에 앞서 암몬족을 자신의 손에 붙여 주면 승리하고 돌아올 때 제 집 문에서 자신을 맞으러 처음 나오는 사람을 여호와에게 번제로 바쳐 올리겠다는 맹세를 한다.

"그가 여호와께 서원하여 가로되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붙이시면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 [사사기 11장 30~31절]

암몬족에게 승리한 입다는 돌아오는 길에 소고를 들고 춤을 추며 집에서 마중을 나온 자신의 외동딸을 만났다.
그녀를 보자, 입다는 절망감에 옷을 찢으며 딸에게 여호와와 한 맹세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호와에게 한 맹세는 반드시 지켜져야만 하는 것이기에 그녀는 처녀로 죽는 것을 애통해 하는것의 2달의 말미를 준후, 입다는 딸을 여호와께 번제로 바친다.

"딸이 그에게 이르되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여셨으니 아버지 입에서 낸 말씀대로 내게 행하소서 이는 여호와께서 아버지를 위하여 아버지의 대적 암몬 자손에게 원수를 갚으셨음이니이다.아비에게 또 이르되 이 일만 내게 허락하사 나를 두 달만 용납하소서 내가 나의 동무들과 함께 산에 올라가서 나의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겠나이다.이르되 가라 하고 두 달 위한하고 보내니 그가 그 동무들과 함께 가서 산 위에서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고,두 달만에 그 아비에게로 돌아온지라 아비가 그 서원한 대로 딸에게 행하니 딸이 남자를 알지 못하고 죽으니라 이로부터 이스라엘 가운데 규례가 되어" [사사기 11장 36~39절]

자신의 딸을 제물로 바치다니,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그러나 목사들은 아브라함과 이삭의 관한 설교를 할때 여호와 이삭을 죽일 마음이 없었으며 여호와는 그렇게 잔인한 신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입다의 딸은 어째서 그렇게 죽어야 했는가?
목사들은 어째서 이 구절에 대해서 쉬쉬하는가?

그리고 이런 구절도 있다.

"너는 너의 추수한 것과 너의 짜낸 즙을 드리기에 더디게 말지며 너의 처음 난 아들들을 내게 줄지며" [출애굽기 22장 29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 중에 사람이나 짐승이나 무론하고 초태생은 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 이는 내 것이니라 하시니라." [출애굽기 13장 1~2절]

여기에 대해서 반론이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분명하게 말하자면 여호와에게 바친사람은 반드시 죽였다.

"오직 여호와께 아주 바친 그 물건은 사람이든지 생축이든지 기업의 밭이든지 팔지도 못하고 속하지도 못하나니 바친 것은 다 여호와께 지극히 거룩함이며, 아주 바친 그 사람은 다시 속하지 못하나니 반드시 죽일찌니라" [레위기 27장 28~29절]

다시말하자면 물건이든, 가축이던, 사람이던 일단 여호와에게 바치고 나면 팔지도 못하고 가축과 사람의 경우에는 반드시 죽여야 했다.
게다가 민수기 31장에서는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이스라엘군대가 포로와 노략질한 전리품을 가지고 예리고 근처 요르단강 가 모압 평야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 회중의 진지로 가져왔다고 하는데, 모세가 그들을 향해서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여자들을 다 살려두었느냐" [민수기 31장 15절]라고 꾸짖으며 처녀만 남기고 나머지는 전부 죽이라고 명령한다.
그리고 여호와에게 헌납된 사람은 서른 두 명이었다고 한다. [민수기 31장 40절]
여호와에게 바친 포로들은 사사기에 등장하는 입다의 딸처럼 제물로 삼아 살해한 것이 아닐까?
위에서 언급한 레위기에서는 여호와에게 아주바친 사람들은 반드시 죽여버려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문명학적으로 이러한 인신공양은 후대에 이르면 동물 희생 공양으로 바뀐다.
이것은 문명학적으로 볼 때 합당한 가설이다.
고대종교에서 인신공양은 강력한 왕조의 등장에 따라 동물공양으로 바뀌어진다.
주인이 죽으면 노예들도 함께 생매장 시키는 순장의 악습도, 후기로 가면서 토우를 매장하는 것으로 대체된다. 즉, 야만적인 법에서 보편적인 법으로 바뀌어지는 것이다.

또한, 샤머니즘적인 신들은 대부분 인간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성경을 보면 여호와는 진노 뿐만 아니라 인간과 같이 후회와 한탄과 뉘우침까지 하는 것을 볼수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느니라." [창세기 6장 5~7절]

"사무엘이 죽는 날까지 사울을 다시 가서 보지아니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울을 위하여 슬퍼함이었고 여호와께서는 사울로 이스라엘왕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더라" [사무엘상 15장 35절]

"천사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그 손을 들어 멸하려 하더니 여호와께서 이 재앙을 내림을 뉘우치사 백성을 멸하는 천사에게 이르시되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 하시니 때에 여호와의 사자가 여부스사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 곁에 있는지라." [사무엘하 24장 16절]

"자기 가운데서 이방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를 섬기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곤고를 인하여 마음에 근심하시니라." [사사기 10장 16절]

어찌 전지전능한 신이 지난일을 후회하고 근심하고 뉘우치며 한탄한단 말인가?
성경속에서의 여호와의 모습은 분노와 질투, 오해와 사랑등 모든 인간적인 신격을 가지고 있다.
자연적 재난이 이들 신격에 반영된 경우가 많아서 특히 분노와 변덕, 질투가 이들 신격의 주된 성격 묘사로 나타난다.
분노와 질투와 자비의 적절한 안배가 이들 샤머니즘 신들이 경배 받는 주 요인인 것이다.
신앙인들은 신의 자비를 구하고 분노를 가라 앉히기 위해 열심히 신앙 행위를 해야 하는 것이다.

예를들어 여호와의 신의 인격화는 신의 명칭에 따라 다르다.
'야훼'라고 기록되어진 신의 성격은 인격적인데 반하여, '엘로힘'이라고 기록된 신의 성격은 그러한 인격이 없다.
신학교에서 가르키는 자료비평법에 따르면 구약은 4개의 전승층으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그것에 대해서는 뒷부분의 15장에서 아주 자세하게 다루도록 하겠다.)

또한 이집트 땅에서 유대인들을 풀어주지 않는 파라오에 대응한 여호와의 행동은 샤머니즘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내가 애굽땅을 칠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찌라 내가 피를 볼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출애굽기12장 13절]

어린 양이나 염소를 잡아서 그 피를 집문과 좌우설주와 인방에 바르면 죽음이 비켜간다는 구절이다.
이것은 우리나라에도 있는 동지날에 붉은 팥죽을 먹거나,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대문에 붉은 고추를 매달아서 악귀를 물리친다는 전형적인 샤머니즘의 성격을 보인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무릇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에게서 내게 드리는 것을 너희는 받을찌니라." [출애굽기 25장 1~2절]

신전을 건축한다는 명목으로 여호와는 돈과 재물을 내라고 명령하고 있는데 뒤에 이어지는 여호와의 요구조건은 정말로 한심하기 그지없다.

"너희가 그들에게서 받을 예물은 이러하니 금과 은과 놋과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과 염소 털과 붉은 물 들인 수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과 조각목과 등유와 관유에 드는 향품과 분향할 향을 만들 향품과 호마노며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이니라." [출애굽기 25장 3~7절]

윗구절을 필자가 패러디를 해보면, 신이라는 작자가 교주에게 "교회를 새로 건축해야하니 시멘트, 벽돌, 최신 펜티엄 컴퓨터, 벤츠 승용차, 마이크, 에어컨.....등등의 물건을 바쳐라"라고 명령하는것과 무엇이 다를까?
구질구질하게 필요한 물건의 목록을 열거해 놓고 내놓으라는 신, 이것이 과연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모습일까? 아니면 샤머니즘의 신격일까?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여호와의 모습을 한 번 보자.
주요 종교로 성장했음에도, 덩치가 그렇게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토템과 샤머니즘적인 신에서 얼마나 더 신격이 나아졌는가? 샤머니즘과 토템 신과 무엇이 다른가?

신격이 아직 완성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신격 파탄과 같지 않은지...
과거 세상의 주요 종교들이 진화하기 전, 과학과 인문지식이 체계화 되기 전, 모든 현상들은 주술에 의해 지배받는 다고 생각해 왔다.
작은 악마나 신들이 모든 자연 현상과 인간 세상에 관계하고 있는 것으로 믿어왔다.
그리고 신들에게 인간을 제물로 바치다가 그런 관습은 차츰 동물공양으로 바뀌어갔다.

그후 인류가 문명을 발전시킴에 따라 사고의 개혁이 일어나고 지식이 문자로 축적되고, 과학이 많은 의문들을 해소시켜 주면서 종교도 새로운 방식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기독교 만은 그 발전을 외면하고 있는 것으로 비춰진다.
기독교의 신격은 누가 만드는가? 당연히 기독교인들이 만드는 것이다.
신격이 고양되고 격조가 높아지게 만들려면 기독교인들이 그렇게 바뀌어야 한다.
신의 성장은 신앙인들의 책임인 것이다.
특히 신앙을 주재하는 지도급들 그들의 의식과 사고 방식이 변화하지 않으면 결국 신의 세계에서 도태되고 말 것이다.

유빛돌
2003-07-19 07:34:27
586 번 읽음
  총 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1. 김창우 '03.7.22 9:23 AM 신고
    :-D*하핫 귀찮아서 다 읽지는 않았는데 왜 앞뒤구절을 다 잘라놓으시는지..ㅋㅋㅋ ↓댓글에댓글
  2. 2. 김창우 '03.7.22 9:23 AM 신고
    :-D*창세기 1장1절부터 읽어봐요 ↓댓글에댓글
  3. 3. 김창우 '03.7.22 9:26 AM 신고
    :-D*ㅎㅎ 그리고 성경은 비유적이고 이해하기 힘듭니다. 글자로만 해석하지 마세요 저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해를 못합니다. ↓댓글에댓글
  4. 4. 김창우 '03.7.22 9:27 AM 신고
    :-D*그리고 누가 잘 이해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나님만이 아시겠죠. ↓댓글에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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