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출처://www.gqkorea.co.kr/contents0306/feature.asp
친구? 곁에 두고 오래 사귀는 벗? 이제는 지루하고 식상해 그 문장만으로도 군내나는 이 해석은 지긋지긋하다. 하지만 친구와 좀 아는 사람을 구분해가며 말할 줄 아는 어른이 되면서 이 지긋지긋한 친구의 의미는 열없이 각인된다. '친구'라는 단어의 강제된 고결성이 친구라는 말을 쉽게 내뱉지 못하게 하는 나이가 되면 어른이 된 것이다. 미끄럼틀 아래에서 모래 장난을 하다 처음 만난 아이의 손을 잡고 대문을 넘기 전부터 "엄마, 찐구 왔어, 찐구"하던 시절은 다시는 없다.
직장에서 죽이 잘 맞아 오래 같이 지내지만 어쩌다 함께 마주친 고등학교 동창 앞에서 그를 회사 동료라고 말할 뿐, 친구라는 말은 잘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한달에 한 번 볼까말까 한, 분기별로 한두 통의 전화가 서로 오락가락하는 대학교 동창은 친구일까? 적어도 졸업할 때까지는 곁에 두고 오래 사귀었으니 친구인 걸까?
친구는 어떤 관계의 사람을 일컫는 것일까? 오랫동안 수첩을 들여다 봤다. 친구라는 포스트 잇은 볼꼴 못 볼꼴 다 본 어린 시절의 이름곁에만 마킹됐다.
정말 친구는 아무때고 네게 전화해 나야 하며 말을 꺼내도 누군지 한번에 알아내는 그런 사람인 걸까? 적어도 언제 어디서라도 서로에게 끈이 닿는다면 그 순간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목소리에 묻어온 바람 한자락만으로도 그 마음을 송두리째 다 헤아릴 수 있는 '너무 잘 아는 사람'만이 친구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걸까?
이 엄중한 마음의 잣대를 들이대자면 연예인과 친구가 되는 것은 개포동 재개발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는 것과 똑같다. 한동안 나는 연예인 친구들이 많은 사람으로 살았다. 그들은 대개 나보다 나이가 많거나 적어서 이름으로 불리우기보다는 호형호제했을 뿐, 개념은 친구였다. 동갑끼리만 친구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어쨌든 친해진 후에는 그들의 생일이나 갑자기 모이게 된 술자리, 고즈넉한 저녁 식사와 왁자지껄한 수다가 있는 티 타임에도 무릎이나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앉아 그들과 친교했다. 친교가 아니라고 생각할 여지는 없었다. 난 그들의 어린 친구였고, 그들은 내게 직업이 연예인인 친구였을 뿐이었으니까. 그 시절은 짧지 않게 지속됐다. 나는 톱배우의 집에 퍼질러 앉아 삶은 지 며칠 된 것 같은 고구마를 나눠 먹으며 키득거렸고, 스포츠지 일면에 실려보지도 못하고 끝난 연애의 뒤끝으로 훌쩍이는 탤런트의 등을 안고 쓴 소주잔을 채우기도 했다. 물론 그들 역시 소소한 나의 일상을 관통하며 희로애락의 순간들을 나눠가졌다. 돌이켜보면 그들과 있었던 어떤 얘기도 돌고돌다 그들에게 되돌아가지 않은 것으로 난 상등급의 친구 비슷한 것이 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친구라는 개념이 일방적이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의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내가 그에게 친구가 아닌 '아는 애'였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끼쳐오는 모멸감을 느꼈다. 친구였다는 모멸감은 연예인이 아니기에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난 그녀의 친구라는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그 옆에서 끝없는 찬양가를 불러주어야만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칭찬에 귀가 얇은 탤런트 친구를 볼 때마다 마찰을 피하는 비책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연예인의 일반인 친구라는 이유로 끝나지 않을 찬양시를 쓰고 싶지는 않았다. 어쩌면 대중들에게 보다 더 사랑 받는 탤런트로 만들어주고 싶은 과장된 우정의 힘이 발휘됐었는지도 모르겠고 '나는 네 주변의 그렇고 그런 애들과는 달라' 하고 싶은 마음이 표현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너무나 오랜 시간 칭찬 받는 것에 익숙해진 그녀에게 쓴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해대는 일반인 아는 애는 필요 없었다. 좀 아는 애로 소개된 나는 그녀와 더는 친교하고 싶지 않았다. 연예인의 친구가 되어야 한다는 목표 따위는 3대 전부터도 없었고, 연예인의 주변에서 '예쁘다'혹은 '연기 짱'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기생하듯 친교할 수는 없었다. 내가 가진 우정 역시 단단하지는 않았다는 증거였다. 가르침은 썼지만 효과는 비굴한 처세로 드러났다. 찬양시는 쓰지 않겠지만 고언을 직설화법으로 전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여차하면 친구가 아닌 '아는 애'가 되어버리고 말 위험하고 치사한 관계는 더 만들기가 싫었다. 비겁한 양보였다.
그런데 또다른 교훈은 이상하게 나타났다. 연예인은 대중의 관심으로 경제활동을 하는 직업인이다. 그러기에 당연히 경쟁은 치열하고 대중의 관심은 화무십일홍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친구로 생각하고 있는 배우 A, 그 배우가 라이벌로 생각하고 있는 또 다른 배우 B와 내가 친해진 것이다. 나는 A와 B 사이의 깊은 속내에 대해 들은 바 없었고, 들은 바 없었기에 옮긴 바도 없었다. 하지만 예상하지 않은 일은 왕왕 일어나곤 한다. 한 CF에 끝까지 경합을 벌이던 두 배우 중 B가 선택되자 A는 B와 밥도 먹고 술도 마신 나와 친구로 지낼 수 없다고 했다. 20대 후반의 여자 어른은 해서도 안되고 들어서도 안될 말이었다. 몇몇의 안 좋은 예로 전체를 판단해서는 안됐지만 더이상은 무서웠다. 나는 나라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 싶었다. 게다가 그 후, 나는 더는 연예인과 친할 수 없는 일을 시작했다. 그들을 포장해서 없던 매력이라도 끌어내주면 되는 일이 아닌 그들의 말을 박리해 그 진심을 전시해야 하는 일이었다. 이제 나는 더는 그런 자리에 불려 나가지 않는다. 어쩌다 불려나가게 되어도 내가 도대체 옮겨 적을 수조차 없는 화제거리나 옮길 필요조차 없는 얘기들만 교환된다. 나는 그들에게 친구나, 혹은 아는 애도 아닌 여차하면 써 갈길 소재를 찾느라 눈이 빨간 기자로만 보일 뿐이다. 친구끼리의 밀교는 없다. 기자와 친한 연예인 사이의 있을 법한 유머와 덕담들만 가득하다. 하지만 연예인과 일반인의 가장 안정적인 관계는 친구가 아니라 친한 팬이라고 정리되자 아득한 편안함이 생겨났다. 친구는 다 자라서는 만드는 게 아닌 것 같다는 서글픈 자각과 함께 말이다.
연예인과 친구 되기. 소재는 대개 기자, 작가, 패션피플들에게서 채집된다. 다양한 직종만큼 이 민감한 사안에 대해 복잡하고 다단한 스펙트럼이 있었다. 연예인과 연예인의 친구 언저리에서 서성이는 사람들의 풍경은 만화경을 통해 보는 장면처럼 렌즈를 바꿀 때마다 모습을 달리하며 끊임없이 재배치되었다.
한 스포츠 일간지 기자는 서툴던 시절의 아픈 회고담을 얘기해주었다. 일반인, 연예인이 아닌 사람은 절대로 연예인과 친구가 될 수 없다고 단언했다. 그리고 특히 기자는. 단역으로 출연하고 싶어 방송국을 서성이던 배우 C의 초창기, 기자는 어쩌다 하게 된 인터뷰로 그와 친해졌다. 그들의 만남에 더욱 적극적이었던 것은 배우 쪽이었다. 기자는 연예인이 기사 한 줄 더 나가고 더 나은 기사가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까지 있었을 것이라고는 말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서서히 그가 인기를 모으고 둘의 관계는 더 돈독해졌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던 중 배우가 취중에 슬쩍 흘린 배역에 대한 고민거리. 기자는 그 고민거리를 기사화했다. 여기서 연예인과 기자와의 입장은 블라디보스톡과 목포항만큼 벌어졌다. 우호적으로 포장된 화제는 C의 이미지에 득일 뿐 실은 없었다는 것과 배우는 너는 친구지 기자가 아니라는 것의 차이는 넓고도 좁았다. 그들은 그것으로 결국 주먹다툼까지 하고 다시는 보지 않을 사이가 되고 말았다. 기자가 연예인과 순수히 친구가 되려면 그 관계를 며느리도 모르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자는 인맥을 총출동시키라는 데스크의 끊임없는 독촉에 시달려야하고, 연예인은 기자 친구 때문에 다른 연예인 동료로부터 왕따를 당할지도 모르니까. 그런 죽마고우지만 친구가 연예인이 되고 나서는 연락하지 않고 있다는 또다른 연예 전문 기자의 말이 가볍게 들리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수년간 연예인들과의 절친한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스포츠 일간지 베테랑 기자도 있다. 그녀는 연예인의 신변을 자신의 몸처럼 5년 이상 지켜준다면 연예인은 서서히 친구가 되어간다고 말했다. 그녀는 '연예인은 언제나 발가벗겨진 채로 광화문 네거리에 누워있는 사람들'이라는 말로 그들을 대변했다. 연예인이라는 직업의 태생적 특징으로 그들은 언제나 노출의 공포에 질려 있으며, 한순간에 모든 것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한점 부끄럼 없이는 도무지 성공할 수 없는 한국 연예계의 메커니즘의 희생자며 언제나 예민해있는 환부 하나쯤은 가지고 사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런 연예인들이 단지 코드가 서로 잘 맞는다고 갑자기 모든 경계를 풀고 친구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연예인과 친구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의 마음가짐 역시 달라져야 한다고 비장한 언변을 피력했다. 연예인의 겉모습에 매료되었다거나 표면적 이미지에 반했다면 친구가 아니라 팬이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친구가 되려고 한다는 것은 그들의 허물까지도 허물이 아닌 것으로 보아 넘길 줄 알고, 친구가 필요한 시간과 그렇지 않은 시간에 대한 철저한 분배가 연예인이 아닌 쪽에서 먼저 이루어져야 소소한 감정의 분쟁 등에서는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어쩌다가 알게 된 비밀이라도 무덤까지 가져가 줄 것까지.
그렇다면 연예인과 친구가 된다는 것은 어느 한쪽의 전폭적인 지지와 희생 없이는 불가능한 것일까? 연예인과 친구가 되는 것은 사려 깊은 전전긍긍과 계량이 정확한 감정의 조절까지 선행되어야만 얻을 수 있는 면류관인가? 이미 톱탤런트 겸 배우인 D와 10년간의 우정을 쌓고 있는 그녀는 '친구로서 처음부터 반했다면'가능한 일 아니냐며 반문한다. 연예인이 아닌 그들의 표현대로 '평민'과 '평민'사이의 관계에서 역시 어떤 관계는 한쪽이 계속 퍼주고, 또 어느 한쪽이 계속 토라지는 지형이 있듯 말이다.
하지만 한쪽은 끊임없이 이미 너절해진 마음의 편린들을 쏟아내기만 하고 또다른 한쪽은 그 편린들을 맞추고 꿰매어 돌려만 준다면 이들이 과연 친구일까? 그런 것은 정신과의사, 고해소 안의 신부 등과의 관계에서 얻어지는 것 아닐까? 물론 친구로서의 역할 분담은 전적으로 그들만의 문제다. 하지만 한쪽이 연예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어느 한쪽이 고해소 밖의 신부가 되어야 한다면 온전한 우정의 관계라고 분류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얘기다.
그녀는 몇 년 전, 섭외가 결렬되어 편집실에서 울어버린 후배 기자를 위해 D에게 직접 전화를 넣었다. "야, 친구 좋다는 게 뭐냐? 이걸 한다고 네가 뭘 그렇게 나빠지고, 또 뭘 그렇게 나아지겠냐? 어차피 인터뷰나 촬영은 언제나 하는 것, 그냥 시원하게 한번 도와줘라"라고 말했다, 면 얼마나 좋겠나? 그녀는 D의 모든 일정을 꼼꼼히 묻고, 변경가능한 일인지 직접 다 알아본 후 다시 전화를 걸어 가능할 수도 있겠는데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는 쪽으로 결론을 지어주었다. 네가 하기 싫으면 절대 하지 말라고, 내가 잘 얘기해주겠다는 얘기까지 첨언해서. 물론 D는 아직 사원증의 얼굴과 실제의 얼굴이 달라지지 않은 막내 기자의 파인더 앞에 서 주었다. 친구로서 부탁하는 방법의 차이는 많겠지만 우정의 천칭이 한쪽으로 치우친다는 것은 그 천칭을 우정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에겐 그리 유쾌한 장면은 아니었다.
방송작가의 경우는 조금 다른 측면으로 연예인과 친구가 된다. 기자와 연예인이 가해자와 피해자의 입장이라면 작가와 연예인은 서로 이용하는 입장에 서게 된다. 연예인과 친한 작가는 프로듀서들의 섭외 1순위이고, 기발한 기획력과 단단한 필력으로 방송국 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작가라면 연예인과 주구장창 몰려다닐 수밖에 없다. 이용이라는 단어가 사람 사이에 쓰일 때 갖는 위악성 때문에 나쁘게 들리지만 자신의 전정을 위해 우정을 이용한 게 아니라 그 역할을 이용하는 것이기에 나쁘게만 해석해서는 안된다고 한 라디오 작가는 말한다. 그는 기자와는 달리 오래 함께 일하다 보면 동료애와 우정 사이의 미묘한 감정이 흐르는 것을 감지할 수 있는 관계가 작가와 연예인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십년지기 친구가 되는 경우도 많다고. 하지만 어른들의 관계가 늘 그렇듯이 완벽한 신뢰는 금물이라고 한다. 연예인이 자신의 이미지, 인기를 걸고 우정을 보좌하는 일을 목격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라면서.
연예인과 친구가 되는 것은 요원한 일인 걸까? 그렇다면 연예인들은 인기를 먹고 사는 직업이라는 이유로 친구 하나 없어야 하는 신세라는 뜻일까? 연예인들도 친구는 있다. 연예인이 되기 전부터 오랫동안 곁에 두고 사귀어온 벗도 있고, 함께 연예계라는 진창에서 구르며 비슷한 곳에 굳은살이 박힌 전우애 넘치는 친구도 있으며, 또 어쩌다 마주친 그 모습에 마음을 빼앗겨 사귀고 있는 친구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계속 친구 하나 없는 특별한 직업인으로 보이는 것은 이미 말한대로 그 직업의 '특별함'때문이다.
현장 분위기가 너무 좋아 촬영 자체가 즐겁기만 했던 여자 배우 E는 그 작품 하나로 열 명도 넘는 친구를 얻은 것 같아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작업하는 동안 이렇게 서로 좋은 사람들이 그동안 어떻게 떨어져 살았나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가깝기만 했던 사람들은 작업이 끝나자 하나둘 소원해졌다. 서로의 스케줄은 너무나 다른 채로 빡빡했고, 비슷한 노력으로 비슷한 성과를 냈다고 생각한 친구가 갑자기 유명세를 타자 서로 불편해졌다. 그리고는 열 명도 더 생긴 것 같은 친구들은 감정이 나쁘지 않은 동료 연기자들로 남았다. E는 어릴 때, 데뷔 전부터 베스트 프렌드였던 친구에게 돌아가 주체할 수 없는 우정을 쏟아내는 수밖에 없었다. "네가 한가할 때에만 만날 수 있고, 내가 보고 싶을 때는 볼 수 없는 게 친구냐"며 눈을 보얗게 흘기지만 항상 많은 것을 들어주는 친구의 품은 따뜻했다. 그렇다고 연예인으로 살면서 듣게 되는, 귀를 씻고 싶은 얘기들부터 쉽지만은 않은 소회들까지 그녀에게 다 털어놓을 수는 없었다.
데뷔하기 전과 똑같은 기분을 친구를 통해서만이라도 느끼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의 친구는 함께 밥을 먹으러 가는 것도, 쇼핑을 하는 것도 불편해했다. 사람들은 몰려들고 친구와 조붓한 말 몇 마디 오가기도 힘들었다. E는 친구가 불편해한다는 이유로 성의 없이 사인을 했다가는 인터넷에 불이 날 것 같았고, 친구에게 엄호를 부탁하기에는 이미 너무 피곤해 보였다. 어색하게 헤어질 수 밖에 없었다.'연예인 친구 둔 덕 본다'는 모호한 인사로 헤어지고 돌아온 그녀에게 친구가 되어주는 것은 언제나 고개를 끄덕여주는 매니저와 그림자처럼 붙어다니는 코디네이터밖에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들과의 소통은 언제나 한계가 있다. 다친 마음이 위로가 되고, 즐거운 일에 함께 환호할 수는 있지만 모든 것은 거기까지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녀 자신을 떠날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은 그들에게 마음의 핵은 주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들게 한다고 했다. 언제나 마음을 터놓고 부대낄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하는 게 그녀의 요즘 희망이라고 했다.
사람이 사람을 사귀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서로의 촉수가 같은 주파수를 찾기만 한다면 어떤 사람인가는 큰 문제가 안된다. 문제는 시작이 아니라 과정이다. 관계가 성숙되려면 숙성될 시간이 필요한데 연예인이라는 한 축은 이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황섞어 젓도 맛이 들려면 곰삭아야 한다. 자꾸 뚜껑을 열고 손가락을 넣어 이물질이 들어가고, 꺼내보고 뒤적이는 동안 젓갈은 상해버리고 만다. 아예 먹을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연예인도 심장이 뛰는 사람인데 왜 친구가 될 수 없겠는가? 단지 마음이 삭혀질 시간이 없고, 두 마음이 버무려질 환경이 아니며, 그 맛이 어떤지 궁금해하는 타액 묻은 손가락 담금질이 너무 심하고, 그래서 벌레가 들면 서로의 탓이라 욕하고, 그러다 보면 먹을 수 없는 마음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 결과, '삭혀서 나누는 마음'에는 연예인이 아예 엄두도 내지 못하게 됐다. 잘못된 과정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고 그들은 마음 하나 섞어 삭힐 줄 모르는 새로운 인간형이 되어 버린 것이다. 연예인, 친구, 관계. 결국, 사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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